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5∙18 재조사를 하는 이유
[LA=시니어타임즈US] 본지는 2019년 1월부터 518사건과 관련한 신간 <문재인과 전두환의 5.18 역사전쟁(The War of 5∙18 History between Moon Jae-in and Chun Doo Whan)>을 저자와의 합의 하에 연재를 시작한다.
<문재인과 전두환의 5.18 역사전쟁>은 5.18사태 전문가인 김대령 박사의 16년간의 연구 결산으로 지난해 11월 26일을 기해 출간됐으며, 인터넷 서점 아마존(www.amazon.com)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편집자주>
제4장 ∙ 문재인과 전두환의 5∙18 역사전쟁
2018년 10월 현재 문재인 ‘보궐’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 사이에 5∙18 역사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권력과 사법과 언론을 장악하고 일방적 공격을 하는 독재자 문재인은 거대 권력구조를 총동원하여 온갖 수단으로 공격하고 있는 반면에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방어 수단이 전혀 없으므로 대부분의 관전자들은 이 싸움은 상대가 안되는 게임으로 본다. 그러나 이것은 문재인의 거짓과 전두환의 진실간의 대결이므로 과연 언제까지나 거짓이 진실을 지배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모두가 광주사태의 진실 규명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이번 5∙18 역사전쟁의 시발점은 2016년 12월 초에 광주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탄흔이다. 박지원이 수억원의 국회특활비로 고용한 법률사기단이 작성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12월 9일 국회에서 가결됨과 때를 같이하여 광주의 언론들이 연일 전일빌딩 10층의 의문의 총탄 자국에 대하여 거의 매일 6개월간 보도했다. 그 후 그런 보도들이 메이저 언론으로 확산되더니 마침내 2017년 8월 23일 문재인 ‘보궐’대통령이 “공군전투기 부대의 광주를 향한 출격대기 명령이 내려졌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와 당시 전일빌딩을 향한 헬리콥터 기총 사격 사건 등 2건과 관련한 특별조사를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작금의 5∙18 역사전쟁은 1990년대 중반의 5∙18 재판 법리 전투의 연장선에 있다. 문재인이 5∙18 재조사를 지시한 이유는 발포명령자를 아직 찾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의 5∙18 재판은 전두환이 발포명령자라는 주장과 더불어 시작된 재판이었으나, 발포명령자를 찾지 못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과 관련하여 유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이것은 최환 검사가 악의적으로 유도한 착시 현상이었다.
1. 문재인 정부가 5∙18 재조사를 하는 이유
1990년대의 5∙18 재판 담당검사는 채동욱과 최환과 문무일이었으며, 최환 등 5∙18 검사들은 피고 전두환을 3년간 수사하였다. 그러나 3년간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드러난 사실은 전두환 광주사태 당시 보안사령관이 발포는 커녕 계엄군의 무장시민 무기회수 작전에 티끌만큼 이라도 관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5∙18 인민재판은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피고인 사형 판결을 미리 정해놓고 하는 재판이었는데 3년간에 걸친 수사 및 재판 결과 전두환의 결백만 입증되었다.
그래서 최환 검사가 낸 잔꾀가 전두환을 비자금 혐의로 처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환은 ‘정치자금=비자금=뇌물’이라는 법리를 급조하였는데 여기 세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불공평의 문제가 있다. 만약 대통령의 정치자금이 모두 비자금이라면 어째서 김대중과 노무현과 문재인의 정치자금 수사를 하지 않는가? 둘째로, 증거 부재의 문제가 있다. 뇌물을 준 사람이 있어야 뇌물죄가 성립되는데, 뇌물을 준 사람이 아무도 없다. 최환 검사가 비자금을 조작한 것은 손석희가 태블릿을 조작하여 최순실 것이라는 가짜뉴스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정농단 올개미를 씌운 것에 비견된다. 셋째로, 재판 부재의 문제가 있다. 최환 검사의 조작으로 시작된 전두환 비자금 관련 뉴스들은 모두 가짜 뉴스들이었다. 모든 형사적 처벌은 3심제 재판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임에도 김영삼 정부 법정은 가짜뉴스를 뿌린 뒤 아무런 증거 조사나 심리를 하지 않고, 1심과 2심을 거치지도 않고 아무런 뇌물죄 성립 입증도 하지 않은 채 여론몰이 인민재판으로 비자금 유죄 판결을 하고 추징금을 몇 배로 물렸다.
