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재인과 전두환의 5.18 역사전쟁 [28] – 전일빌딩 탄흔 관련기사

[LA=시니어타임즈US] 본지는 2019년 1월부터 518사건과 관련한 신간 <문재인과 전두환의 5.18 역사전쟁(The War of 5∙18 History between Moon Jae-in and Chun Doo Whan)>을 저자와의 합의 하에 연재를 시작한다.

<문재인과 전두환의 5.18 역사전쟁>은 5.18사태 전문가인 김대령 박사의 16년간의 연구 결산으로 지난해 11월 26일을 기해 출간됐으며, 인터넷 서점 아마존(www.amazon.com)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편집자주>

제4장 ∙ 문재인과 전두환의 5∙18 역사전쟁

5. 전일빌딩 탄흔 관련기사

5월 27일 새벽 이전에는 광주에서 실탄이 장진된 총으로 무장한 유일한 무장세력은 공비들 및 그 부역자들이었다. 계엄군이 실탄이 지급된 총을 가지고 광주에 진입한 유일한 시각은 5월 27일 새벽이었으며,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무장난동자 무기 강제회수 작전 직후 곧 바로 모두 원대복귀 하였다. 전일빌딩 탄흔은 국립과학수사 연구원 조사 결과 시민군 탄흔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계엄군에게 그 누명을 씌우려는 시도가 근 2년간 있었다.

2016년 12월 13일에 뉴시스 광주주재 배동민 기자와 신대희 기자는 “‘5·18현장’ 전일빌딩 총탄…헬기사격 가능성” 제하의 기사에서 “광주 전일빌딩의 총탄 흔적이 최소 10층 건물 높이에서 날고 있는 헬기에서 쏜 것으로 보인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그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분명히 미확정된 한 개인의 추정을 하나의 의견으로서 말하였을 뿐이다.

총탄의 종류에 대하여 김동환 실장은 “탄흔의 각도나 형태를 분석한 결과 M16 소총의 5.56㎜ 총탄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비무장 헬기에서 정면으로 M16 소총 사격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헬기는 언제나 건물 상공에서 비행하지, 건물 중간 위치에서 건물 정면을 향해 비행하는 헬기는 없으며, 더구나 무장공비가 헬기를 향해 사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할 비무장 헬기는 없다.

“5·18 최초 발포 명령자 반드시 찾는다” 제하의 나현호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광주광역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총탄 발굴을 의뢰했다:

[나의갑 / 5·18 진실규명 지원단 자문관: 그동안 우리가 많이 주장해왔던, 5·18은 광주 시민에 대한 학살이었다는 주장을 확실하게 뒷받침해줄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얼마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 등 두 곳의 탄흔이 헬리콥터 화기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공식 보고서를 처음으로 내놓았습니다. 광주광역시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아예 총탄 발굴을 의뢰했습니다(YTN 2017년 2월 7일자).

그러나 그 후 23개월이 지난 2018년 10월 현재까지 단 하나의 총탄도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국과수의 조사도 김동환 실장의 개인적인 추정 단계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한겨레신문 광주주재 정대하 기자가 이미 그의 2월 16일자 기사에서 보도한 바 있듯이 “헬기 기총소사 여부를 밝힐 수 있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정대하 2017).

