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계명,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3)
제1계명 : 오직 유일하신 참 하나님
출애굽기 20 : 1-17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들어가는 말
십계명이 “하나님 유일 신앙”으로 시작된 것은 애굽의 다신교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약 사백 년간 종살이했던 애굽은 다신교 사상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 역시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했고,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 역시 그들이 알고 있던 일반 신들 중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시기 이전에 자신이 누구인가를 계시해 주셨고(1-2절), 본문 말씀에서도 “다른 신들을 두지 말 것”을 명하셨던 것입니다.
한편 “나 외에는” 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나를 넘어서”(창세기 48:22, 시 16:2), 또는 “나에게 덧붙여서”(창세기 31:50, 신명기 19:9)라는 뜻으로서, 영어 역본에서는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목전에 있음과 하나님의 눈이 끊임없이 우리를 향하여 있음을 잊지 말고 행동하라”는 의미인데 하나님의 명령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결론적으로 본문 말씀은 다신 숭배와 우상 숭배를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철저하게 금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신명기 8:11, 17, 19),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사랑 그리고 경배에 대한 적극적인 명령인 것입니다(신명기 6:5, 13, 17, 10:12, 20).
십계명은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하나님의 유일 신앙’에 대한 명령으로 시작됩니다. 모든 계명이 각자의 특성과 목적이 있지만 모든 계명의 초두가 “하나님 유일 신앙”에 대한 명령으로 시작된 것은 이 신앙이 모든 기독교 신앙과 사상의 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선포하셔야 할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서, 즉 특별한 환경과 조건에서 주셨습니다. 이 십계명이 당시의 특수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말씀이지만 오늘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금하신 것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역시 금지된 영역으로 남아 있으며, 또한 유대인들을 향하여 준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오늘의 우리도 준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줄거리
-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십계명의 제1계명이 십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계명의 말씀 속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배타적인 신앙에 대한 경고
이 말씀 속에는 우리는 먼저 배타적인 신앙을 갖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배타적 신앙이라 함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통하여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배타적인 신앙은 출애굽기에서만 찾아보아도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40여 년 전 모세가 애굽의 궁중에 있을 때 자기 백성을 돌보려는 마음에서 이스라엘을 학대하던 애굽인에게 행한 일의 누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11-15). 둘째, 출애굽 이후 홍해를 앞에 두고 추격하는 애굽의 군대를 보는 그들이 태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출애굽기 14:11-12).
2)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이 말씀 속에는 배타적인 신앙에 대한 경고의 말씀 외에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의 구원을 베푸시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서 다른 신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존재하지도 또한 존재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한 구세주는 여호와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나 우리들 모두 오직 여호와만을 섬겨야 합니다. 그분은 모든 실존하고 있는 유형과 무형의 세계 속에서 오직 홀로 가장 높은 차원의 세계를 형성하시어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다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떠한 신도 존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떠한 유형과 무형의 존재가 신이라는 이름으로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말씀은 곧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이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빠지기 쉬운 함정이며 올무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들이 우리가 자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개되질 때 오히려 신앙으로 미화되어 유혹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신앙의 중요성을 망각하거나 혹은 복을 기대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를 우리는 간혹 목격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권능을 무시하고 스스로 만든 우상
