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시니어타임즈US] 본지는 2020년 7월부터 최익주 선생의 <그렇게 선진국이 가능해?(가제)> – 국민의 반성과 국가적 전환점(부제)을 저자와의 합의 하에 글이 출판되기 이전에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는 회차별로 매주 한편씩 실리게 되며, 글의 배포는 무방하나 무단전재는 금한다. 글의 소유는 전적으로 저자 최익주 선생에게 있음을 알리며, 본지의 편집방향과는 무방하다.
<그렇게 선진국이 가능해?>는 저자가 20년여 전부터 대한민국이 인간적으로는 물론이고 총체적으로 한계에 봉착했고, 또다시 혼란과 위기와 망국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함과 동시에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원인들을 연구했다. 이에 저자는 대한민국이 부디 새롭게 출발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산업화 이후의 시기부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어난 일련의 최근 사건들을 통해 그 문제점 되짚으며, 앞으로 대한민국이 바르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편집자주>
7. ‘친일파들’보다 훨씬 더 비열하고 잔악한 ‘친일파·적폐 청산론자들’ Ⅱ
중국의 무협지 수준인 친일파(적폐)청산론자들
중국인들의 인간성과 문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함축해주는 것이 무협지와 무협영화다. 무협지와 무협영화는 과거에 발생한 비극적인 개인사와 가족사에 인생을 내맡긴 채 피비린내 나는 보복과 중상모략이 저질러진다.
이처럼 무협지와 무협영화는 존엄해져야 할 인간이, 역시 장래를 짊어져야 할 젊은이들이 몸담은 현실(문제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서 해결하거나, 능력과 잠재력과 경쟁력을 통해서 미래를 만들어가지 않고, 피비린내 나는 보복과 살육과 암투와 전쟁으로 서로를 망가뜨리고 망가지는 비인간적인 인간성과 역사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만일 모든 사람이 무협 영화처럼 살아간다면 온 세상이 지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좋은 점은 무시되고, 갈수록 나쁜 점들이 확대·재생산·뻥튀기되면서 죽고 죽이고 모략하는 지옥의 구성원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추가 : 우리 역시 참담했던 5천 년과 친일청산을 똑바로(인간적으로) 진행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서 친일청산이 아닌 ‘친일파청산’으로 악용되었으며, 또다시 대한민국은 우리끼리 더욱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는 윤미향과 그 일행이 정신대(위안부) 할머니들의 처참한 삶에 기생해서 더럽고 추악한 짓들을 저질렀던 것과 거의 모든 면에서 일맥상통하다.
심지어 문재인 정권의 핵심들이 노무현과 똑같은 수준에서 ‘적폐·친일파청산’을 악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군과 친일파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유린당했던 할머니들을 등쳐먹은 비인간적이고 반민족적이고 야만적이고 비열한 범죄자(윤미향 등)와 단체에는 ‘찍’ 소리도 안 하는지, 못하는지 보호·두둔해주고 있다.
이제는 일본군과 친일파들보다 훨씬 더 비열하고 잔악한 ‘친일파·적폐 청산론자들’을 대한민국을 분열과 갈등과 위기와 망국으로 몰아넣는 가장 저질세력, 부패세력, 위험세력, 역적세력, 망국세력으로 취급해야 한다.)
무려 60년(이 글을 쓰던 시점까지)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친일(파)청산
한일합방은 역사적·국가적 사건이다. 그래서 친일(행위)의 원인과 책임은 개인(친일파, 백성들)보다 먼저 허약한 국가(조정)와 열등한 민족성과 후진적인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일본이 침략했을 때 우리 조정(나라)의 상황부터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전의 사회상과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과 후진적인 의식구조와 열등했던 민족성을 확인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개인들의 친일행위를 따지는 것이 순서다. 그리고 그간에 우리끼리 잘못하고, 차별하고, 허약해지고, 무가치하게 살았던 민족성과 문화와 관행과 인간관계와 사회제도 등 거의 모든 면을 점검하고, 정리하고, 화합하고, 용서하고, 통합해야 한다.
왜냐면 과거는 지나버렸다고 치더라도 우리 국민이 의식을 향상하고, 사회문화가 월등해지고, 대한민국이 도약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일본보다 강해질 수 있고, 우리가 일본을 깨우쳐줄 수도 있으며, 일본이 나아갈 빙향과 미래의 본보기가 되어줄 수 있다.
