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시니어타임즈US] 본지는 2020년 7월부터 최익주 선생의 <그렇게 선진국이 가능해?(가제)> – 국민의 반성과 국가적 전환점(부제)을 저자와의 합의 하에 글이 출판되기 이전에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는 회차별로 매주 한편씩 실리게 되며, 글의 배포는 무방하나 무단전재는 금한다. 글의 소유는 전적으로 저자 최익주 선생에게 있음을 알리며, 본지의 편집방향과는 무방하다.
<그렇게 선진국이 가능해?>는 저자가 20년여 전부터 대한민국이 인간적으로는 물론이고 총체적으로 한계에 봉착했고, 또다시 혼란과 위기와 망국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함과 동시에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원인들을 연구했다. 이에 저자는 대한민국이 부디 새롭게 출발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산업화 이후의 시기부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어난 일련의 최근 사건들을 통해 그 문제점 되짚으며, 앞으로 대한민국이 바르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편집자주>
18. “미국이 북한을 먹어버릴 것”이라고 가르친 전교조
3년여 전에 고3인 여학생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여학생이 전해주는 전교조 선생의 이야기는 참으로 황당했다.
필자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창시절에 현실 부정과 비판을 잘했던 선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실 부정과 비판을 잘하는 선생들
우리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현실(시국상황, 대통령들, 고위직들, 재벌들, 정치인들)에 부정적(비판적, 냉소적, 풍자적)인 선생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에게는 묵묵하고 고지식한 선생들보다 현실에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선생들이 정의롭게 보였고, 머릿속에 든 것이 많은 것처럼 느껴졌고, 인간적으로도 멋있게 보였으며,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부모(어른)가 되어서 생각이 반대로 바뀌었다.
현실에 부정적인 선생들은 단순히 보고 듣고 생각하는 생각과 말이 전부일 뿐 선진국에서 최초에 학문과 문명과 산업과 자유민주주의 등이 만들질 수 있었던 밑바탕과 배경에는 까막눈이었음을 알았다. 실제로 선생들은 우리 학생들에게
첫째, 세상과 인생에 대한 냉철한 관점과 성숙한 자세와 진지한 생활 태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지 않았고,
둘째, 인간과 사회와 역사와 현실에서의 문제들을 진지하게 끌어안아야 함을 강조해주지도 않았으며,
셋째, 더 나은 세상과 바람직한 사회와 합리적인 문화를 위해서 고민하고 연구하도록 가르치지 않았고,
넷째, 비극적인 사건들과 현실적인 잘못들을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인간애와 인류애로 포용해야 함도 가르치지 않았으며,
다섯째, 유능한 인재들을 육성하고, 훌륭한 인물들을 밀어주고 존경해야 함도 알려주지 않았고,
여섯째, 비인간적인 관행들에 편승한 사람들이 승승장구했던 우리의 후진문화와 열악한 민족성에 무지했고, 자기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에 우리는 그런 선생들에 의해서 우리의 내면과 정서에 대해서 현실과 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과 편견과 거부감과 반항심이 심어졌고, 자식을 낳고 키우는 부모가 되어서야 이러한 사실들을 깨달았다.
전교조 교사들의 무의식 역시 열등감과 출세욕에 의한 욕구불만
오늘날은 교사의 대우가 좋고 임용시험에 합격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몇십 년 전만 해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교사였고, 양성소라는 곳에서 몇 달만 교육을 받아서 교사가 되기도 했으며, 웬만한 사람들은 놀면서도 교사는 하지 않았다.
이처럼 필자가 어른이 되어서야 현실 부정적인 선생들의 무의식에는 열등감과 피해의식과 출세욕의 반작용에 의한 욕구불만이 강했음을 알았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이 선생밖에(?) 하지 못한 것이 마치 잘못된 현실(특권층, 기득권층, 민주주의, 자본주의 등) 때문인 것처럼 합리화했고, 학생들에게 불만을 표출하면서 자신들을 과시·과장함으로써 스스로를 위안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변명과 가식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똑똑한 척, 정의롭고 대단한 척, 초야에 묻혀 사는 인재처럼, 장래 가능성이 농후한 것처럼 처신하면 그만이었다.
어쨌든 필자는 어른이 되어서야 그런 선생들이
첫째, 자기 분수와 주제를 몰랐고,
둘째,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감사함도 송구함도 없었으며,
셋째,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대신하면서 불신을 조장했고,
넷째, 평생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와 문화와 이웃들에 대해서 긍정적이지도 우호적이지도 협력적이지도 못했으며,
다섯째, 심리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열등하고 졸렬한 비겁자들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학생과의 대화 일부
학생 : 미국이 북한을 먹어버릴 거래요.