전일빌딩 10층의 탄흔 중에는 5월 21일 오후 2시 반경에 무장 공비들이 전남의대 부속병원 12층 옥상에서 전일빌딩 방향으로 사격하였을 때 생긴 듯한 탄흔도 있어 보인다. 박준배 기자는 탄흔 중에는 “천장텍스 부분을 보면 탄도가 수평을 이루는 탄흔 자국이” 있음을 국과수 김동환 총기안전실장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보도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박남규 법공학부장과 김동환 총기안전실장 등 4명은 이날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10층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의 직접 증거가 될 실제 총탄과 추가 탄흔을 찾기 위한 조사를 벌였다. 본격 조사에 앞서 김동환 총기안전실장은 “작년에 전일빌딩 내부의 탄흔을 조사하며 천장 텍스 위쪽 부분에 탄흔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추가 조사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해 감식에서 발견된 천장 텍스부분 탄흔 자국을 언급한 것으로, 전일빌딩 10층 천장 텍스에선 수평으로 쏜 총알이 스치며 생긴 듯한 ‘찢긴’ 흔적이 다수 발견됐다. 김 실장은 이어 “천장텍스 부분을 보면 탄도가 수평을 이루는 탄흔 자국이 있는데 몇 개 정도는 (천장) 안쪽으로 진입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조사에서 온전한 탄환이 나오거나 파편이라도 나온다면 총탄의 종류를 확인할 수 있어 기대가 큰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헬기사격 입증 가능성과 관련해선 “지난해 조사 감정서에도 밝혔지만 5·18 당시에 10층 규모인 전일빌딩보다 높은 건물이 주변에 없었고 많은 탄흔이 위에서 밑으로 쏜 것으로 보인다”며 “탄환이 나오고 그 종류가 밝혀진다면 헬기에서의 사격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박준배 2017).

위의 김 실장의 말 중에서 전일빌딩보다 높은 건물이 주변에 없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전남의대 부속병원이 12층 건물로서 전일빌딩보다 높았다. 무장공비들은 전대병원 12층 옥상과 전남도청 4층 옥상 위에 기관총을 설치해 놓고 전일빌딩 방향으로 사격하였으므로 만약 기관총 탄환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당연히 무장공비 기관총 탄환일 수밖에 없다.

사진 43 ▲ 2017년 4월 3일자 연합뉴스 기사 사진에서 기관총을 장착한 군용트럭을 타고 있는 공비들은 북한군들이다. The photo of Yonhap News shows one of the Gwangju militia vehicles equipped with a machine gun.

전일빌딩 10층 어딘가에 탄환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광주단체들의 기대와 달리 단 한 개의 실탄도 발견되지 않은 사실을 노컷뉴스 김형로 기자는 “5·18 당시 헬기 기관총 사격 단서··탄환 발굴 못해” 제하의 2017년 3월 30일자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기관총 사격 의혹을 규명할 광주 전일빌딩에서의 총탄 발굴이 실패해 헬기 기총 소사 의혹 규명이 역사의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됐다. [중략] 그러나 국과수는 29일 오후 늦게까지 총탄 발굴 조사를 벌였으나 총탄은 물론 총탄 파편조차 발굴하지 못해 애초 30일까지 예정됐던 발굴조사를 하루 앞당겨 조기 마무리했다(김형로 2017).

KBS 양창희 기자는 4월 중순에 추가 총탄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5·18측 주장을 “‘5·18 헬기 사격’ 입증 총탄 흔적 또 발견” 제하의 2017년 4월 19일자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5.18 당시 계엄군 헬기의 기관총 사격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 전일빌딩에서 총탄 흔적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오늘 광주광역시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탄흔 감식 종합 설명회를 열고, 지난달 벌인 추가 감식에서 전일빌딩 10층 천장과 외벽 등에서 탄흔 60곳을 찾았다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지난해 9월부터 지난달까지 네 차례의 국과수 정밀 감식에서 발견된 총탄 흔적은 모두 245곳으로 늘었습니다. 탄흔은 10층 천장과 기둥 등에서 백77곳, 10층 외벽에서 16곳, 그 밖의 건물 외벽에서 52곳이 발견됐습니다. 10층의 탄흔들은 대부분 창문 주변 천장과 기둥 등에 부채꼴 모양으로 분포돼 있었습니다. 국과수는 이를 토대로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가 10층 건물과 비슷한 높이로 비행하면서 기관총 등을 난사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국과수는 10층 내부에 탄알이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도 수색을 벌였지만 발견하지 못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광주광역시와 5.18기념재단 등은 국과수 감식 결과를 토대로 헬기 사격에 대한 진상 규명을 정부와 국회 등에 요구할 계획입니다(양창희 2017).

