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박근혜의 굿, 황교안의 합장

황교안이 정치인으로서 초파일 불교행사에 참석했다. 이 때에 합장을 했어야 했느니 안 했어야 했느니 하는 일로 말이 많은 것 자체가 유치하고 못마땅하다.

박근혜 불법탄핵은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JTBC의 사기보도로 시작됐다. 사기보도에 속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분노했었다. 어쩌면 많은 기독교인들이 분노를 느끼며 그 분노가 자기 믿음의 척도인 양 자부심을 가졌을런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제정(祭政)이 분리된 민주국가이다. 조찬기도회는 괜찮아도, 미사는 안되고, 염불도 안된다고 누가 무엇을 근거로 결정하는가? 이렇게 하면 저쪽이, 저렇게 하면 이쪽이 불쾌하겠지만 대한민국엔 종교의 자유가 있다. 정치인으로서 다양한 종교행사에 참석할 때의 행동은 각자의 종교적 양심에 맡기면 된다. 레이건이 백악관에 점성술사를 불러들였어도 미국인은 가십성 쑥덕거림만 있었지 아무 갈등이 없었다.

황교안은 사찰에서 합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사찰 역시 합장을 강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측 다 잘 처신했다고 여겨진다. 한국인의 의식이 많이 ‘평균주의’적이고 그래서 ‘획일’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전체주의적 사회현상으로 흐른다면 큰 문제다. 획일화된 사회는 자정력도 자생력도 없다.

박근혜. 어머니도 아버지도 잃고 그녀는 불행했다. 좀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는지 박근혜는 광나루 장로교 신학교에 등록했다. 그런데 등교할 때마다 소위 목사가 되겠다는 신학생들이 떼로 몰려와 독재자의 딸이라며 조롱하고 돌(말)을 던졌다. 박근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었다.

비슷한 사례가 세계역사에도 있다. 주은래가 영국에 유학했을 때 교회에 출석했지만 심한 차별에 곧 교회를 떠나고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다. 간디 역시 영국에 있을 때 교회 출석을 원했지만 불쾌하고 지속적인 차별에 무신론자가 되었다.

이들이, 박근혜가 크리스찬이 되었다면 아마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이 하나님 뜻이 되어야 하는건지, 하나님 뜻이 내 생각이 되어야 하는건지 깊히 생각해보자. 어쩌면 열심당원처럼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연자맷돌에…(눅 17:2)”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너와 나의 이야기이다.

박근혜 불법탄핵은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JTBC의 사기보도로 시작됐다. 사기보도에 속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분노했었다. 그 분노는 초기 탄핵 모멘텀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되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는 거짓 탄핵에 크게 공을 세운 셈이다. 속았기 때문이라는 변명은 구차할 만큼 무책임하다.

현대문명이 헬레니즘(Hellenism, 분석적 사고)과 헤브라이즘(Hebraism, 기독교 정신)이라는 두 기둥에 의해 지탱되고, 하나님께서 기독교를 그 한 가운데 놓으셨다고 자부한다면 기독교는 하나님 앞에서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는 대한민국 역사에 큰 책임이 있다.

Tov Forum 대표 스테반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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