나 : 누가 그러든?
학생 : 우리 선생님이 그랬어요.
나: 보나 마나 전교조 선생이겠구나. 너는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니?
학생 : 북한은 지하자원이 많으니까 미국이 먹어버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잘 모르겠어요.
나 : 왜 잘 모르겠다는 것이니?
학생 : 미국은 어려운 나라들을 많이 도와주고, 위험한 나라들을 구해주잖아요? 우리나라에도 계속 머물면서 저렇게 버텨주고 있는 것을 보면 좋은 나라는 분명한 것 같거든요.
나 :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너의 친구들의 반응이나, 생각은 어땠니?
학생 : 항상 학생들의 반응은 셋으로 나뉘어 있어요. 대부분은 이렇든 저렇든 생각이 없고요. 일부는 극단적으로 미국을 싫어하고요. 또 일부는 선생님 말에 강하게 거부감을 느껴요.
나 : 그래? 하나만 더 물어볼까? 너는 지금 북한에 가서 살라고 하면 가서 살겠니?
학생 : 아뇨. 어떻게 북한에서 살겠어요.
나 : 그럼 너희들 중에는 혹시 북한에 가서 살고 싶다거나, 북한의 독재세습 정권과 체제에 긍정적인 사람들은 있니?
학생 : 누가 북한에서 살려고 하겠어요. (호호호) 왜 그런 걸 물어보세요? 아저씨 혹시 이상한 분 아니세요? (호호호) 아뇨 장난 말이에요.
나 : 그럼 ‘미국이 북한을 먹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던 전교조 선생은 북한에서 살고 싶을까?
학생 : 그걸 말씀이라고 하세요? 누가 북한에서 살려고 하겠어요?
나 : 전반적인 상황을 알고 싶어서다. 너의 반응과 대답을 들어보니까 안심이 되는구나. 왜냐면 전교조 선생들은 너희에게 북한체제를 은근히 두둔해왔거나, 남한체제를 직접간접으로 부정하고 불신했을 것 같은데 너의 반응을 보니 특별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아마도 전교조 선생은 너희들을 삐딱하게 유도하려고 했겠지만 실패했거나, 쉽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런 선생의 이야기에 먹혀드는 순진한 학생들도 있을 것 아니겠니?
전교조 교사들
① 전교조 교사들은 학창시절쯤에 자기 자신(환경, 인연, 능력, 인생, 미래)과 사회현실 사이에 커다란 괴리감을 갖게 되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 자신의 실체(수준)와 실상(능력, 자신감)에 대해서 열등감을 갖게 된 것이다.
② 열등감을 승화·극복해내지 못한 반작용(죗값)으로 사회에 대한 불신과 원망과 증오로 삐뚤어졌고, 이를 자신의 우월감으로 보상 받으면서 자신을 기어코 합리화하고 위안을 받았으며, 일부는 동병상련의 동류의식(전교조 가입)과 출세욕으로 삐뚤어졌다.
③ 동류의식과 출세욕에 붙들리면서 의식도 무의식도 생활도 관계도 인생도 동시에 정지되고 정체 되었다. 이는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이 남은 인생을 합리화(위안, 기만)하면서 적극적인 미래와 상식과 양심도 포기해버린 셈이다.
④ 현실에서 미래비전과 질적 가치가 무의미해지면서 더욱더 ‘평등’, ‘공정’, ‘정의’, ‘인권’, ‘복지’, ‘사람 사는 세상’ 등 상투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 나라도 현실도 묶어놓고 판가름하려고 하게 되었다. 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합리화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기 삶과 처지에 대한 반발심과 앙갚음으로 대한민국(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를 불신하고, 악감정을 표출하고, 부정하는 것으로 우월감을 느끼고 사는 우물 안 개구리들로 전락한 것이다.
⑤ 오늘날 전교조와 노조의 선배들은 70-80년대 운동권이라고 할 수 있다.
운동권들은 엉망인 현실(독재정권)에서 자신들이 장차 대한민국을 위해서 실질적으로 노력해야 할 일들은 안중에 없었다. 그리고는 거의 100% 정치적인 성향으로 삐뚤어졌고, 심지어 어린 학생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을 정도다. 그뿐 아니라 우리 내부(정부)를 “파쇼정권”으로 매도했고, “미국의 식민지”, “미국의 경제식민지”, “매판자본”으로 비난하고 공격했다. 이러한 일들은 학생운동권의 우두머리가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들이고, 각 대학에서 헤게모니를 쥔 학생들 역시 북한정권을 추종·의존·이용하려고 했다.
