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드라마로 돌아온 화색(和色)

교회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이다. 갑자기 남편이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한마디 한다. “당신 얼굴색이 제대로 돌아왔네 이제 정상적으로 된것 같아. 화색(얼굴에 드러나는 온화하고 환한 빛)이 돌아.” 한다. 그 말에 내가 대답했다.

“그래요? 밤을 꼬박 새우고 오전에 잠시 두시간 잤는데 얼굴색이 돌아왔다니 감사하네요. 사실 이상하더라구요. 밤새 집중해서 드라마 봤으면 피로해져야 할텐데 오히려 회복이 일어나다니…”

우리의 대화가 좀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의도하지도 않았고 예기치도 않은 충격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를 풀 일을 스스로 찾는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텔레비젼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를 거의 안보는 편에 속한다. 그래서 유명한 드라마에 관해서도 무관심할 때가 많다. 드라마 보는것 말고도 관심을 가질 일,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어떤 드라마를 밤새워 봤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번 총선 결과 발표 후의 일이었다. 총선 그전날과 투표 당일날 금식까지 하면서 간절한 소원을 가졌었다.

이번엔 제발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보수우파가 승리하기를 빌었다. 하루종일 올금식을 하니까 금단 현상이 왔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이번 투표에 동참해 줄것을 카톡을 보내어 친구와 지인들을 독려 하면서 나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야당의 대참패였다. 밤늦도록 투표 결과를 지켜 보다가 개표율이 90%를 넘어서자 이제는 확정적이겠지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또 변수가 작용해 있었다. 거의 당선이 확정되어 가던 야당 후보들이 사전투표함을 개표한 후 다 뒤집어져 있었다.

새벽에 개표를 시작했던 사전선거함 개표를 하면서 순위가 다 뒤바뀌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본투표에서는 거대 두 여 야당이 비등한데 비해 사전선거에선 거의 2:1 비율로 야당이 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도저히 이해가 안되었다.

그날 나는 새벽기도를 가서 통곡을 하며 울었다. 앞으로 이나라에 닥칠 일들을 생각하며 소리 높여 울었다. 그렇게 기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마음은 무겁고 심란했다.

무얼해도 마음이 잘 잡히지 않았다. 많은 지인들로 부터 이번 총선 결과를 보고 맨붕’에 빠졌노라고 연락이 왔다. 심지어 함께 독려하며 기도했던 애국단톡방의 몇몇 사람이 단톡방을 탈퇴해 버렸다.

그만큼 그들도 마음이 힘들었던 것이다. 나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왜냐하면 나도 여러 단톡방에서 나와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방장으로 있는 단톡방을 제외하고는 다 탈퇴했다. 좀 쉬어야겠다는 멘트 하나씩을 남기고는 말이다.

그럴때 친구 목사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평소 같으면 반갑게 받을 전화였다. 그러나 그날 나는 어떤 전화도 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전화도 받 지 않았다.

이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한탄 밖에는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 지 서로 힘든 말밖에 나눌말도 없을텐데 차라리 통화를 안하는 편이 나을것 같아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총선 발표가 있었던 바로 그날 저녁 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시어머니께서 텔레비젼을 보고 싶어 하셨다. 나는 ‘동백꽃 필 무렵’ 이라는 KBS2에서 전에 방영한 수목 드라마를 틀어 드렸다. 20회 짜리였다. 어머니에게 한 두편 보게 해 드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도 텔레비젼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총선 패배에 마음이 잡히지 않던 나는 어머니와 함께 앉아 드라마에 눈길을 주었다. 다른 때 같으면 텔레비젼은 어머니에게만 보여 드리고 나는 차라리 밖에 나가 운동을 하든지 하면서 시간 사용을 다르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맥없이 지친 마음으로 그냥 앉아서 어머니와 함께 그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별생각없이 드라마를 보았다. 아마 저녁 8시경 부터 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중간에 어머니는 주무시러 방으로 들어 가셨다.

그런데 나는 꼼짝 않고 계속 다음회다음회 하고 리모콘을 클릭하면서 드라마를 보았다. 드라마의 내용에 그냥 몰입이 되었다. 우리 삶의 언저리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여러 사건들 속으로 나도 뛰어 들어가서 그냥 정신을 그곳에 집중하고 싶었다.

드라마의 내용은 포항의 옹산이라는 한 지방이 배경이었다. 까멜리아 라는 술집겸 카페 식당을 겸한 가게를 운영하는 미혼모 동백이와 그아들 필구의 주변에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과 함께 드라마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전개 되어갔다.