당시 우리의 사회현실과 백성들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 백성들은 일본이 침략하기 훨씬 전부터 빈곤과 차별과 불행이 극에 달해서 비참한 상태였다. 백성들은 나라(조정)로부터 보호받지 못했고, 백성의 대부분이 상놈과 천민으로 전락한 채 양반·관리들에게 학대와 착취를 당하면서 의지할 곳이 없었으며, 국가적 자긍심도 국민적 존엄성도 없었고, 각자 알아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이처럼 열악한 조건과 환경에서 나라까지 빼앗겼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백성들에게 일자리와 지위를 제공했다. 일부는 돈으로 유혹하거나, 무력으로 압박했다. 이처럼 갖가지 압력과 술책과 회유를 백성들이 이겨낸다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일본 덕분에 고통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이고 생계가 해결되는 반가운 소식이었을 수도 있다. 당시에 우리는 국가관도 가치관도 아예 없었고, 극심한 굶주림과 빈곤에 허덕였으며, 동족으로부터 갖가지 차별과 착취와 학대에 시달렸다. 심지어 일본군들이 물러나면 양반관리들에게 더 심하게 당할 것을 걱정한 백성들도 많았다.
어떻든 백성들 대부분은 민족과 나라와 후손과 미래를 걱정할 수준도, 유혹과 협박과 회유를 버텨낼 자존심과 의식수준과 국가관도, 직장과 지위를 거절할 여유도 없었다.
(※ 필자가 당시에 살았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했을지 조금도 장담할 수 없다.)
그 당시 상황을 재조명해보면
첫째, 조정은 무능과 탐관오리들의 부패로 지극히 허약했고, 백성은 빈곤과 착취에 방치된 채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둘째, 백성들은 쇄국정책으로 무지에 갇힌 상태였고, 관심사는 오직 생계 해결이었다.
셋째, 양반관료들은 국제사회에 무지했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위해서 호의호식과 입신양명과 부귀영화의 연속선에서 높은 곳만을 위하고 향했고, 아랫것들은 무시하고 천대했다.
넷째,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온 국민이 차별에 멍들어 있었다. 나라 전체가 신분, 계급, 직업, 남녀, 나이, 적자서자, 며느리, 아들딸, 장남·차남까지 차별이 심각했고, 조정과 관리들은 차라리 없는 것보다 못할 정도로 잔악했다.
다섯째, 이런 지경에 나라까지 빼앗겼고, 백성들은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했으며, 살아남는 방법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었다.
(※ 오늘날 북한 인민들이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 그런데 훗날 누군가가 나타나서 악랄했던 독재체제는 방치·언급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사람들의 과거(신분, 행적)와 행위(도둑질, 밀수, 탈북, 월남, 체제전복, 보위부 등)을 구분해서 매국과 역적 행위로 내몰아서 명단을 작성하고, 처벌을 주장하면 어떻겠는가?)
친일행위는 받아놓은 밥상과 같아
우리처럼 내부가 부실한 상황에서 친일행위는 받아놓은 밥상과도 같았다. 6.25가 터졌을 때도 남한의 상당수가 북한에 동조했고, 북한의 상당수는 남한에 동조했다. 이것을 봐도 우리의 민족성은 이쪽도 저쪽도 피차 엉망이었다. 임진왜란 때도 빈곤과 착취와 차별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양반(탐관오리)들에 대한 반발심과 보복심으로 왜군의 침략을 수수방관했다. 오히려 왜군들이 탐관오리들을 모조리 없애주길 기대할 정도였고, 이와 관련된 증거들은 곳곳에 남겨져 있다. 동학혁명에서도 보듯이 조선은 백성의 반발과 저항이 극에 달했고, 백성들도 엉망인 수준이었으며, 한편으로는 백성들 역시 노예 수준에 불과했고, 잔악했던 양반관리보다 훨씬 더 무지하고 잔인하고 구제 불능이기도 했다. 6.25 때 북한에 동조한 상놈(머슴)들의 잔악성도 좋은 사례다.
바로 이것이 나라가 허약한 설움이고, 나라를 빼앗긴 설움이며, 모두가 반성해서 월등해져야 하는 이유이고, 친일파·적폐 청산론자들이 친일파들보다 훨씬 더 비인간적이고, 반민족적이고, 비열하고, 악랄한 이유다.
