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예상밖의 풍성한 입당 잔치

오랜 기다림끝에 드디어 모든 준비를 끝내고 입당예배를 드렸다. 입당예배 이틀전에야 간판을 달았지만 아무튼 끝까지 해냈다. 이처럼 입당예배 직전까지 애를 써서 입당예배 드릴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데 입당감사예배를 준비하며 제일 우려가 되었던 것은 축하를 해줄 손님이 과연 얼마나 올까 하는 염려였다. 잔치를 벌려 놓고 축하해 줄 사람이 별로 없다면 그것처럼 썰렁한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입당예배 날짜를 내가 잘못 선택했는지 초청받은 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못 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꼭 오겠다고 약속한 사람들까지도 입당예배 직전에 와서는 못갈 사정이 생겼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적잖이 실망이 되었다. 맥이 좀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입당예배가 너무 느려지다 보니 나를 아는 지인들도 이제 지쳤나보다.

건물을 분양 한다고 떠들썩할 때부터 치면 거의 1년 가까운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작년 8월에 건물 분양을 받고 인테리어를 못하고 있다가 12월 초에야 시작된 인테리어 공사였다.

그러나 내부 인테리어가 끝나고 나서는 또 성구와 집기들 음향 등을 설치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자꾸만 흘러가니까 내 사정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은 이제 좀 지친것이나 아닐까?

어서 교회가 완공 되어 입당예배를 축하해 주러 오고 싶다던 사람들도 너무 시간을 끄니까 김이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처음에는 교회 인테리어에 많은 관심을 보였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속도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거북이 걸음이었지만 한걸음씩 걸어서 드디어 입당예배를 드리게까지 된 것이다. 그런데 축하하러 와줄 사람이 얼마 안 된다면 어떻게 할까?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우리교회 의자 40개밖에 안됩니다. 이 자리 다 채워 주세요. 그리고 카페와 로비에서도 예배드리도록 텔레비전이며 카메라 설치와 스피커도 다 준비했는데 이곳에서도 적어도 열 명은 예배드리게 해 주세요.”

그렇게 50명을 보내 달라고 기도는 하면서도 자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입당예배에 참석하겠다는 사람들의 명단을 적어보면 30여명이 될지 말지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는 회개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드리는 입당예배에 사람이 많으면 어떻고 적으면 어떻단 말인가? 우리 가족만 드리면 뭐가 부족하다고 내가 이렇게 애가 탈까 생각하니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몇 사람이 올지 고민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예배후 식사를 할 식당에 가서 예약을 했다. “40명 예약해 주세요. 그런데 아마 40명이나 어쩌면 그보다 조금 못 미칠 수도 있어요.” 좌석이 많은 큰 식당도 아닌데 많이 예약을 했다가 남의 집 장사를 망치면 안 될 일이었다.

팥고물이 들은 기지떡도 반말을 맞추었다. 방울토마토와 청포도도 샀다. 입당예배를 축하하러 온 분들에게 식당에서 메인식사를 하며 곁들여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교회안 청소를 마치고 이튿날 입당예배드릴 준비를 마쳤다.

2019년 4월 27일 아침 날씨가 쾌청했다. 이틀 동안 날씨가 흐리고 비가 내려서 간판 다는 분들이 비를 맞으며 간판을 달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입당예배 당일 아침 날씨는 아주 쾌청하고 맑았다. 다행이었다.

나는 오전 10시부터 교회에 나가 있었다. 10시 20분부터 손님이 오기 시작했다. 지방에서 일찍이 올라온 지인 목사님과 집사님은 아예 근처 커피숍에 들어가서 예배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였다.

드디어 11시가 되어 예배가 시작되었을 때 예배당은 그래도 어느 정도 좌석이 채워져 있었다. 특송1, 현악 이중주, 몸찬양, 특송2 등의 특순이 진행되는 동안 예배당 40석은 만석이 되었다.

안내 맡은 사람이 뒤에 몇 개의 의자를 더 가져다 놓았다. 그럼에도 예배당에 다 들어오지 못해서 카페에서도 로비에서도 몇몇 사람이 영상으로 예배를 드렸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신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시간 반에 걸쳐 진행된 예배는 은혜스러웠다. 남편 김 목사가 사회를 보고 대학로에서 유학생 사역을 하는 CCC 외국인 사역부 담당 간사님이 간절한 기도를 했다.

특순 시간에는 지은나교회가 아직 인테리어도 시작하기 전에 찾아와서 우리 교회를 축복하며 기도해 주었던 세천사 목사님 중 한분인 일명 ‘예수 이야기꾼’ C 목사님이 ‘평화의 노래’를 불렀다.

다음으로는 현악이중주로 남편 김 목사의 전직인 여고 교사 시절의 제자인 K 집사님이 청주에서 올라와서 아들과 함께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를 연주했다. 엄마가 첼로를 연주하고 아들이 바이얼린을 연주하였다. 모자의 연주는 참석한 회중들을 흐뭇하게 하였다.

세 번째 순서는 몸찬양 이었다. 71세의 L 선교사님의 몸찬양은 입당예배의 축하 분위기를 한껏 돋우어 주었다. 곱게 무용복을 갖추어 입고 작은 강단 앞 공간에서도 자유자재로 무용을 한다. 그처럼 전심으로 몸으로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모습은 모든 축하객들을 감동케 하였다.

