전에는 보통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간다고 할 때 우선 생각하는 기분 좋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기내에서의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내식사도 고기가 싫으면 미리 주문만 해 놓으면, 완전 야채 일색의 식사를 특별히 만들어서 가져다준다.
비행기가 이륙하면 곧 어여쁜 스튜어디스가 물수건을 돌린다. 그리고 나서 땅콩과 함께 시원한 오렌지 주스나 토마토 주스를 가져다준다. 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헤드폰이 깨끗한 비닐에 넣어져 제공된다.
물론 좌석 앞엔 개인용 텔레비전도 달려 있어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 보았던 영화도 한편 보면서 목적지 까지 갈 수 있어서 좋다. 나는 평상시 영화를 잘 못 보러 가지만 비행기 안에서 유명한 영화를 꽤 여러 편 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 기내는 에어컨디셔너가 잘 되어 있어서 좀 춥다. 그래서 좌석엔 아예 담요와 작은 베개까지 깨끗이 포장되어 놓여 있다. 그냥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다음에는 기내식이 나온다. 물론 항공사 따라서 기내식은 차이가 난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항공사는 고객들의 만족도를 위하여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비빔밥까지 메뉴가 있다. 비빔밥 맛도 상당히 우수한 편이다. 거기에 끼어서 담백한 빵도 나오는데, 나는 비행기에서 먹는 이 빵을 매우 좋아한다. 정말 맛있기 때문이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면 스튜어디스가 커피나 홍차등 차 서비스를 한다. 쉴 새 없이 입을 즐겁게 해 주고 서비스를 해 주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항공사들의 우수한 최적의 서비스 이다. 거기에다 스튜어디스는 얼마나 친절하고 상냥한가?
그러나 오늘 내가 탄 저가항공인 J 항공사의 비행기는 비행기 사이즈도 국내선처럼 자그마하다. 좌석은 가운데 복도를 빼곤 양쪽으로 3개씩 6개가 전부이다. 복도도 얼마나 좁은지 상품 판매하는 카트가 지나가면 다 지나갈 때 까지 움직이지를 못한다. 좁기 때문이다.
좌석에 앉았는데 에어컨 바람에 배가 시리기에 담요를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스튜어디스가 2만원에 판매 한단다. 별수 없이 가방에 여분으로 넣었던 티셔츠를 꺼내어 배를 덮었다. 그런데 좌석 앞에 ‘Air CAFE’ 라는 안내판이 보여 꺼내서 들여다보았다.
Air CAFE는 다름 아닌 스튜어디스가 카트를 끌고 다니며 판매하는 상점인 것이다. 간단한 음식(컵라면, 봉지비빔밥)과 커피와 음료수와 팝콘 고래밥 같은 간식이 간단하게 적혀 있다. 나는 따뜻한 던킨커피를 6천원을 주고 두잔 시켰다. 동행하는 목사님 몫까지…
나의 좌석은 비상구 옆이어서 스페이스가 넓어 답답하지가 않아서 좋았다. 옆자리가 비었기에 몇 자리 건너서 앞에 앉은 잘 아는 여선교사님을 불렀다. 내 자리 옆에 비었으니 와서 앉으라고 말이다. 좌석도 넓으니 편할 것이고 또 이야기를 하면서 가려고 그런 것이다.
둘이 앉아서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하는데 스튜어디스가 오더니, 내 옆에 앉은 선교사님에게 제자리로 가서 앉으라고 주의를 준다. 나는 자리가 비었으니 함께 앉아 가면 안되겠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스튜어디스는 그러면 좌석 값으로 3만원을 지불하고서 앉아 가라고 한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3만원을 내기는 억울했으므로… 나는 이제 혼자 조용히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그동안 내가 숱하게 타고 다녔던 서비스 좋았던 비행기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탔던 비행기들은 항공료 안에 서비스 값이 들어 있어서 그런 서비스를 받았던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였다.
30만 원대의 저가 비행기 티켓을 샀더니 모든 서비스를 안 해 주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세상 법은 서비스를 받으려면 댓가 지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항간에서 쓰는 말로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가 벗겨진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 세상법은 공짜가 없다. 그런데 정말 좋은 공짜가 있다. 바로 천국 복음이다. 천국 복음은 우리에게 공짜로 주어졌다. 예수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은 거저 주어진 것이다. 우리의 엄청난 죄값은 세상 것으로는 어떻게도 상계할 수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만 그 값을 치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보혈은 값을 매길 수도, 값을 지불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거저 주어지는 복음을 왜 사람들은 그처럼 받기를 싫어할까.
그러나 오늘도 값없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선교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세계 각 나라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 들이다. 그들은 선교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많은 값을 치른다.
정작 자신은 선교사가 되기 위하여 많은 값을 치르고 선교지에 가서, 값없이 복음을 전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꼭 닮은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선교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주에도 선교 사랑방에 와서 선교간증을 한 어느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그 선교사님 부부는 선교의 소명을 받고 신학을 하고 모든 훈련을 다 받고 선교지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오랫동안 신앙생활 해 왔던 교회가 선교후원을 해 줄 수 없다고 하더란다. 당연히 해 줄만한 교회였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 부부는 자신들이 살던 집을 정리해서 팔아서 그것을 선교비로 가지고 가서 수년간 복음을 전하다가 암이 걸려 돌아왔다. 나는 그 선교사님 부부야 말로 복음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 분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디 그분들뿐이겠는가. 양화진을 한번 가보라!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계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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