하나님의 주권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를 막론하고 그 누구와도 결코 공유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먼저 찾기보다는 자신들이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첫째, 대중의 호감을 의식한 여론에 굴복되어 자신의 확고한 신앙을 피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대로 교육하고 양육하여 그들의 욕구대로 살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 할 곳에서 과학적 물질의 힘이 우선한다면 이것 또한 다른 신이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권능을 대신하는 이성의 신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유일하게 이성이라는 재능을 부여받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성의 힘이 하나님의 권능을 대신하여 나타나는 예를 수없이 볼 수 있습니다. 이성이란 그 사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지적 능력에 도취되어 하나님의 권능을 믿기보다는 이성이라는 또 다른 신을 섬깁니다. 우리는 말로는 성도임을 자부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하고 싶은 일만 추구한다면 결코 성도의 반열에 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곧 하나님의 제1계명을 어긴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당신의 뜻을 맞추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정녕 하나님께서 주신 제1의 계명을 지켜 살아가는 성도로서의 참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첫째 계명의 이해
만일 하나님이, 친히 주장하시듯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 지금도 있으며 전에도 있었던 존재라면 그는 예배의 최고 대상이심에 틀림없습니다. 만일 그가 여호와 곧 사람의 하나님이심이 분명하다면 하나님만 섬기라는 이 계명은 합당한 것이며 따라서 그 외에 다른 어떤 신을 둔다는 것은 지극히 불합리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며 따라서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여호와 이외에 그러한 묘사에 적합한 다른 존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신을 들어 보십시오. 그것은 분명 제한된 존재입니다. 따라서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은 참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무례한 행동이며 속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라고 먼저 자신과 자신의 영광을 선언하시고 그 다음에 이에 대한 당연한 결과로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다”라는 중요한 첫번째 명령을 하신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으며 절대적인 합리성에 근거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신을 필요로 합니다. 마음이든지 생활이든지 혹은 자신이 가장 중히 여기는 곳이든지 그 어딘가에 자기가 예배하는 신이 자리잡고 있는 성소를 갖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공기가 없으면 새가 날아다닐 수 없듯이 사람은 예배하는 대상을 두지 않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인간 생명의 기질 자체와 인간 존재의 신비가 예배의 중심 인물을 필연적으로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생활 전체가 “예배이다”라고 말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전제가 성립할 때 존재의 모든 행위와 생명의 모든 활동력, 어떤 대상에 대한 능력의 헌신적인 사용, 이런 것들이 다 예배 행위입니다. 문제는 사람의 생명과 능력이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바쳐지느냐 아니면 거짓 신에게 바쳐지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을 마음에서 몰아내면 스스로 신이 되어 자신을 예배하게 되거나 또다른 거짓 신을 섬기게 됩니다. 오늘날은 마음의 힘과 뜻을 다하여 자신을 예배하고 오직 자신만을 섬긴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신이나 왕이나 입법자 즉 자신의 계획표를 조정하며 자기에게 명령을 내리고 복종을 요구하는 자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참 하나님이 아니라면 거짓 신이나 죄악된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첫 계명에서 “너는 나 이외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리라”라고 명하십니다.
우상 숭배의 기원
인간이 참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잘못된 예배 대상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이러한 명백한 사실은 우상 숭배의 기원을 보여 줍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기어 “나는 주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라고 말씀하시는 자를 보지 못하게 되는 순간 곧바로 그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어떤 것을 대치시킵니다. 성경에 언급된 이방인의 신들 즉 몰록이나 바알, 그리고 맘몬과 같은 신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몰록을 예배함으로써 사람들은 몹시 잔인해졌고, 바알을 예배하려면 사람들은 짐승 같은 아주 추잡한 성적 행위들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맘몬의 추종자들은 재물에 숨어 있는 막강한 힘을 맹렬하게 추구하며 이에 사로잡히도록 만들었습니다. 몰록이나 바알, 맘몬은 거짓 신들입니다. 그런데 이 거짓 신들은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예배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비록 이 신들이 오늘날과 같이 문명이 발달하고 계몽된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을지라도 세상은 그 신들을 예배하는 우상 숭배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실례를 보기 위매 구태여 우상 숭배가 성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프리카나 중국 혹은 인도에 갈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 예는 이 나라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대도시에는 자신들의 잔인한 욕망이라는 몰록에게 인간이라는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비열한 욕망이 만족을 얻는 한, 싸움에서 얼마가 많은 사람들이 죽든지 상관 하지 않습니다. 또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바알 곧 짐승 같은 행위를 숭배합니다. 이 말이 참으로 틀림없다는 것은 매일 밤 런던 거리에 팔 만에 달하는 타락한 여자들이 있다는 사실로써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누가 그들을 먹여 살리겠습니까? 바알 숭배자들입니다. 끔찍하고 가증한 이 정욕의 소용돌이에서 젊은 남자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두려운 모든 행위가 실상은 우상 숭배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사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참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타락한 비너스의 전당에서 예배드리는 남자들이 바치는 충성의 맹세입니다.