어느날 필구의 생부인 연봉 10억이 넘는 야구선수가 찾아온다. 동거하던 동백이가 아들을 임신한 것을 숨기고 떠났기에 아들이 있는줄 몰랐다가 필구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된 필구의 생부였다. 그는 아이를 훌륭한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로 키워야 하니 다시 살자고 하지만 동백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러나 동백은 그 시골마을의 파출소 순경인 젊은 용식의 사랑은 받아 들인다. 가게 보증금을 내지 못하는 가난앞에서도 동백은 편함과 부같은 편리함을 택하지 않고 인생의 더 중요한 가치인 진실, 순수, 용기, 사랑, 의리, 배려, 동정심 이러한것을 소중히 여기는 여자다.

마침내 동백은 동네 사람들의 편견도 이겨내고, 용식 어머니의 혹달린 여자를 내 아들의 며느리로 삼을 수 없다는 반대도 이겨내고, 동네 잡다한 놈팽이들의 유혹도 이겨내고, 아들필구의 생부의 물질공세도 이겨낸다. 그리고 정말 순수하고 동백만을 최고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용식과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그리고 덤으로 필구의 생부로 부터 선물을 받는다. 그는 아들이 태어나 8살이 되도록 돌보지 못한 아빠로서의 미안함과 앞으로 아들 필구가 메이저리그 야구선수가 되기까지 교육을 위해 준비한 거라며 500만원이 저축된 통장과 카드를 동백에게 내민다.

필구의 생부는 통장과 카드를 주면서 질투에찬 일성을 내 지른다. ”너희들 결혼식(용식과 동백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할때 이 통장에서는 국수 한그릇 값이라도 지불해서는 안돼! 이 돈은 오직 필구의 양육비 교육비로만 써야돼!!”라고.

그리고 한마디 더 보태고 선그라스를 쓴 얼굴로 필구 생부는 자리를 떠난다. “이 통장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통장이야. 아무리 써도 언제든지 500만원이 들어 있는 통장이야” 라는 놀라운 말을 하면서 말이다. 바로 그것은 마스터통장인 것이다.

500만원 한도내에서 얼마든지 지출해도 곧 500만원이 채워져 있게되는 통장이니 5억 아니 50억이 든 저축통장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통장이었다. 드라마의 끝장면을 보면서 나는 중얼 거렸다.

“나도 저런 통장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그렇게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웃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너도 이미 저런 마스터 통장을 갖고 있는 사람이잖아 하나님이 지금까지 함께 해 주셨잖아. 앞으로도 함께해 주실거고…

어찌됐건 나는 한밤을 꼬박 새우고 아튿날 아침까지 20회나 되는 드라마를 다 본 것이다. 실로 이런 집중력은 내 인생에 몇번 없는 집중력 이었다. 아마도 석 박사 학위논문을 쓸때도 이런 집중력을 발휘하진 못했을것 같다.

오래전 선교지에서 ‘대장금’이라는 비디오 전체를 구입해서 밤을 꼬박 새며 본적이 있었다. 얼마나 재미 있든지 한국 텔레비젼을 못 보았던 때여서 더 재미있었다. 한국 드라마는 정말 재미 있다. 그래도 그때는 새벽녘까지 보았지만 꼬박 밤을 새진 않았다.

그 드라마가 나오고 난 후 중국에서도 유명해져서 대장금(大张金)이라는 이름의 한국식당이 중국의 곳곳에 생기기도 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내가 밤새워 집중해 보았던 드라마가 바로 일본여인들을 매료시켰던 욘사마 배용준 주연의 ‘겨울연가’이다.

그러고보니 드라마 집중해서 보는 전력이 내게 있었다는 것이 다시 확인되었다. 강한 스트레스를 받을때 우리의 정신세계는 그 스트레스와 전혀 다른 곳으로 탈출구로 삼는다는 것을 또다시 체험한 셈이다.

나는 밤을 새워서 몸은 피곤했을텐데도 정신은 오히려 맑아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는 남편이 곧 알아 차리고는 “당신 얼굴색이 정상으로 돌아왔어. 얼굴에 이제 화색이 제대로 도네”라고 말한 것이다.

올봄은 봄치곤 유난히 바람이 쌀쌀하지만 아직 봄은 좀 남아 있고 내 인생도 아직은 좀 남아 있다. 역사속으로 흘러갈 여러 사건들을 이제 좀 관조하면서 바라봐야 겠다. 모처럼 화색이 돈 얼굴색 잃어버리면 또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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