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매순간이 선물인 결혼

남편은 나에게 이번 결혼기념 선물로 아이폰을 선물하고 싶어했다.내가 쓰고 있는 아이폰이 벌써 3년째 쓰고 있는데 이젠 속도도 많이 느려지고 상태가 불편해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폰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결국 아이폰을 할부로 사줄까 어쩔까 하면서 고민고민하던 남편은 그동안 용돈을 모은거라면서 노란 오만원권 12장을 봉투에 넣어서 내게 건넨다. 아이폰값이 워낙 비싸서 쉽게 사지는 못하겠지만 남편의 성의가 고마웠다.

그런데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다. 내가 올해 결혼 40주년을 맞았다는 사실이… 나의 친정부모님이 결혼 40주년을 맞으셨을땐 참 오래도 같이 사셨네 했었는데 막상 내가 결혼 40주년을 맞이하고 보니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우리는 남편나이 28살 내나이 26살에 결혼하여 삼남매를 낳아서 키웠다. 그리고 서로가 미혼일 때 가졌던 선교비전을 결혼생활을 하면서 성취하여 선교사가 된 것이 의미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것은 선교사로 가기 위하여 안일한 삶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내가 결혼 하고도 선교사로 가는 꿈을 밤이나 낮이나 계속 꾸었더니 하나님은 드디어 우리 가족을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신 후에 선교지로 보내셨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선교사로 가기 위한 긴 훈련에 비해 막상 선교지에서 보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물론 공권력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추방된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8년 이라는 우리의 젊은 세월을 선교훈련을 받게 하시고 선교사로 파송 받아 가게 하시더니 겨우 11년을 선교지에서 보내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시다니…

하지만 나는 다시 선교지로 가려고 늘 준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그냥 고국에 머물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본다. 이젠 자녀들도 다 독립하여 살고 있으니 남편과 나와 둘이서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이란 내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다. 치매걸린 노령의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우리를 꼭 붙잡아 두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선교사로 살겠다는 남편의 의지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나역시도 그렇다. 대대로 선교하는 가문을 이루겠다는 우리 부부의 젊었을 때의 꿈은 자녀들이 이루어야 할 것이기에 이젠 자녀들에게 맡겨 두기로 하였다. 셋중에 하나라도 설마 선교사로 가겠지 하는 꿈을 나는 지금도 가지고 있다.

이벤트를 좋아하는 나는 이번 결혼 40주년은 정말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특히 나는 성지순례를 다녀왔지만 성지순례를 한번도 다녀오지 못한 남편과 함께 성지순례를 이번에 다시 가는 꿈을 꾸었었다. 또 하나는 나는 영국과 프랑스를 다녀 왔지만 유럽에 아직 가보지 못한 남편과 유럽일주를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그도 저도 못하면 세번째 플랜은 남편과 내가 익숙한 중국에 들어가서 한 두 주간 이라도 있으면서 다시 선교지로의 귀환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조용히 갖으면서 좀 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그럼 마지막 플랜으로 우리가 40년전 신혼여행을 갔던 곳을 다시 가보는 것이었다.

신혼여행은 대구를 경유하여 경주에 갔었는데 대구에서 일박했던 대구수성호텔이 최근 멋지게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대구 사는 딸이 “엄마, 결혼 40주년에 그 호텔에 다시 묵으면서 기념하세요.” 했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집 큰애기격인 어머니를 어디 맡길데가 없는것이다.

결국 결혼기념일인 당일날 저녁엔 둘이서 동네 짜장면 집에 가서 잡채밥과 짜장면을 요리 하나와 함께 시켜서 먹으면서 서로 축하했다. 후식으론 대구 내려 갔을때 딸이 싸준 초콜렛을 하나씩 나누어 먹으면서 조촐한 결혼40주년 기념을 축하 했다. 남편이 나에게 빨간 하트 모양의 초콜렛을 한 개 내민다 “내 마음이야.” 라고 하면서…

그런데 이처럼 소박한 결혼기념일을 보내는데도 나는 마음속에 감사가 넘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결혼의 주체인 남편과 아내인 나 두사람이 지금껏 살아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이 뭐 별거 있던가 매순간 감사하면서 살면되지. 뒤돌아 보면 우리의 결혼생활에도 정말 여러 사건들이 일어났었다. 특히 자녀들이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할때가 몇번 있었고 그럴때마다 큰은혜를 입어 아이들이 무사했음이 기억났다.

결혼생활의 꽃이요 열매인 자녀들이 안전하게 자라서 반듯한 성인이 되어 준것,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남편과 아내 두사람이 큰병치레 하지 않고 지금껏 건강하게 살고 있는것 이것 역시 큰 은혜이다.

언젠가 선교지에서 잠시 나온 남편이 건강검진을 받다가 대장에 용종을 발견하고 간단하게 수술하여 무사한적이 있었다. 아마 선교지에서 모르고 있었다면 십중팔구 용종이 대장암으로 발전하여 생명의 위기를 겪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선교지에 들어 갔지만 장롱면허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다가 오십대초반에 한국에 나와서야 누가 무료로 준 낡은 중고차로 운전을 시작했다. 운행중 차가 고장나서 교통사고의 위험이 아주 여러차례 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피할길을 내셔서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감사하기 시작하니 결혼 40주년 기념일날 짜장면과 잡채밥을 남편과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면서도 행복의 엔돌핀이 솔솔 피어올랐다. 이처럼 감사의 마음을 갖게되면 모든것을 긍정적으로 보게되고 낙관적으로 보게된다.

