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림

오늘은 어머니가 주간보호센터에 안 가시는 토요일이다. 나는 오전 열시에 예약되어 있는 동네에 있는 미용실로 갔다. 우리 동네에 있는 미용실에 처음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우리 동네서는 보통 7~8만 원 이상 하는 파마비가 부담스러워서 가기가 불편해도 계속 예전에 살던 동네로 어머니를 자동차에 태우고 모시고 가서 파마를 해드렸다.

그러던 참에 내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한 이웃을 만났다. 부부미용사로 이 동네에서 미장원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물어 보았다. “혹 경로파마 라고 노인에게 우대해 주는 파마가 있나요?”

그러자 그 이웃 분은 “저희는 기본으로 가장 저렴한 파마가 5만원 입니다. 그런데 이웃이 오시면 4만원에 해 드릴게요.” 한다. 그래서 나는 옛날동네 미용실보다 불과 만원 더 비싸니 그냥 동네 미용실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우리 동네 미장원에 가게된 것이다. 어머니가 파마를 하시기 위해 가운을 갈아입고 미용실 의자에 앉으셨다. 파마를 해 드린다고 하니 어머니는 어린애처럼 활짝 웃으며 좋아하신다.

그러나 나는 아기 같은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또 다른 근심이 밀려왔다. 점점 분별력을 잃어가는 어머니가 최근에 또 사고를 하나 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나에게 또 적잖은 고민을 안겨 주었다.

며칠 전 일이다.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온 어머니에게 저녁을 차려 드렸다. 그런데 그날따라 어머니의 식사시간이 꽤 길어진다고 느껴졌다. 나는 내가 관찰한대로 “여보! 오늘따라 어머니 식사시간이 길어지시네요 했다.

그런데 오래갈 것도 없이 곧 왜 어머니의 식사시간이 길어졌는지가 판명되었다. 식사를 마친 어머니의 양치와 틀니세척을 맡고 있는 남편이 화장실에서 소리쳤다. “여보! 어머니 틀니가 한쪽밖에 없어!!”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긴장이 되었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틀니는 생명연장도구인데 아래쪽이던 위쪽이던 틀니 한쪽이 없어졌으면 음식을 씹을 수 없는데……. 확인을 해 보니 어머니는 윗틀니만 끼고 있었다. 아랫틀니가 없어진 것이다.

분명히 그날 아침식사 후에 내가 양치해 드리고 아래, 위 틀니를 다 세척해서 끼워 드렸었다. 그런 다음 마스크를 입에 씌워드리고 주간보호센터 차량에 태워 드렸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나가시는 주간보호센터의 책임자인 시설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분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얼마 후에 연락이 왔다. 점심을 먹고 어머니의 틀니를 세척해 주시는 요양보호사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가 점심 드시고 틀니 한쪽만 빼주시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센터 안에서는 계속 마스크를 쓰시도록 하기 때문에 틀니가 그냥 빠지거나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혹 어머니가 틀니를 빼 버리는 영상이 있을까 하여 CCTV를 다 돌려 보았지만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나는 그래도 주간보호센터 안에 어딘가에 틀니가 떨어져 있거나 하겠지 했다. 틀니를 곧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틀니는 종내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다.

센터에서는 청소를 하면서 다 살펴보았는데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종종 틀니를 빼서 주머니에 넣고 있을 때가 있다고 담당 요양보호사가 그러더라면서 어머니 옷의 호주머니를 뒤져 보라고 한다.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전화를 끊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고는 얼른 어머니 방으로 달려가서 어머니의 재킷 양쪽 호주머니 그리고 바지 양쪽의 호주머니를 싹 다 뒤져 보았다. 그러나 틀니 비슷한 것도 없고 크리넥스만 몇 장 손에 잡힌다.

그래도 나는 계속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시설장님에게 말했다. “저…그러면 혹시 CCTV가 없는 화장실 안에 휴지통 같은 곳을 한번 찾아봐 주시겠어요?” 했다. 그러자 그는 찾아보고 나서 없다고 한다.

도대체 어머니의 틀니가 어디로 갔을까 하늘로 올라갔을까 땅 밑으로 사라졌을까 참으로 미스터리한일이다. 집에서나 센터에서나 늘 사람이 붙어 있고 보호받고 있는 어머니의 신변에서 일어난 일이니 말이다.

물론 아침저녁 어머니의 송영을 맡은 스타렉스 기사님에게도 확인을 했다. 차안을 다 찾아봐도 어디에도 틀니가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 틀니는 어디로 갔을까 틀니에 발이 달려 도망간 것도 아닐 텐데…….