맘몬 숭배도 오늘날까지 살아 남은, 또 다른 악한 형태의 신앙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재물에 대한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이야말로 첫째 계명이 새롭게 강조되어야 할 때입니다. 이 시대는 재물의 신에 대한 열렬한 숭배로 말미암아 저주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우상 숭배에 대한 일반적인 문제들을 다루어 왔습니다. 그래서 더러는 자기들이 앞에서 언급한 신들 중 하나를 숭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언급된 다른 두 가지 형태의 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약에 나오고 다른 하나는 신약에 나오는데 둘 다 주의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럼 신약의 언급은 뒤로 미루고 먼저 구약의 언급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가 낚시로 모두 취하며 그물로 잡으며 초망으로 모으고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물에 제사하며 초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식물이 풍성하게 됨이니이다”(하박국 1:15, 16). 하나님이 그와 그의 가족을 먹여 살리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단지 최후의 수단으로서만 하나님을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 세상을 하직할 때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천국에 슬며시 들어갈 수 있기를 늘 바랍니다. 그러나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향하여 큰 소리로 이렇게 호통치십니다. “너희는 나를 첫 번째로 삼고 사업을 두 번째로 삼아라.” 사람들은 그물에 제사를 해서는 안되며 초망에 분향을 해서도 안된다.
첫째 계명에 대한 신약의 교훈
우상 숭배에 대한 신약의 묘사는 빌립보서 3:18, 19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라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이것은 사람들이 아주 흔히 행하는 일이나, 또한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즉 우리 주위에는 배를 자신들의 동물적인 욕망을 채우는 한 신으로 삼는 자들이 허다하게 많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육신의 욕망을 채울까? 이런 것들이 모두 그들의 신입니다. 이런 류의 사람은 오히려 초망이나 그물에 분향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것을 위해 살며 그것을 얻으려고 애쓰고 또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다 갖다 바치는 대상이 고작 먹고 마시는 일과 그 외에 다른 형태로 단지 감정적인 만족감을 주는 일일 때 그 사람은 훨씬 초라하게 더 타락한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만연된 우상 숭배의 한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현실적인 사실 앞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구히 전하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즉 “나는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만일 사람들이 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헌신과 힘을 요구하는 자리에 몰록이나 바알, 맘몬, 그물, 초망, 식욕 혹은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을 둔다면 그들은 비록 일생 동안 매 주일 교회에 나가 설교를 들으며 사도신경을 외운다고 할지라도 우상 숭배자들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피조물로 하여금 자기 앞에 어떤 다른 신도 두지 못하게 하겠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바로 모든 피조물의 존재 목적이 되시고 또한 각 사람의 중심이 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는 인간의 본성 자체로 볼 때도 합리적인 것입니다.
신약은 이 모든 계명을 환히 밝혀 줍니다. 신약은 이 계명들을 전혀 폐지하지 않고 오히려 강조하고 반복하며 새로운 뜻을 부여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율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그 율법을 지킬 수 있을 때 뿐입니다. 그것은 마치 나라의 법률을 지키며 사는 도덕적인 사람이 체포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지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파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율법을 성취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율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으셨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예배하라는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시고 사람들이 다른 신을 섬겨도 좋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점을 밝히는 신약의 빛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를 사랑하라”(마태복음 22:37)는 주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가복음 4:10).
