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어머니를 울린 생신상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올해 어머니께서 88세 생신을 맞이하셨다. 이제 2년 후에는 우리 어머니도 90세가 되신다. 그러면 어머니도 장수노인의 반열에 들어가게 된다.

현대 사회가 아무리 100세 장수의 시대라지만 그래도 90세가 넘으면 장수 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사 하지 못하고 사고와 병으로 제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워낙 많은 시대이니 말이다.

지난 토요일 나는 잘 아는 필리핀 선교사님을 만나러 대구의 인터불고 호텔에 갔었다. 선교사님은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차 잠시 한국에 나온 것이다. 마침 대구에서 결혼식이 있어서 나와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인 인터불고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본관에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100세를 맞은 어느 할머니의 장수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파티가 열리는 모양이다. 호텔 임직원들의 이름으로 축하 현수막을 걸어 놓은 것이 보였다.

그 현수막을 보면서 나는 우리 어머니가 100세가 되시려면 이제 12년 남았다는 생각을 했다. 호텔 입구에 걸린 장수기념 현수막을 보면서 어머니가 만 90세 되시는 후년에는 가까운 친족들을 모아 잔치를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머니가 100세까지 사신다면 좋겠지만 사람의 수한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어머니께서 최근에 맞은 88세 생신을 토요일 가족들이 모여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기로 하였다.

나는 밖에서 식당을 정해 생신축하 오찬을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주간 내내 주중에 서울과 김포에 있다가 금요일 늦게서야 대구에 돌아 왔으니 시장을 보러 갈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딸이 연락이 왔다. 엄마가 밥하고 미역국만 끓이면 반찬은 자기가 만들어 오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러자고 하였다. 그런데 딸이 다시 연락을 해 왔다.

아예 할머니 모시고 아빠 엄마가 자기네 집으로 오라는 것이다. 밥도 미역국도 자기가 다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딸의 말을 듣고 보니 아이 데리고 반찬 들고 오는 것도 번거롭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마고 하였다.

음식 준비를 내가 안해도 되니 여유가 생겼다. 어머니를 목욕을 시켜 드리고 파마머리에 젤도 발라서 머리도 예쁘게 꾸며 드렸다. 그리고 유니콜로에서 지난번 세일할 때 사두었던 연회색 봄 가디건을 입혀 드렸다.

어머니를 자동차에 태우고 운전을 해서 집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딸네 집에 갔다. 현관문이 열리자 한주간 나를 못 보았던 로아가 반색을 한다. 아직 말을 못하는 로아가 나를 가르키며 아~아~ 하고 탄성을 지른다. 반갑다는 것이다.

남편과 사위가 나가서 캐이크를 사 가지고 왔다. 배달 시켰던 양념통닭과 후라이드 치킨도 도착을 했다. 생신상을 차려 놓고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고 축복하는 기도를 드렸다.

식사를 하며 나는 어머니에게 손녀딸이 어머니를 위해서 이렇게 상을 차린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한 말씀 해보시라고 했더니 어머니는 “이렇게 여럿이 내 생일을 축하해 주어 고마워요.”

하시더니 말끝이 흐려지면서 어머니 눈가가 촉촉해 진다. 갑자기 울먹해 지신 것이다. 생전 처음으로 손녀딸이 차려 드린 생신상을 받아 보셨으니 퍽 감동이 되셨나보다.

아무튼 우리 어머니는 복이 있는 분이시다. 어머니 나이 20세에 혈혈단신으로 북한에서 남한인 한국으로 넘어와서 부모도 없이 홀로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하고 살아 오셨지만 말이다.

결혼한 여자에게 있어서 친정은 든든한 빽과 같은 곳이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지지하고 지원해줄 부모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기댈 곳이 없는 외로운 삶을 사신 것이다.

그래선지 내가 결혼해서 어머니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어머니의 친정 이야기였다. 특히 어머니는 어머니의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어머니의 아버지가 얼마나 멋진 분이셨는지 늘 이야기 하셨다.

한가지만 예를 들면 추운 겨울에 어머니가 학교에 가려고 나오면 구두가 없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발을 찾고 있노라면 아버지가 윗저고리 품에 구두를 품고 있다가 신으라고 내 주셨다고 한다. 딸이 밖에 놓여 있는 구두를 신으면 발이 시릴까봐 그렇게 하셨던 것이다.

이런 자상하고 따뜻한 성품의 아버지를 둔 어머니는 비록 일찍이 부모와 헤어졌지만 행복한 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늘 행복하게 추억속의 부모를 그리면서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 이야기 끝에 꼭 붙이시는 한마디 말이 있다. 그것은 그 자상한 아버지를 당신의 큰아들이 꼭 빼닮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빛바랜 외할아버지의 사진의 모습이 K선교사와 많이 닮긴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강조 하시는 것은 외모가 아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좋은 성품을 내 남편이고 어머니의 큰아들인 K선교사가 닮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들 자랑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더더욱 행복한 분이다. 그렇게 어머니가 좋아하는 친정아버지를 쏙 빼닮은 큰 아들이 어머니 노후의 부양자가 되어 모시고 사니 말이다. 남편이 어머니를 잘 모시니 손주인 우리 자녀들도 할머니에게 각별하다.

우리가 대구로 이사를 내려오자 나의 큰아들이 어느날 십자매 한쌍을 사 가지고 새장에 넣어서 가지고 왔다. 아들은 할머니 심심하실까봐 사 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베란다에서 아침마다 명랑하게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는다.

이런 손자 손녀를 곁에 두신 어머니는 얼마나 복있는 분인가 더욱이 나의 큰딸이 결혼 10년만에 첫 딸을 낳아서 어머니는 첫 증손녀를 보셨다. 증손녀 로아를 얼마나 예뻐하시는지 모른다. 힘이 없어 안아 주지는 못하시지만 말이다.

모쪼록 어머니께서 건강하게 장수하며 사시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남북통일이 되면 어머니를 내가 운전하는 지동차에 모시고 어머니의 고향인 함흥에 갈 생각이다. 어쩌면 어머니의 90세 생신잔치를 북한에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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