특순 마지막 순서는 특송2로써 베이스 K 선생님 이었다. 그가 부르는 “하나님의 은혜”가 작은 예배당 가득하게 울려 퍼졌다. 대학의 강사이기도 한 그는 이태리 유학을 다녀와서 과천교회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분인데 나의 지인인 K 전도사님이 소개하고 초청한 것이다.

설교는 내가 속한 함해노회의 전 노회장이었던 O 목사님이 ‘귀히 쓰임받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사도행전 11장 19-30절을 은혜롭게 메시지를 전했다. O 목사님은 내가 입당예배 설교를 부탁하면서 사례비를 기대하지 마시라고 했더니 그날 친척의 결혼식이 있음에도 설교하러 온 분이다.

왜냐하면 O 목사님의 사모님이 사례비 못주는 교회에서 부탁한 설교를 안 하러 가면 삯군 목자가 되니 꼭 가야 한다고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는 분이다. O 목사님은 진실하고 신실한 목회자인 것이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많은 입당감사헌금까지 하고 가셨다. 미안하게도…. 다음은 축사 순서였다. 노구의 몸에 베레모를 멋지게 눌러쓰시고 축사하러 나오신 분은 한국문인교회 동사목사이며 시인이신 P 목사님이시다.

P 목사님과 나와의 친분은 특별했는데 P목사님은 어느 단톡방에 올려진 나의 수필을 죽~ 지켜보다가 내게 연락을 해 오셨다. 글쓰는 솜씨가 상당한데 아예 등단을 하고 글을 쓰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인인 P 목사님의 추천으로 창조문학에 ‘회귀’ 라는 단편 소설로 늦깎이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P 목사님은 유명한 신앙의 집안의 7남매의 장남으로써 쌍둥이 두 동생이 있는데 한분은 장신대 교수님이고 한분은 샘안양병원 원장님이다.

다음으로는 내가 경과보고와 광고를 했다. 입당예배를 드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따라서 할 말이 좀 많았다. 그래서 경과보고가 좀 길어졌지만 모두 은혜롭게 들어 주셨다.

마지막으로 축도는 내가 속한 함해노회의 공로목사님이신 O목사님이 해 주셨다. 한 교회를 33년간 시무하시고 은퇴하신 대단한 노장 목사님이 지은나교회를 축복해 주시니 감사하기만 하였다.

이제 예배는 끝나고 손님들이 식당으로 가기 위해 나갈 시간이 되었다. 외손녀 로아가 교회 현관에서 답례품과 식권을 손님들에게 드리며 “축복 합니다” 하고 귀여움을 떨었다. 이 아이는 이제 29개월로 아직 기저귀도 못 떼었는데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못하는 말이 없다.

로아의 엄마인 내 딸의 죽마고우가 딸을 만나러 오면서 데리고 온 두 아이도 로아와 함께 답례품을 손님들에게 드렸다. 교회 바로 옆의 순대국밥 집으로 손님들을 안내했다. 깔끔한 맛의 순대국밥과 떡과 과일을 대접하였다. 축하객들은 모두 맛있다고 하였다.

나는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교회로 돌아와서 커피와 다과를 들며 교제를 나누도록 준비를 해 두었다. 하와이 헤이즐넛 커피를 내려놓았는데 이 맛있는 내림 커피는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던 탈북제자가 하와이에서 가져와 선물한 것이다.

손님들 절반쯤은 식사 후 돌아갔다. 나머지 절반쯤이 다시 교회로 돌아와서 일부는 카페에서 나머지 분들은 로비의 둥근 회의용 탁자를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분위기를 잘 돋우는 영등포에서 노숙자 사역을 하시는 L 목사님이 흥을 돋우고 사람들을 돌아가며 노래를 시켰다. ‘예수 이야기꾼’ C 목사님은 성경내용을 동화처럼 손짓 발짓을 해가면서 들려주었다.

어찌나 실감이 나고 재미가 있던지 사람들은 웃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심지어 90세이신 우리 어머니도 쏙 빠져서 들으시다가 “저런~ 아이고 저걸 어째” 하시며 추임새를 넣었다.

탄자니아인 냔자 목사님이 스와힐리어로 찬양을 부르고 나중에 다 끝났을 때 마무리하며 축복기도를 해 주었다. 한국 여선교사님과 결혼한 그는 곧 탄자니아 감리교단의 감독이 될 분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오후 3시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모든 분들이 돌아가고 난 후 나는 식당으로 갔다. 식사값을 지불하기 위해서였다. 식당 주인은 51개의 식권이 들어왔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51인분의 식사값을 지불하였다. 바쁜 일로 식사를 하지 않고 가신분이 있었고 두 명은 딸의 손님이니 꼭 50명이 오늘 입당예배에 참석한 것이다. 물론 토요일은 도저히 못 올 상황이어서 전날에 미리 몇 분은 다녀가기도 하였다.

이렇듯이 지은나교회 입당감사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로 정말 은혜롭게 마치게 되었다. 입당예배를 축하해줄 사람 50명만 보내 달라는 나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은 이번에도 응답해 주셨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시 6:9)”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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