이튿날 주간보호센터를 다녀오신 어머니는 여전히 틀니 위쪽만을 끼고 있으셨다. 센터 안에서는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할 수 없이 이제 나는 틀니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포기해야만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리고 혼자 생각에 빠졌다. 어머니가 틀니를 빼서 사람들의 눈에 뜨이는 어느 곳에 버렸다면 분명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어머니가 틀니를 빼서 변기 속에 넣고 물을 내려 버렸다면 그건… 찾아내기에 불가능하다.

그런데 내가 이런 추정을 해 볼 수 있는 근거가 있었다. 어제 저녁의 일이다. 어머니가 저녁을 드신 후 내가 양치를 시켜 드리려고 화장실로 모시고 갔다. 그런데 틀니를 뺀 어머니가 입에서 오렌지 조각을 세 개 꺼냈다.

식사 후에 후식으로 작은 귤 한 개를 까서 드렸더니 다 드시지 못하고 입안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걸 받아서 양변기속에 버렸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화장실에 잠간 있으시게 한 후 주방에 잠간 다녀왔다.

그런데 그 사이에 어머니는 또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양변기 안에 손을 집어넣고 오렌지 조각을 물이 빠지는 구멍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제 도대체 뭐가 더러운 지 깨끗한지도 분별이 없어진 모양이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어머니가 틀니를 빼어 양변기에 넣고 저런 식으로 물이 빠지는 구멍 쪽으로 밀어 넣었을 개연성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이제 나는 어떻게든 어머니의 틀니를 추적해서 찾아보려는 마음을 그만 접어야만 했다.

동시에 어머니의 새 틀니를 마련해야 하는 숙제가 내 앞에 놓여 있게 되었다. 그런데 틀니가격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수년전에 우리가 선교지에서 돌아왔을 때 어머니의 틀니낀 입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당시 평상시보다 현저하게 살이 빠졌던 어머니는 살이 빠지면서 전에 쓰던 틀니가 맞지 않게 된 모양이었다. 아니면 늙어 가면서 입모양의 모형이 수축작용을 일으켜 틀니가 잘 맞지 않게 되었든지 잘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틀니를 다시 맞추자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반대했다. “그만둬라 내가 이제 80도 훨씬 넘었는데 언제까지 살겠니?”살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새틀니를 하면서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틀니를 다시 해 드렸다. 마침 나의 막내딸이 보너스 탄 것을 전액 내 놓아 할머니 틀니를 해 드리라고 했기에 가능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입에 잘 맞는 새틀니를 끼신 후 어머니는 식사를 잘하게 되시면서 체중도 10킬로그램 정도 불어나고 아주 건강해 지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 죽을지도 모른다던 어머니는 90을 훌쩍 넘긴 오늘까지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신다. 어머니가 오래 사시니까 열악한 환경인 반지하 빌라에서 벗어나서 햇볕 잘드는 고층의 따뜻하고 좋은 집에서 살아도 보게 된 것이다.

이런 경험으로 나는 틀니가 노인의 생명연장도구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이빨이 제대로 씹는 기능을 못한다면 죽이나 흐물흐물한 음식밖에는 먹을 수가 없다.

그런데 사람은 딱딱한 음식도 먹어야 하고 이빨로 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어야 영양섭취가 제대로 되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치아야말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커다란 선물 중 하나인 것이다.

지금 우리 어머니는 틀니를 끼고서 과일도 땅콩도 고기도 김치도 통닭도 어떤 것도 꼭꼭 씹어서 다 드실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90을 훌쩍 넘겨 내년이면 92세가 되는 장수의 삶을 살면서도 신체가 건강하신 것이다.

의학기술이 발달되어 의치(틀니)를 하면서부터 확실히 우리나라 노인들의 생명연한은 많이 길어졌다. 요즘엔 임플란트가 있어서 더욱 제 이빨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제 며느리인 내게 어머니의 틀니를 새로 맞추어 드려야 하는 새임무가 부과 되었다. 그러나 틀니는 파마 값처럼 4~5만원 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 가정 형편에 틀니는 상당한 고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밝고 청명한 토요일 아침, 나는 예쁘게 파마한다고 기분 좋은 우리 어머니와는 정반대 심정이 된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 스스로는 고민도 하지 않는 그 어머니의 틀니를 해 드려야 한다는 부담으로 고민 많은 며느리가 된다. 왜냐하면 어머니를 사랑하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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