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천국, 천국, 천국을 향하여 (09)-천국의 비밀 7가지 (3) – 겨자씨, 누룩 비유

천국의 비밀 7가지 (3) 겨자씨, 누룩 비유 

 마태복음 13장 31 – 33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들어가는 말

주님께서는 천국 장이라고 일컫는 마태복음 13장에서, 천국의 비밀을 일곱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천국 비밀을 살펴보았습니다. 왜 주님께서 천국의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까? 천국 비밀은 아무에게나 알려주시는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저들이 보아도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3장 15절 말씀에,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첫째는,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영적 귀머거리에 영적 소경이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천국 비밀을 깨닫고 사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들에게도 이 세 가지 모습 가운데 한 가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천국 비밀을 주님께서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 주신 일이 없으십니다. 천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귀를 연다면, 이 7가지 비유는 누구나 깨닫기 쉬운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7가지 비유 가운데 씨 뿌리는 비유, 곡식과 가라지 비유, 두 가지 비유를 살펴보았습니다. 듣고만 끝나버리는 천국 비밀이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천국 비밀을 깨닫고 이제 이 비밀을 내 마음에 간직하고 세상 가운데서 이 비밀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많으나, 천국을 전하는 사람들이 적은 시대입니다. 왜 천국을 전하지 못합니까? 천국에 대한 비밀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있다는 사실에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천국을 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 가지의 천국 비밀을 온전히 깨달아서 천국을 전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줄거리

겨자씨 비유

본문 31절에서 32절 말씀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본문 말씀의 겨자씨 비유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시기 위해 들려주신 여러가지 비유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왜 겨자씨를 이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셨을까요? 겨자는 4~6월경 노란 십자꽃이 피는 십자화과에 속하는 1~2년생 풀입니다. 원래는 서아시아의 야생초였는데, 씨에서 나는 기름의 효율성 때문에 널리 재배되게 되었습니다. 겨자의 씨는 피부에 바르면 물집이 생기고 위에 닿으면 강한 자극을 일으켜 쓰라릴 정도로 맵습니다. 그래서 이 매운맛 때문에 양념과 약재로 쓰이고 잎과 줄기는 가축의 사료로 쓰였습니다. 한방에서 겨자는 기를 통하게 하고 눈, 귀를 밝게 하며 안면의 풍을 다스린다고 하였습니다.