⑥ 오늘날 전교조는 재야세력과 학생운동권의 후배들인 셈이다.
그래서 선배들에게 영향받은 전교조 역시 존엄성의 확보·신장을 통해서 국제사회와 인류미래로 활기차게 뻗어가지 못했다. 반대로 전교조의 밑바탕과 의식수준이 겨우 지배와 피지배(계급투쟁), 평등과 불평등, 공정과 불공정, 정의와 불의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조상 대대로 생계와 출세와 권력을 위해 시기질투와 중상모략과 아부아첨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잔악한 민족성과 판박이다(이러한 프레임 역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정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한 증거다).
⑦ 이제라도 전교조 교사들은 변화해야 하고, 모든 것을 각오하고 적극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우리 국민과 사회를 따뜻하게 껴안고, 학생들의 인생과 미래를 적극적으로 책임지려고 각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교조가 진정한 휴머니즘(포괄적인 인류애)을 배우고 갖춰야 하고, 뼈저린 자기반성이 필수이며, 학생들의 의식향상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⑧ 필자가 전교조에게 호소하고 확신하고 장담하고 충고하고 경고하건대 지금 여러분의 수준으로는 절대 현상도 유지할 수 없다. 이는 물론 노조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전교조와 노조와 과거 학생운동권처럼 ‘생각해왔거나’, ‘미국이 북한을 먹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자신을 살펴보기 바란다. 자신이 성장했던 과정과 영향받았던 인연과 보고 듣고 자랐던 환경을 두루 살펴보면서 굴절되고 삐뚤어진 부분을 찾아내거나, 심각하게 망가진 원인과 계기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뼈저리게 반성해서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필자는 학생에게
– 대한민국의 국민이면 당연히(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과 국제정세와 인류사의 흐름과 미국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과 편견을 상식적인 관점으로 말해줬다.
– 특히 젊은 시절에 세상과 인간과 역사와 문화와 현실과 인생에 대해서 일찌감치 이것저것에 의미를 두거나, 휘말리지 말아야 하고, 오히려 냉철한 안목을 확보해야 하고, 더욱더 진지해져야 하고,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꺠우친 것들을 근본적으로 다시 살펴보면서 오히려 전혀 다른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해서 항상 포괄적이고 거시적이고 포용적이고 긍정적이고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체계를 정립해가야 함을 말해줬다.
필자는 지금도 전교조와 노조와 종북·좌파·주사파와 똑같은 시대와 사회에 몸담고 산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언제든지 그들과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진심으로 대화하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아무리 맑았던 물도 흐름을 멈추고 오래 고여 있으면 혼탁해지고 오염되고 부패하게 된다. 그러면 비와 바람에 의해 씻겨 내려가서 다시 맑은 물로 바뀐다. 인간도 적극적인 변화를 외면한 채 한 상태에 오래 머물면 식상해지고, 고루해지고, 오염되고, 부패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은 물과 달라서 자신을 스스로 변화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아서 변화와 발전이 어렵다. 그래서 인간이 뭔가에 붙들려서 정체되기 전에 적극적으로 발전해야 변화가 가능하고, 적극적으로 변화해야 정체되지 않을 수 있고, 정체되지 않고 부단히 나아가면 저절로 변화·발전하는 이치다.
이는 세상이 부패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이치에 의해서 한 곳(전교조)에 정체된 인간이 식상해지고 고루해지면서 부패하기 때문이다.』
저자 최익주 선생은 전남 목포 출생으로 목포북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광역시로 이사해서 북성중학교, 동신고등학교, 조선대학교 경영학과(78학번)를 졸업했다.
군생활을 오산비행장 방공포부대에서 병장 만기 제대, 3년간의 개인 사업을 했으며, 관세사무소에서 16년 동안 사무장으로 지내다가 광주세관과 관세청과 부정비리 문제로 싸움(형사소송)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실체와 실상을 깨닫고 인생을 180도 선회. 이후 밑바닥부터 다시 터득하고 통달해야 한다는 각오로 시민단체(2-3년), 택시기사(2년 6월), 생산공장과 건물경비(10년여)를 전전하면서 노동자 생활을 해왔다.
저서로는 <이제는 바꿔봅시다(1997.7.30.)> <대화로 여는 새아침(1999.9.20.)> <사랑하는 선·순·아에게 제1-4권(2018.7.13.)>이 있다.
다음은 “19. 박정희와 김대중의 당선 순서를 바꿔보면”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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