우상 숭배에 대한 변명이 딱 한 가지 있는데 즉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정당화할 수 없는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온건히 계시하셨고 따라서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 계시를 알 수 있는 그러한 곳에서 살고 있다면 우상 숭배에 대한 마지막 그 변명도 결코 정당하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옛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이 계명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옛날엔 우상 숭배에 대해 구실을 댈 수 있었던 점이 참으로 많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께서 오신 사실 뿐만 아니라 또한 지난 백년 동안 과학이 밝혀낸 위대한 모든 사실로 말미암아서도 우상 숭배의 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 책임이 더 무거워졌습니다. 미신적인 사람들이 폭풍마다 귀신이 있다고 공상하고 번개와 천둥은 설명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는 신비라고 생각하던 시대에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불이나 혹은 귀신을 숭배하던 사람들은 핑계거리가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요즈음, 즉 사람들이 자연의 여러 가지 현상과 소리의 진상을 캐냈고 그것들은 결국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신비한 것도 아니며 다만 정밀한 법칙 체계의 진행 과정이며 표출일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이 때에는 우상 숭배에 대한 변명은 사라졌습니다. 사람이 입법자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법칙의 영역 안에서 자연 현상이 설명되고, 지난 오십년 동안에 과학이 밝혀낸 모든 사실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를 찾으며 그를 보기를 원하는 자들이 마음속으로 더욱 실감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신비한 것들과 마술처럼 느껴지던 것들을 과학이 일일이 다 설명해냄으로 인해, 어떤 것이든 그것을 하나님처럼 숭배하는 죄는 더욱 가증스러운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우상 숭배의 죄는 더욱 더 어두우며 그 형벌은 큽니다.
사람들로 5분만 시간을 내어 다른 모든 사실은 다 잊어버리고 자기가 홀로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중대한 사실을 생각해 보게 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그 시간만큼도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를 끔찍이 싫어합니다. 만일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하려고 한다면 그들에게 첫째 계명을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라고 하십시오. “나의 하나님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만일 하나님을 뒷전으로 몰아내는 어떤 대답을 하게 된다면 천국을 위해서, 그리고 영원한 삶을 위해서 그들로 “모든 우상을 부숴 버리고 모든 적을 쫓아내며” 앞으로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며 전에도 계신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모시라고 하십시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이제 좀 더 깊은 말씀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찾는 근본적인 본능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하나님을 찾는 근본적 본능이 있습니다. 전도서 3:11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치의 종교심이 있습니다. 어떤 민족에게도 하나님을 찾는 노력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은 마치 담장이 넝쿨이 의지할 것을 찾는 것처럼, 배고픈 인생이 음식을 찾는 것처럼, 굶주린 영혼에게도 만족을 요구하는 깊은 욕구가 모든 인간에게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무서운 핍박을 당해도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뽑아낼 수 없었던 것이 인류 역사의 이야기입니다. 네로 황제가 예수 믿는 사람을 그처럼 박해했지만, 마르무스 아델리우스 황제가 예수 믿는 자의 뿌리를 뽑으려고 그처럼 노력했지만 그들의 노력은 헛수고였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만드시고 그 속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것이요,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 하기 전에는 언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 아담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찾아오셔야만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범죄 한 후 인간들은 여러 형태로 하나님을 만나려는 본능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 H. G 웰즈는 “사람은 하나님을 발견하기까지는 그의 인생에 시작도 끝도 없다,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 인생은 무 인생이다”라고 했습니다.
-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너희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이미 하나님을 믿는 것을 해결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일은 본능이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굶주림과 목마름에 대한 대비책은 우리가 가르쳐 줄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과 숭배는 인간의 본능적인 성품입니다. 어느 성경을 찾아보아도 하나님을 증명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 첫 장을 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떻게 출생했는지 어떤 존재인지 말씀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이 하느니라”고 말합니다.
-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참 신(神)이십니다.