(※ 마치 북한인민들이 내부변화와 개혁은 무지·외면한 채 차라리 전쟁이 터지길 기대하거나, 남한과 미국을 부러워하면서 남한과 미국이 쳐들어와서 김정은과 보위부 등을 죽여버리고, 인민들을 살려주고 도와주길 바라는 극한의 처지와 심리와도 같다.)
따라서 친일행위는 일본침략에 맞춰서 허약한 나라와 조정이 허물어지면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상들이었다.
이는 초라하고 허약한 조정, 후진적인 민족성, 관료들의 부패, 처참한 백성들의 무지와 현실, 봉건사회의 폐쇄성으로 인해서 우리를 지켜내고 버텨줄 국가적 자긍심도, 개인적인 자존심도, 합리적인 사상도, 인간다운 존엄성도, 바람직한 문화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친일파청산’(적폐청산도 마찬가지)은 그때 당시의 시대상황과 민족성과 복합적인 내용들을 모두 무시한 채 개인의 잘못으로만 몰아버린 잔악하고 비열한 의도와 불순한 세력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이는 중국 무협지의 보복과 같고, 현대사회라고 했을 때 오히려 친일파들보다 훨씬 더 비열하고 야비한 짓이다.
친일파는 어떤 사람들이 해당하는가?
‘친일파’를 기어코 따진다면 「조국을 빼앗겼던 36년 동안 목숨 걸고 싸우지 않고 그들의 통치 아래서 살아간 당시의 왕권, 관리, 양반, 백성, 민족성은 물론이고 허약했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를 똑바로 정리하지 못한 후손들」을 총칭하는 의미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친일파를 적극적인 친일파와 소극적인 친일파로 나눌 수 있다.
적극적인 친일파
적극적인 친일파는 일본의 편에 서서 나라를 팔아먹거나, 독립군들을 잡아 들이거나, 독립을 방해하거나, 동족을 악랄하게 괴롭히고 착취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친일파청산론자들의 조부와 부모 역시 당시에 ‘적극적·소극적 친일파들’이 아니라고 장담·증명할 근거는 없다.)
소극적인 친일파
소극적인 친일파는 당시에 우리 백성들이 모두 해당한다.
일본에 직접·간접으로 협조했거나, 조국의 독립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던 사람들 대부분이 소극적인 친일파에 해당한다. 일본의 총칼에 겁을 먹었든,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였든, 심한 차별과 억눌림을 모면하기 위해서였든, 단순한 심부름이었든, 창씨개명했든, 일본에서 공부했든, 일본과 일본인 기업에 취업했든, 일본말을 사용했든, 애국심이 부족했든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한 대부분이 해당한다.
다시 말해서 일본과 싸우지 않고 그들의 회유와 압박과 유혹에 직접간접으로 충성, 취업, 심부름, 협조, 수수방관, 무관심했던 모두가 소극적인 친일파들이다.
역시 이에 대한 원인은 역사와 문화와 민족성이 열악하고 열등했던 것에서 찾아야 하고, 모두가 참담했던 과거에 대해서 눈물로 참회하고 반성하고 이해하고 승화하고 용서하고 포용하고 화합하면서 더 나은 사회문화와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당연했다.
※ 필자의 아버지는 최본(崔本, 다까모도)으로 개명했다. 김대중은 토요다 다이추(豊田)였다고 한다.
※ 친일파청산론자들과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 역시 당시에 소극적인 친일파들이 아니라고 장담하고 보장할 근거는 없다. 설사 자기부모와 조부모가 독립군이었다고 해도 자신도 독립군이 되었을 것이라는 보장과 장담은 더욱더 할 수 없다.
※ 지금도 피차 답답하고 무지했던 조상들과 암울했던 역사와 시대의 잘못된 부분들에 기생해서 나라를 망치는 ‘친일파청산론자들이 훨씬 더 비열하고 교활하고 잔악하다.
※ 우리 국민 대다수도 극한에 처한 동족(북한 인민들)을 수십 년째 방치했고, 친일파(적폐) 산론자들은 친일파들보다 몇천 배는 더 잔악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백정놈들을 두둔·비호·대변해주면서 하수인 노릇과 역적 짓들을 당연하게 저지르고 있다.
※ 친일파청산을 주장하면서 친일파 인명사전을 만들었던 민족문제연구소(일행들)는 독립군들의 후손과 정신대 할머니들과 강제노동 피해자들과 이들의 유가족들과 북한 인민들의 인권과 참담한 실상을 지원해주기 위해서 그간에 얼마나 어떻게 노력해왔을까?
