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똥길이 변하여 꽃길이 된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꽃을 좋아한다. 더러운것 보다는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 역겨운 냄새 보다는 향기로운 냄새를 좋아한다. 오물이 묻어 있는 것보다 청결한 것을 좋아한다.

당연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 이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어지는 세상이던가? 내가 원하는 대로 좋고 아름답고 청결하고 기분좋은 냄새가 나는 환경에서만 살아갈 수 있을까?

두 달여전에 살짝 넘어졌는데도 오른팔이 골절되어 기브스를 하고 있던 어머니가 드디어 기브스를 풀었다. 어머니가 오른손을 기브스 하고 있는 동안 나는 매일 어머니의 얼굴을 씻겨 드렸었다.

그런데 기브스를 풀었는데도 어머니는 당신 손으로 세수를 잘 못하신다. 그냥 물을 한번 묻혀서 얼굴에 바르고는 다 했다고 하시는 것이다. 별 수 없이 내가 매일 전처럼 씻겨 드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하루 하루 어머니의 나이가 점점 늘어날 수록 내가 시중을 들어야 하는 일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어머니의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 어머니의 인지 능력의 저하가 문제이다. 즉 치매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것이 문제이다.

세수를 씻겨 드리고 틀니를 빼내어 닦아 드리고 머리를 감기고 목욕을 씻겨 드리는 일과 옷을 갈아 입혀 드리는 일, 식사할때 시중을 들어 드려야 하는 일까지 계속해서 어머니는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그래도 사실 위에 열거한 이런 일은 약과에 속한다. 때때로 더 힘들게 느껴지는 일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며칠전 일이다. 어머니가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으시자 마자 심한 냄새가 난다고 남편이 눈살을 찌프렸다.

나는 “어제 어머니 목욕 시켜 드렸는데 무슨 냄새가…”대꾸하며 어머니 가까이 가다가 지독한 구린내에 나역시 얼굴이 찌프려졌다. 그러나 처음 있는 일이 아니어서 나는 얼른 어머니 손을 쳐다 보았다.

손톱에 새까만 것이 끼어 있다. 대변 처리를 잘못해 변이 손톱밑에 끼인 것이다. 나는 두말없이 얼른 어머니를 모시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손톱밑을 비롯해 손을 수세미를 사용해 닦아 드렸다.

그리고 얼른 보자기를 펴고 어머니의 손톱을 잘라 드렸다. 그런다음 소독약을 가져다가 어머니의 손과 손톱밑에 뿌려 드렸다. 소독액은 아기들의 장난감이나 완구에 뿌려도 되는 안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우리집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이보다 훨씬 더 큰 사고를 치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때는 내가 정신없이 뒤치다꺼리를 해야한다. 그러고 나면 나도 지쳐 버리곤 한다.

삼일전 일이다. 나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남편은 아직 교회에 남아 있고 내가 먼저 돌아온 것이다. 어머니를 씻겨 아침을 먹게 해 드리고 주간보호센터를 보내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관에서 중문을 열고 마루로 들어서려는데 마루에 군데 군데 찍혀 있는 시커먼 발자욱 같은 것이 보인다. 나는 순간 이게 뭐지 하다가 곧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 시커먼 자욱은 화장실에서 복도를 따라 찍혀 있다가 어머니 방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화장실을 확 열어 보았다. 화장실안에 양변기 앞에 놓은 발판에는 여러군데 검은 자욱이 찍혀 있었다.

똥구린내 냄새도 확끼친다.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어머니가 화장실에 와서 변을 보신다는 것이 변기에 못보고 발판에 떨어 뜨린뒤 발로 밟으며 방으로 들어 가셨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발판을 걷어 물과 소독액을 뿌리는 것과 동시에 어머니 방문을 열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방에도 군데 군데 똥발자욱이 찍혀 있었다. 밝은 베이지색 바닥이어서 더 선명하게 검은색 변의 자욱이 찍혀 있는 것이다.

아~ 이제 완전 비상이다. 마루며 방이며 여기 저기 묻혀 놓은 똥칠을 닦아내고 소독약을 뿌리고 욕실 발판을 닦아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것이 아니다. 어머니를 씻겨 드려야 한다. 이미 어머니의 잠옷 위아래에는 똥칠이 묻어 있었다.

옷을 벗겨 씻겨 드리고 옷을 갈아 입히고 침구는 다 빨아야 한다. 침구에도 여기 저기 똥칠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 손이 닿았을만한 모든 곳에 소독을 해야 한다.

마루와 방 청소는 물론이고 문고리서부터 벽까지 소독액을 뿌리고 닦아낸다. 침구며 잠옷이며 옷에 묻은 똥칠을 먼저 손으로 애벌빨래를 한 다음에라야 세탁기에 넣고 빨 수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일들을 처리하고 어머니를 씻기고 아침밥을 드리고 주간 보호센터 차량까지 배웅해 드리고 들어오니 남아 있는 일들이 산더미 같다.