이런 주장을 하는 5·18기념재단 이사들과 광주시 시장은 『5·18특파원 리포트』는 전혀 읽어보지 않은 것인가? 기관단총은 광주 괴무장 단체의 주요 무기였다. 만약 지금 현재 5·18측에서 제시하는 논란이 광주사태 때 계엄군과 시민군 중 어느 편에서 기관단총을 사용하였느냐에 관한 것이라면 5·18특파원들과 취재기자들이 본 것은 무장시위대의 기관단총뿐이었다. 예를 들어, 조성호 조선일보 기자는 『5·18특파원 리포트』 199쪽에서 광주 금남로의 무장시위대는 이미 5월 21일 오후 2시부터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한다.

사진 44 ▲ 공비 및 그 부역자들이 광주은행 본점 건물을 향해 총기난사한 현장에 있었던 무장시민들은 광주은행 유리창에 남아 있는 탄흔은 시민군 총탄 탄흔이라고 증언한다.

광주MBC 윤근수 기자는 “5.18 기록관 12일부터 ‘발포’ 전시” 제하의 2017년 5월 12일자 기사에서 “탄흔이 남아 있는 광주은행 유리창”이 5.18기록관에 전시되고 있음을 이렇게 보도한다: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은 개관 2주년을 기념해 발포와 관련된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1980년 당시 발포와 관련된 기록물뿐만 아니라 전남도청 옛 현판과 탄흔이 남아 있는 광주은행 유리창, 그리고 전일빌딩 등 관련 공간들을 재현해 관람객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윤근수 2017).

그런데 유네스코에 등재된 518기록물에는 그 탄흔들이 모두 무장한 광주시민들이 쏜 총탄 탄흔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김정균은 광주은행 유리창 탄흔은 시민군들의 발포로 인한 것임을 증언한다:

또 한 며칠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시민군들이 광주은행 본점 건물을 향해 총을 쏜 적이 있다. 그때는 대부분의 사무실이 커튼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광주은행 6, 7층 중 한 사무실의 창문에 커튼이 약간 젖혀진 것을 발견한 시민군들이 ‘계엄군이 저 건물에 있다’면서 총을 쏜 것이다(김정균 1989).

사진 45 ▲ 5·18기록물에서 시민군들은 전일빌딩 10층에 총탄 탄흔이 생긴 이유는 무장한 광주시민들이 전일빌딩 옥상에서 궐기대회 구경하는 광주시민을 사살할 목적으로 집단 발포하여 생긴 것이라고 증언한다.

나주에서 온 무장 고등학생으로서 5·18유공자가 된 김기광도 전일 빌딩 10층 총탄 탄흔은 군인들이 쏘아 생긴 것이 아니라, 5월 22일부터 26일 사이의 궐기대회 때 광주 시민들이 쏜 총탄 탄흔이었음을 이렇게 증언한다:

언젠가 궐기대회를 하고 있을 때 웬 사람이 전일빌딩 옥상에서 내려다봤다. 누군가 “저기 군인 같다”고 하니까 그 많던 사람들이 일시에 일어나 함성을 질렀다. 그때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옥상에 내려왔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긴장을 한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주변에 있다가 전일빌딩 옥상으로 총격을 가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가 군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알고 보니 그는 잘 보기 위해 올라갔다고 했다(김기광 1989).

지금 광주 단체들은 옛 전남도청 천장의 총탄자국을 보존하려고 하지만 양홍범은 자신은 총을 쏠 줄 모르는데도 M16을 지급받았으며, 도청 지하실 천장 탄흔은 자기가 쏜 M16 총탄 탄흔임을 증언한다:

그 젊은이가 내게, “이 총은 무슨 총입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처음 김영복 씨로부터 총 쏘는 법을 배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나는 문 앞의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M16 총을 세워놓은 뒤 탄창 끼우는 법, 안전 자물쇠 다루는 법, 노리쇠 사용법 등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총을 직접 쏴버렸다. 다행히 M16 총알은 천정에 박혀 아무 사고도 없었다. 나는 너무나 친절한 나머지 방아쇠 당기는 법까지 가르쳐 준 격이었다(양홍범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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