이들이 정말 민족주의자들인지, 애국자인지, 역사의 칼과 정의 칼을 움켜쥘 자격과 자질이라도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인권과 인륜과 나라까지 망친 역적들인지는 반드시 짚어져야 한다.
진정한 독립군은 누구인가
독립군도 역시 소극적인 독립군과 적극적인 독립군으로 나눌 수 있다.
소극적인 독립군이란 일본, 일본인, 일본의 대동아 정책, 친일파에게 피해와 고통을 당해서 저항하다가 부상, 투옥, 고문, 죽임을 당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싸우게 된 동기가 피해와 고통을 당한 경우다. (※ 친일파청산론자들과 그들의 조부와 부모들이 소극적인 독립군이라고 장담하고 보장할 근거는 없다.)
적극적인 독립군이란 조국의 해방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직접 투쟁하거나,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제공해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앞장서서 활동하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협조해준 독립투사들이다.
(※ 친일파청산론자들과 그들의 조부와 부모가 당시에 적극적인 독립군이라고 장담하고 보장할 근거는 없다. 설사 자기 부모와 조부모가 독립군이었다고 해도 후손들이 역사의 칼을 추켜들 권리와 자격은 없다.)
독립투사들은 후손들의 친일파청산을 어떻게 생각할까
당시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 적극적인 독립투사들은 일제 치하에서 그럭저럭 살아가던 사람들이 모두 친일파로 여겨졌거나, 준 친일파로 생각되었을지도 모른다. 역시 해방 후 무려 60(70)년 동안 친일(파)청산을 똑바로 못해낸 후손들이 친일파들과 다를 바 없다고 통탄했을지도 모른다.
역시 기왕에 친일(파)청산에 실패했다면 후손들이 차라리 반성하고 용서하고 포용하고 화합하고 협력해서 아름다운 평화와 복지를 실현해가길 바랐을 수도 있다. 일본보다 훨씬 더 부강하고 아름다운 나라와 국민의식으로 발전해가길 학수고대했을 것이다. 역시 후손들이 진정한 선진국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투사)들의 희생에 보답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제대로 한 것이 없었다.
이렇게 본다면 독립투사들은 우리(후손)들이 나라를 100-70년 전의 사건과 잘못으로 끌어다 놓고 분열하고 대립해서 사람만 끌어내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통탄하고 경악해서 무덤에서 뛰쳐나오고 싶었거나, 오히려 친일파청산론자들을 신랄하게 꾸짖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에 친일파들이 독립군들과 동족을 짓밟았던 것은 무지하고 빈곤했기 때문이라는 변명이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안정되고 발전 가능한 시대와 나라에서는 얼마든지 인간다운 협력을 통해서 월등한 사회문화를 이뤄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친일파청산(론)은 과거 친일파들과 다를 바 없으며, 오히려 훨씬 더 비열하고 잔악한 짓들(발상, 인간성)이다.
친일파청산론자들은 독립유공자들에게 언제부터 얼마나 어떻게 관심과 애정을 쏟았는지 따져봐야
독립유공자들과 후손(자녀)들이 비참할 정도로 어렵게 살았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친일파청산론자들은 평소에 국가유공자들과 그 자녀들에 대해서 얼마나 어떻게 지원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친일파청산을 주장하거나, 친일파를 심판할 자격을 인정받으려면 독립유공자들과 그 자녀들에 대해서 평소에 보였던 관심과 지원 사실이 명백해야 한다. 반대로 독립유공자들과 후손들의 힘겨운 삶을 방치했다면 오히려 반성해야 할 입장이다.
어떻든 우리 국민 중에서 어느 날 갑자기 ‘친일파청산’을 이벤트행사(깜짝쇼)처럼 추켜들고 나설 자격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감히 역사의 칼을 추켜들고 우월한 입장을 차지하는 것은 친일파들에 이어서 또 다른 반민족적인 역적 짓들이 분명하다.
(※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이유는 동족을 적대시하거나, 차별하고 착취해 먹은 악당(탐관오리)들로 인해서 나라가 허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도 윤미향(정의연)이 잔악했던 일본군과 비열한 친일파들보다 훨씬 더 악랄하고 교활하게 할머니들을 착취해 먹었다. 이는 역사에서도 지금도 우리가 일본과 중국에 못지않게 우리민족끼리 당연하게 착취해 먹을 정도로 잔악하다는 증거다. 친일파청산론자들과 김원웅은 왜 윤미향에 대해서는 두둔하고 비호하고 침묵하는가?)