정신없이 일처리를 하고 났는데 문득 어머니의 꽃무늬 슬리퍼가 눈에 띄었다. 면으로 만들어진 이 슬리퍼는 어머니가 좋아해서 잠결에 일어나도 꼭 신고 화장실에 가실만큼 애용하신다.

나는 순간 “아~ 저신발에도…”하며 한달음에 뛰어 일어나 어머니의 면슬리파 밑바닥을 살펴 보았다. 예상했던대로 슬리퍼 바닥이 온통 똥칠이었다. “역시…” 중얼거리면서 나는 어머니의 슬리퍼를 빨았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갔다. 나는 몹씨지치기도 했지만 화도 났다. 번번이 이런 일은 남편도 나를 잘 돕지 못하고 온전히 내몫의 일이라는 것이 화가 나기도 했다. 어머니를 시중 드는 일이 점점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가 되어서 주간보호센터에서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아무일도 없었던듯 태평하신 모습이다. 마침 우리집에 잠시 들린 지인 여전도사님이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는 전도사님은 어머니에게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 그동안 어머니는 나에게 사촌언니, 큰딸, 선생님 이라고 그때마다 다르게 인식하고 부르셨기 때문에 이번에는 뭐라고 하시는지 나도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는 전도사님의 질문에 나를 넌짓이 바라보시더니 “언니”라고 대답 하신다. 나는 오늘은 어머니의 언니가 된 것이다. 어머니의 엉뚱하고 뜬금없는 “언니”라는 답변에 나는 전도사님과 함께 피식 웃었다.

그래 내가 어머니의 언니라면 언니답게 행동해야겠지. 동생의 실수쯤은 눈감아 주어야지. 어머니가 그러고 싶어 그런것도 아닌데… 자신도 모르게 인지 능력이 떨어져버려 대변처리를 어찌해야 하는지 분별이 없어져 버린것 뿐인데…

그런데 노인에게선 지독한 냄새가 난다 굳이 대변을 묻히지 않아도 노인이라는 존재 자체에서 나는 냄새말이다. 그래서 더 자주 씻어야 하고 옷도 빨아야 하고 침구도 세탁을 해야 한다. 소독액이나 향수도 동원해야 하고 자주 방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야 한다.

그나마 도움이 되는 것은 낮만큼 이라도 주간보호센터에서 돌보아 준다는 것이다. 종종 어머니는 주간 보호센터에서도 대변처리를 잘못하는 실수를 하셔서 저녁에 돌아오실때 다른 옷을 입고 돌아오면 사고를 친 날이다.

오늘 역시 대변을 묻힌 옷보따리를 주간보호센터 직원이 건네 주었다. 요양 보호사는 미리 가져다 놓은 어머니의 예비 옷을 갈아 입히고 똥칠을 한 옷을 다 벗겨 비닐봉지에 몇겹으로 싸서 어머니를 보내 드리며 나에게 건네 주곤 한다.

그렇게 가져온 똥묻은 옷을 빠는 일도 내 몫이다. 어머니가 처음 똥질을 하셨을때 당황하고 놀랐었는데 어느듯 이 일도 어머니를 모시는 일상의 일중의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는 당일은 치우는 뒤치다꺼리를 다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참 지쳐 버린다. 나도 하루나 이틀이 지나가야 회복이 된다. …어머니가 사시면 얼마나 사신다고 잘해 드려야지… 이렇게 내마음을 추수리기는 하지만 그러기 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새벽예배를 드리면서 문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땅에서는 어머니의 똥치레를 처리해 드리고 똥발자욱으로 길을 만들어 놓은것을 다 닦았지만 언젠가 천국에서 만나게 되는 어머니는 어떤 모습일까?

분명 어머니는 천국에 먼저 가 있다가 내가 천국에 들어서면 환하게 웃으시며 반겨 주시겠지. 그리고 나를 데리고 분명 꽃길을 만들어 주실것 같았다. “애야, 네가 내 똥치레 하느라 수고가 많았지 이제 내가 너에게 꽃길을 만들어 주마” 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선교지에서 살때가 생각이 났다. 집에서 교회까지 잔잔한 꽃들이 마치 양탄자처럼 피어있는 그 길을 나는 무척 좋아했었다. 그래서 일부러 지름길을 마다하고 돌아가면서도 그 꽃길을 걸어가곤 하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어머니가 똥을 밟아 온통 욕실이며 마루며 방이며 칠해 놓아 마치 똥길처럼 해놓은 것을 닦고 치우면서 나는 꽃길을 밟고 갈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천국에선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것이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것이 아니라 섬기러 이 땅에 오셨다고 했다. 심지어 목숨까지 우리의 대속물로 내어 주지 않으셨는가?

그 예수님을 믿는 나를 주님은 어머니를 섬기는 일을 맡겨 주셨다. 사실 나는 그동안 기쁨으로 어머니를 잘 섬겨 왔다. 그런데 이제 내가 지쳤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똥길이 변하여 꽃길을 걸어갈 희망이 있음에도 말이다. 내게도 이제 정말 쉼이 필요해진 것일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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