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영원히 기억될 소리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능력이 뛰어난 한 사역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 가문에서 자라났습니다. 그의 부모님의 이름은 아버지는 제사장인 사가랴이고 어머니는 아론의 자손인 엘리사벳이었습니다.

그런 훌륭한 가문의 배경을 가지고 태어난 그가 드디어 때가 되어 사역을 시작하자, 사역에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기 때문에 능력 있게 말씀을 선포했고,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찔림을 받았습니다.

백성들은 그의 설교를 들은 후 “독사의 자식들아!” 라는 심한 말을 들으면서도 달게 받고 회개하여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왔습니다. 세리도 나아왔고 군인들도 나아왔습니다. 그러자 강한 능력으로 사역하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당신이 혹 그리스도 입니까? 아니면 엘리야 입니까? 또는 모세 같은 그 선지자 입니까?” 그러자, 그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노우~ 나는 아닙니다.” 그러자 그들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아니, 다 아니라면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나? 나 말이요? 나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명은 있지요. 나의 사명은 주님의 길을 곧게 하려는 일이요. 뭐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나 할까요.”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보낸자들이 또 묻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선지자도 아니면서 왜 이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거요?” 그러자 그가 대답합니다. “아, 그거요. 그거야 내가 주는 세례는 사람들을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세례를 줄 뿐이요. 그러나 나 같은 것은 비교도 안 될 엄청난 분이 곧 내 뒤에 오시는데 나 같은 사람은 그분의 신발끈 조차 풀 자격이 없지요.”

당시 주인의 신발끈을 풀고 정리해 두는 일은 노예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신은 자기 뒤에 오실 그분에게 있어서 노예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들으신 여러분은 바로 그가 누구인 줄 다 짐작 하셨을 것입니다.

바로 세례 요한 입니다. 세례 요한은 성령의 능력으로 힘 있게 사역을 하였고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 앞에서 바짝 자신을 낮추고 자기는 노예만도 못한 존재라고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예수님은 한없이 귀한 분이라고 소개하고 알렸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고 심판주가 되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알렸습니다. 요한의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요한에게 관심을 가졌지만, 요한의 말을 듣고 점점 예수님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아질 때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능력자라고 칭찬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이 인기와 칭찬이 내가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이 받으셔야 한다고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신실한 종이라면, 그리고 성숙한 제자라면 사람들이 나를 높일때 오히려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는 것을 세례 요한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 낮아지십시다. 진정 존귀한 자가 되기 원하신다면 더욱 겸손해 지십시다.

그리고 세례 요한처럼 주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해서 복음의 장애물을 치우는 일을 하십시오. 고대 근동에서는 왕이 어떤 지역을 지나가기 전에 한 신하가 그 지역에 먼저 파견되어서 장애물을 없애고 왕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오늘날 같이 사람들의 마음이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시대에 어떻게 복음을 위해 장애물을 치워야 하겠습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기도 입니다. 기도는 마귀의 강한 진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선택과목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필수과목입니다. 따라서 규칙적인 기도 생활은 매우 중요 합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는 기도입니다. 기도를 계속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곧 믿음이 식어지고 가슴이 싸늘해지고 영적 호흡이 막혀서 서서히 영적인 죽음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능력해 질 것이며,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사람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착한 행실입니다.

오래전에 저의 고향 교회에 이 집사님이라는 분이 어떤 부잣집에 세 들어 살게 되었습니다. 홀어머니와 아내와 아들 둘과 방 두개를 세 얻어 살았습니다. 이 집사님은 중학교 수학 선생님 이었지만 그는 출근하기 전에 일찍 일어나서 주인집과 자기 집 마당을 열심히 쓸어 주었습니다. 주인집 아주머니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말입니다.

매일 매일 즐거운 모습으로 마당을 쓸어주는 셋 방든 사람은 주일이면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가는 모습을 주인 아주머니는 지켜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생전 교회를 나가지 않았지만 우리 집에 세든 사람들이 믿는 교회엔 무언가 좋은 것이 있는 것 같아”

주인 아주머니는 어느날 마당을 쓸고 있는 이 집사님에게 자신을 교회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 아주머니는 저의 고향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집사님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서울로 이사를 하여 평창동에 있는 예능교회에 나가서 권사님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겸손하게 자신을 낮춘다고 우리를 주님께서 낮추실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때가 되면 주님은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주님은 세례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중에 세례요한 보다 큰이가 없다고 높여 주셨습니다.

아, 우리 고향 교회의 스스로 마당쇠가 되어 주인집 마당을 쓸던 이 집사님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후에 이 집사님은 우리 고향 교회의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또 큰돈과 상관없는 학교 교사인 그에게 하나님은 그 부인이 시작한 장사를 통하여 적지 않은 부도 주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세례 요한처럼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만을 높이는 삶을 사십시오. 이 집사님처럼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내가 믿는 예수님께 관심을 갖도록 착한 행실을 부지런히 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스스로 광야에서 외치고 사라지는 소리라고 자신을 낮추고 겸손했던 세례 요한은 주님 앞에서 그리고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게 잊히고 사라지는 소리가 아니라 ‘영원히 기억될 소리’가 되었습니다.

성경: 요한복음 1:19-28

 

글/사진  나은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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