김영삼 대통령이 주도하여 전두환에게 선고한 사형 판결은 하나의 정치적 쇼였다. ‘정치자금=비자금=뇌물’이라는 법리로 엮으면 단 1원이라도 정치자금을 받은 적이 있는 전직 대통령에게 김영삼 정부 법정이 사형을 선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자금 건으로 사형을 처할 수는 없으므로 실제 형량은 3년 징역형이었고, 다만 김영삼 대통령에게 유리한 정치적 효과를 위해 형식적으로 사형을 선고했었다. 그러나 전두환이 제5공화국으로 취임한 때는 1981년이요, 광주사태는 그 전 해인 1980년에 발생하였으므로 대통령 취임 이후의 정치자금에 대한 판결은 사실 5∙18과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전기한 바와 같이 뇌물수수죄는 준 사람이 있어야 성립이 되며, 받은 자가 처벌받으면 준 자도 처벌받아야 법의 형평성이 있는데, 준 자의 처벌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재판이 생략된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뇌물을 준 자와 받은 자에 대한 재판이 전혀 없이, 받은 것으로 누명 쓴 자에 대한 사형과 5천억 추징금의 아주 가혹한 판결만 있었다. 그래서 만약 문재인이 정말로 진실을 밝히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최환 검사와 채동욱 검사를 소환하여 전두환 비자금 산출 근거를 제시하라고 하여야 한다. 만약 최환과 채동욱이 그것을 못하면 5∙18 법관들은 없는 죄 만들어내는 기술자들이었다는 핀잔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전두환 비자금 가짜뉴스는 팩트에 근거한 뉴스가 아니라 특정세력의 필요에 의한 뉴스였다. 최환과 채동욱을 위시한 5∙18 검사들이 3년간 아무리 수사하여도 전두환 광주사태 당시 보안사령관은 무장시민들의 무기회수 작전에 그 어떤 형태로든 전혀 관계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죄를 인정하자니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과 김대중의 평민당과 광주단체 등 5∙18 정치세력이 정치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였다. 그래서 최환 검사가 내놓은 잔꾀가 국민을 쉽게 속이고 여론몰이를 할 수 있는 전두환 비자금 언론 플레이였다.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바로잡기 법정이 전두환에게 사형 선고를 하였을 때는 전두환이 발포명령자라는 증거를 추후에 찾겠다는 밀약이 있었다. 원래 자고로 범죄 증거를 추후에 찾겠다는 전제 하에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문명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판결이다. 그리고 전두환에게서 범죄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면 1997년의 5∙18 재판 판결은 언제고 무너지게 되어있다.
만약 전두환 비자금이라는 게 있다면 어디에 있으며 왜 못 찾는가? 전두환 비자금은 확인된 적도 없으며 존재하지도 않고 단지 유언비어와 가짜뉴스만 있었을 뿐이었다. 전두환은 전혀 확인되지 않은 비자금 혐의로 아주 가혹한 처벌을 받았지만 광주사태와 관련하여서는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다. 최환과 채동욱 등 정치 검사들이 광주사태와 관련하여서는 전두환을 기소할 공소사실이 전무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범죄 입증과 처벌이 순서가 뒤바뀐 미완의 재판이었다. 즉, 먼저 전두환에게 가혹한 형벌을 선고함으로 3년간의 재판을 매듭짓고, 그 판결에 대한 근거는 재판이 끝난 후에 찾기로 한 미완의 재판이었다. 그런데 그 후 20년이 지나도록 김영삼 정부도, 김대중 정부도, 노무현 정부도 발포명령자를 찾지 못하여 5∙18 정치세력이 초조하게 되었다.
광주사태의 진실은 이렇다. 윤한봉과 윤상원 등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조직은 오늘날의 문재인보다 훨씬 더 과격한 적화통일 노선을 취하고 있었으며, 광주사태는 자생간첩단인 <남조선 민족해방전선>의 협조를 받아 남파된 공비들이 주도한 무장반란이었다. 힌츠페터의 5월 20일자 영상에서 <남민전>의 명령을 받고 공비들의 광주침투 길을 안내하던 조사천과 박용준을 제외한 나머지 괴무장단체는 모두 광주시민들이 아닌 공비들이며, 21일자 영상에서도 공비들의 도시게릴라전 행로 안내를 하던 전남도 농대 학생 김양래를 제외한 나머지 괴무장단체 대부분이 광주시민들이 아닌 공비들이다.