그러나 사실 며칠전만해도 내 마음엔 먹구름이 잔뜩 끼여 있었다. 집안의 낡아빠진 가구들을 하나하나 바라 보면서 “이게뭐야 결혼 40주년 을 맞는 이 나이에 중고가구점에서25만원 주고 산 헌 장롱에 역시 중고로 구입해 10년 가까이 쓰는 헌 침대에 그리고 누가 쓰레기 하치장에 버린 거실장과 식탁을 가져다 쓰고 있는 내 살림살이를 바라보며 내 마음은 자꾸 울적해졌다.

며칠전에 남편이 검정테이프로 검정색 거실장의 붙인 곳이 떨어져 나가서 허옇게 드러난 곳을 붙이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왜 그리 처량맞은지…장롱설합도 그렇게 붙인곳이 떨어져 너덜대는 것을 본드로 붙이는 모습을 바라 보고 있자니 내 살림살이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멀쩡한 식탁은 교회 사무실 책상으로 가져가고 누가 버린 식탁과 식탁의자를 가져 왔더니 처음엔 괜찮았는데 2년쯤 쓰자 레자로 입힌 의자가 다 헤어져 너덜대는데 천갈이라도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천갈이 비용도 결코 만만치 않기에…

며칠전 이런 우울한 일들 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어서 나는 대구로 내려갔다. 아들도 보고 사위와 딸도 보고 사랑스러운 로아와 로이도 보고 두밤을 자고 왔다. 손주들과 지내는 시간이 제일 행복했다. 큰애인 로아의 손을잡고 롯데리아에 아이스크림을 사주러 갔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작은아이 로이를 바라보고 있는것도 큰 기쁨이다. 로이는 첫돌 막 지났는데 말귀를 얼마나 잘 알아듣는지 모른다. 이야기 중에 “밖에 나가자”는 단어만 나오면 로이는 얼른 아장아장 걸어서 중문을 열고 신발을 들고 서 있다. 고~고~(go~go~)하면서 말이다.

이처럼 시끌벅적 하게 귀여운 아이들과 지내다가 김포로 돌아왔다.내 나이에 아직 손자손녀를 못 본 사람들도 많을텐데 난 손자도 있고 손녀도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렇게 감사를 회복하고 다시 김포로 돌아와서 결혼40주년을 맞은 것이다. 그래 감사가 감사를 낳는다고 했던가 감사의 조건만을 생각하기로 하자. 그렇게 마음을 바꾸자 나의 결혼생활의 매순간이 하나님의 선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결혼 40주년을 맞아 남편에게 장미한송이 받지 못했지만 장미보다 만배나 비싼 아이폰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사주고 싶어하는 남편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으니 말이다. 돈과 상관없는 선교사의 삶을 살아온 남편이기에 나에게 해주고 싶은것 다 못해주는 남편을 내가 이해해야지.

그러나 남편 K선교사의 아내인 나를 향한 사랑의 마음은 내 삶속에 면면히 스며있다. 며칠전엔 누워서 편하게 핸드폰을 보고 조작할 수 있는 철로된 스마트폰 거치대를 구입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이전엔 핸드폰을 꼿으면 화면이 확대되어 보이는 스마트폰 확대경을 사 준다. 1~2만원짜리 저렴한 물건들이긴 하지만…

작년 결혼 기념일엔 남편은 자신이 처음 받은 노령연금 석달치를 모아서 새컴퓨터를 나에게 사 주기도 했었다. 올해 결혼 40주년을 맞이하면서 내가 깨닫는 것은 남자인 남편의 관심사와 여자인 나의 관심사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화성에서 온 사람이고 나는 금성에서 온사람이니 말이다. 남녀는 생태적으로 우주적인 다름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니 수용하고 이해하는수 밖엔 없다. 나도 이제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아내인 내가 받고 싶어하는 것과는 사뭇다르다는 것을… 예를 들면 나는 빨간장미꽃…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있는 멋진 식사 예쁜 선물포장등등을 원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40년 동안 못해주는 남편이다.

하지만 그는 무엇이 아내에게 좋을까 필요할까를 늘 생각한다. 때문에 내가 원하는 로맨틱한 선물 보다는 더실용적이고 값나가는 것들을 사 주고 싶어한다. 비록 나에게 해주고 싶은것을 다 해주지는 못하지만 남편의 마음만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그런데 그거 발견 하는데 참 오래도 걸렸다. 그래서 올해는 결혼40주년 기념으로 성지순례, 유럽여행, 중국방문, 신혼여행갔던 호텔 다시 투숙하기, 멋진 레스토랑에서 장미꽃과 선물 받기 등등 아주 근사하게 보내고 싶었던 나의 계획은 다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짜장면과 잡채밥을 먹으며 감사를 배우는 더 가치있는 결혼기념일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해보고 싶고 받고 싶었던 이 모든것보다 훨씬 소중한 선물인 남편이 내 앞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있지 않고)후루룩 짜장면을 들이키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는게 가장 큰 결혼기념일 선물임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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