인간은 진실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지 못할 때 스스로 신을 만듭니다. 야만인은 야만스럽게, 문화인은 문화인처럼 신을 만듭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소나, 뱀이나, 별이나, 자연을 신으로 삼았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미신적으로 자연을 숭배하고 섬겼습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돈을, 인기를, 권력을, 쾌락을, 지식을 섬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십니다. 대용품들이 많은 이 시대에 하나님께 사랑과 경외와 귀한 신뢰와 믿음을 드려야 할 이것들을 다른데 허비할까 봐, 우리 인생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을 네 앞에 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1계명을 모든 계명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창세기 1:1절이 성경 전체의 머리인 것처럼 제1계명은 우리에게 주신 계명의 머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이 세상의 도덕은 무력합니다.
- 하나님께서 “너”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네(너) 앞에”라는 단수로 시작합니다. “너희들 앞에”가 아니라 “네 앞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모세, 사울”을 부르실 때 개인적으로 부르셨습니다. 왜냐하면 계명은 각 개인에게 관계되며 하나님은 각 사람이 개인적으로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받아들이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
-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신들은 우상이니 그리고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고린도전서 8:4)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 안에 아무것도 신성(神性)이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부터”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때, 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시도록 모시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에게 엎드려서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열왕기상 18:39)라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마주서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권능 있는 자 중에 여호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시편 89:6)라고 했습니다. 그가 유일한 참 하나님이시며 또 그와 비교할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우리 마음에 믿으며, 우리 죄를 고백하며, 우리 손으로 서명할 때, 이것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하나님이시도록 하게 하는 것입니다.
- 언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은혜니라”(이사야 55:3)라고 우리와 언약을 맺어 주시듯이, 우리도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역대하 15:12)라고 함과 같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은 언제나 주종관계의 언약이며 절대적인 것입니다.
- 3. 그에게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경배는 그에게 굽혀 절하는 것, 또는 그에게 예배하는 것에서 성립됩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찌니라”(시편 29:2)라고 했습니다.
- 그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항시 하나님을 우리 안중에 두는 것입니다(시편 16:8, 25:15)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그가 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계시며, 그리고 재판장으로서 그의 모든 행위를 달아 보신다는 것을 상상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너무나 거룩한 경외심을 가진 고로 우리가 감히 죄를 짓지 못하는 것입니다(시편 4:4). 악인은 범죄하고도 사람은 두려워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자는 두려워하며 범죄하지 않습니다(창세기 39:9)
* “나 외에는” *
- 실제로 다른 신(神)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애굽인들은 황소와 코끼리를, 그리스인들은 주피터를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참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습니다. “그런즉 너는 오늘날 상천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라 명심하고” (신명기 4:39)라고 했습니다.
- 다른 신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 참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는 것인가? 무슨 일에나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은 그것을 신으로 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곧 신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탐심이 곧 우상 숭배라고 했습니다(에베소서 5:5)
* 참 하나님을 섬기는 결과 *
- 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명예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왕 노릇하는 것이다(servire deo est regnare) 즉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왕들로 우리를 섬기게 하는 것보다 더 명예스럽습니다.
-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시편 56:7 잠언 3:17).
- 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유익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면 여기서 큰 이익과 숨겨진 만나와 재적 평화와 그리고 장차 큰 상급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죽을 때 천국을 차지하며 면류관을 쓰게 됩니다(누가복음 12:32, 베드로전서 5:4).
십계명은 케케묵은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는 말씀은 너무 편협한 말씀입니까? 이 첫 번째 계명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난 시간부터 2회로 나누어서 서론적인 말씀으로 10계명이 갖는 특징적인 모습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10계명은 케케묵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앞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말씀, 10계명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이 걸어야 하는 길임을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에 1계명 계속 이어집니다.
이 강해는 목사님들의 설교와 참고 문헌들을 인용하여 편집한 설교입니다.
세션 내 연관 기사 보기
편집국
Latest posts by 편집국 (see all)
- [나은혜 칼럼] 핑크빛 KWMI 한국대면말씀기도회 - 09/06/2024
- [나은혜 칼럼] 한여름의 의자나눔 프로젝트 - 08/21/2024
- [김현태 칼럼] 그가 걸음을 멈춘 까닭은? - 08/21/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