친일(파) 청산은 어떻게 해야 했는가
첫째, 한일합방은 일본과 조선의 국가적 문제이고 역사적 사건이다. 따라서 우리가 국가적으로 왜 허약했으며, 나라까지 빼앗겼는지 다양하게 분석하는 것이 순서다. 그리고 다양한 원인과 의견들을 자유롭게 피력하고 충분하게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
둘째, 우리민족끼리 저지른 잘못들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인간적, 민주적 잘못(원인)들 곧 신분차별, 빈곤, 무지, 양반의 횡포, 관리들의 착취, 폐쇄 문화, 봉건의식, 부실한 세계관, 삐뚤어진 인생관 등에 대해서 샅샅이 확인해서 진심으로 반성하고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셋째, 일본제국주의 편에 서서 독립을 방해한 사실과 그 인물들, 악랄하게 동족을 괴롭히고 착취했던 적극적인 친일파들의 잘못을 모두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반성과 용서를 병행하면서 그들에 대한 법적, 사회적 후속 조치들을 진행해야 한다.
과거청산은 반드시 전체 국민이 동일한 입장에서 시도해야
우리는 해방 이후 70년이나 친일파청산을 거론하면서 사람만 문제 삼다가 실패했다. 이후 친일파와 결혼하고, 친인척이 되고, 사돈네 팔촌, 선후배 동문, 직장 상사와 동료와 부하 직원, 동업자가 되는 등 갖가지 인간관계가 형성되었다. 이들에게 고용되어서 월급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고, 이들을 고용해서 월급을 준 사람들도 있었다. 이처럼 우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시대와 사회와 문화와 인연과 인간관계로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한국은 ‘친일(파)청산’이라는 특별한 격식과 처벌절차 없이 서로의 부끄러운 과거와 잘못과 아픔을 조용히 묻어버린 셈이다.
그래서 과거 친일행위와 해방 후에 친일(파)청산에 실패했던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한마디로 우리 모두의 잘못이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래서 특정 정당이나, 특정 단체가 불쑥 나서서 역사의 주체와 주인공처럼 행세하거나, 칼을 추켜드는 것은 또 하나의 반민족적인 짓이다.
따라서 ‘친일파청산’에 앞서서 ‘친일청산’부터 진행해야만 다수 국민에게 반성과 향상의 기회와 자격이 동시에 주어진다. 그래야 국민들이 부끄러운 과거든, 수치스러운 자화상이든, 친일행적이든 똑바로 정리해갈 수 있다. 비로소 가해자(친일 범죄자)들을 용서하든지, 찾아내든지, 처벌하든지, 환수하든지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때문에 ‘과거청산’은 반드시 전 국민이 똑같은 입장과 주체로서 서로의 과거와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하면서 밝은 미래로 향해가는 대전제 아래서 진행되어야 한다. 역시 과거(친일청산)를 정리해가는 주체(세력)는 이익, 손해, 감정, 편견, 정치, 정당, 이념이 개입되지 않은 공정한 입장이어야 한다.
만일 이후에도 다양한 연구와 국민성 향상을 위한 방안(과정)도 없이 ‘친일파청산’(적폐청산)을 주장한다면 과거 백성의 삶을 도탄으로 몰아넣은 탐관오리들의 비열한 습성을 반복하는 것과 다름없다.
저자 최익주 선생은 전남 목포 출생으로 목포북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광역시로 이사해서 북성중학교, 동신고등학교, 조선대학교 경영학과(78학번)를 졸업했다.
군생활을 오산비행장 방공포부대에서 병장 만기 제대, 3년간의 개인 사업을 했으며, 관세사무소에서 16년 동안 사무장으로 지내다가 광주세관과 관세청과 부정비리 문제로 싸움(형사소송)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실체와 실상을 깨닫고 인생을 180도 선회. 이후 밑바닥부터 다시 터득하고 통달해야 한다는 각오로 시민단체(2-3년), 택시기사(2년 6월), 생산공장과 건물경비(10년여)를 전전하면서 노동자 생활을 해왔다.
저서로는 <이제는 바꿔봅시다(1997.7.30.)> <대화로 여는 새아침(1999.9.20.)> <사랑하는 선·순·아에게 제1-4권(2018.7.1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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