총은 공비들과 그 부역자들이 주로 쏘았고, 계엄군 총은 실탄이 없는 빈총이었다. 계엄군에게 실탄이 지급된 채로 광주에 진입한 때는 5월 27일 새벽 단 한번뿐이었다.
그 외에는 광주에서 군인들에게 실탄이 지급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발포 명령이 있을 수 있겠는가? 총은 공비들 및 그 부역자들이 일방적으로 쏘았는데도 5·18사기꾼들이 공수부대 집단발포 유언비어를 만들어 애매한 국군에 누명을 씌우고 전두환에 발표 명령 누명을 씌워 처벌하려 하는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그런데 5∙18을 이용하는 정치세력과 광주단체들이 원하는 것은 이런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다. 발포 명령이 있었던 것으로 사건을 조작하지 못하고, 전두환을 발포명령자로 엮지 못하면 5∙18 정치세력은 언제고 단번에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이다. 그리고 문재인 보궐대통령 재임 기간이 조작을 해서라도 발포명령자가 누구라고 규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물론 지금 문재인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전두환 회고록』 조차 출판 및 판매를 금지하는 독재정권과 전두환 사이에 전개되는 5∙18 역사전쟁은 일견 승패가 이미 결정된 싸움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아직은 진실의 승리에 대한 한 가닥의 기대가 있다.
형사소송법 제4조 제1항에 근거하여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본인의 주소지인 서울에서 재판받아야 하고, 또 형사소송법 제15조에 따르면 피고인은 범죄의 성질, 지방의 민심, 소송의 상황 기타 사정으로 재판의 공평을 유지하기 어려운 염려가 있을 시 관할이전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럼에도 광주지방법원에 이어 광주고등법원도 2018년 10월 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관할 이전을 기각하였는데(이데일리 2018. 10. 02), 이럴 때 우리는 광주 그 의도는 광주 5·18 권력의 이런 가혹한 처사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삼 정부 시절 5∙18 재판을 희대의 사기극으로 변질시킨 이는 채동욱 검사였다. 자, 광주사태는 공비들이 군 무기고를 습격하여 5천정이 넘는 총기를 탈취하여 시민들을 무장시킨 사건이었는데, 그때 공비가 분배하는 총을 받은 이들 다수는 전과자들과 깡패들과 미진학 청소년들이었다. 만약 지금 정체불명의 괴무장단체가 군무기고를 습격하고 무기를 탈취하여 총쏘고 다닐 때 국가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1980년 5월이라고 해서 국가의 의무가 다를 수가 있었는가?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엄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검찰청의 중론은 1994년에 광주단체들이 낸 5∙18 단체의 재판 신청을 기각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재판 신청자들의 황당한 주장들 중에 하나도 근거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재판 신청이 기각되려는 찰나에 채동욱 검사가 광주의 무장한 난동자들은 헌법기관이라는 미친 법리를 만들어 내었으며, 이 법리 하나로 군경 살해 등 무장난동자들의 모든 만행이 정당화되었다. 그래서 재판이 무장시민들이 헌법기관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며, 판결문 주요 내용이 무장난동자들이 헌법기관이냐 아니냐에 대한 우스꽝스럽고도 해괴한 법리 다툼이었다. 대법원 판결문에서는 ‘헌법기관’이라는 용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헌법에 준하는 기관’이라는 표현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준헌법기관’은 궤변을 위한 지극히 추상적인 용어일 뿐이요, 세상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광주법원이 『전두환 회고록』 출판과 판매를 금지하는 이유는 회고록에 1995년도 검찰의 광주사태조사 보고서가 몇 줄 인용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때 서울 검찰청 검사들이 대거 광주로 파견되어 광주사태 현장에서 여러 달 조사하고 모든 증인들을 불러 소환한 후에 조비오 신부가 광주사태 당시 유포한 헬기 사격설은 근거 없는 유언비어였다고 보고한 것이다. 현재까지 가장 공신력 있는 광주사태 관련 수사보고서는 서슬 퍼런 김영삼 정부 시절 작성된 검찰보고서이다.
지금(2017~2018년에) 광주법원이 『전두환 회고록』에 인용된 1995년의 검찰보고서 내용들을 삭제하고 있는 것은 1995년의 검찰보고서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행위요, 그러면 결국 김영삼 정부 시절의 5∙18 재판 근간을 부정하는 셈이 된다. 즉, 1995년의 검찰보고서가 부정되면 광주사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기준이 없어지므로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되며, 광주단체 들에 아주 유리했던 재판 판결도 그 유통기간이 끝나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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