겨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 씨가 매우 작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작은지,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일반인들이 육안으로는 겨자씨 한 알을 쉽게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작습니다. 아주 가느다란 볼펜으로 콕 찍어놓은 점보다 더 작은 것이 겨자씨입니다. 무게 1g은 물 1cc인데, 눈물 두 세 방울이면 1g, 1cc입니다. 그런데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지  겨자씨 몇 개를 모아야 1g이 될 것 같습니까? 겨자씨 725-760개의 씨앗이 겨우 1g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겨자씨가 얼마나 성장력이 좋은지 다 자라면 높이 3-4m(최고7m)까지 자라서 마치 나무처럼 성장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그늘에 새들이 깃들이게 됩니다. 이 같은 겨자씨의 특성을 제자들을 비롯해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하나님 나라 역시 겨자씨처럼 처음에는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겨자씨 한 알이 자라서 무성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새들이 혜택을 입기 위하여 모여드는 것처럼, 앞으로 하나님 나라도 크게 성장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입기 위하여 모여들게 될 것임을 깨우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겨자씨의 성장 과정을 하나님 나라의 성장 과정에 대한 비유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겨자씨 비유의 초점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적인 주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두 가지 개념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장소적이고 공간적인 천국입니다. 우리는 분명 우리 영혼이 육체를 떠날 때 우리가 거하게 될 영광스런 천국이 있음을 믿습니다. 또 하나는 상태적인 천국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은 주님이 통치하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셨는데, 이는 귀신이 쫓겨 가고 주님의 통치가 임한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시행되는 세계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거부되고 경시되는 세계는 그 어떤 개념으로든지 천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거부되는 곳에 어찌 인간의 자유와 희망과 행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유대인들은 이 땅에 불의한 인간의 나라 대신, 하나님의 나라가 그 언젠가는 구세주를 통하여 실현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주님 당시나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먼 미래에 닥치는 “종말의 나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으면 천국 갈 텐데 이 땅에서야 어떻게 살면 어떠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물질적이며 현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따르던 제자들 중에도 그와 같은 견해를 가진 이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룟 유다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써 압제자 로마 제국을 쳐부수고, 예루살렘 성전에 열두 보좌를 베풀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천국 운동을 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아주 영광스럽고 장엄하게, 아주 힘 있고 강력하고 멋지게 성장할 줄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보면, 제자들의 낙담, 실망, 좌절감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이 땅의 빵과 검을 외면하는 듯 보이는 예수님께 실망을 하고 주님을 배신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오해들을 바로잡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겨자씨 비유로써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교훈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생들이 보기에는 겨자씨처럼 하찮게 보이지만, 큰 권세와 능력으로 성장해 갈 것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천국에 대한 겨자씨의 비밀은 천국이 이 세상에서 어떤 성격과, 어떤 모습으로 시작 될 것인지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천국은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소홀히 여기고, 천하게 여기는 가장 작은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천국은 가장 작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찾아왔고, 천국은 지금도 작은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천국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천국은 마치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겨자씨는 씨 가운데서 가장 작은 씨입니다. 천국이 작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찾아온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겨자씨가 자란 후에 큰 나무가 되어서,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서 쉬고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작은 겨자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공중의 새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인생들이 겨자씨를 작게 보았지만 결국은 그 겨자씨로 인해 쉼을 얻고, 인생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처럼 우리에게 영과, 육의 쉼터가 되어주기 위하여, 이 세상에 찾아왔지만 너무나도 작은 모습으로 이 세상을 찾아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있고,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겨자씨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바로 천국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씨 가운데 가장 작은 겨자씨처럼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가장 작은 모습으로 세상에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거대한 나라들을 택하지 않으시고,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도 가장 작은 고을 베들레헴으로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작은 곳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천국은 이렇게 작은 겨자씨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찾아왔지만 사람들은 그 어떤 느낌도 받지 못했습니다. 

작은 겨자씨처럼 이 세상에 찾아오신 예수님이셨지만, 오늘 날 전 세계의 75억 인구 가운데 3분의 1의 인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택한 12명의 제자들 역시 얼마나 작은 사람들이었습니까? 이름도 없고, 학벌도 없는 어부 출신들로 작은 겨자씨 같은 사람들이었지만, 12명의 제자들을 통해 세계에 천국을 알리고, 복음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작은 겨자씨의 역사는 인류 역사가 흐르는 동안 계속되어 왔고, 지금도 작은 겨자씨의 역사는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17세기에 작은 스페인 나라를 택하여 천국 복음의 겨자씨를 뿌린 하나님께서는 작은 스페인 나라를 통하여 페루, 멕시코에 복음을 심으셨습니다. 19세기에 작은 섬나라 영국에, 작은 겨자씨의 천국 복음이 들어가고, 미지의 신대륙에 작은 배를 타고 103명이 미 대륙에 상륙하여 작은 겨자씨 같은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한 결과, 200년 만에 전 세계를 다스리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큰 교회들 역시도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겨자씨 같은 모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더라도 얼마나 작은 사람들입니까? 그러나 이 작은 사람들을 택하여서 하나님은 큰 뜻을 이루시려고 계획하시고 계십니다. 이런 천국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감사가 안 나올 수 없을 것이고, 하나님 앞에 열심히 충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작은 우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작은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큰 뜻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고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천국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비밀을 아는 성도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아무리 작아도 불평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작은 겨자씨 한 알 같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큰 것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작은 것을 택하십니다. 다윗을 택하실 때도 가장 작은 막내아들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택하셨습니다. 

작은 것이라 해서 모양만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 것은 교만을 뜻하고 있고, 작은 것은 겸손을 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국가, 작은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교만해진다면 쓰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서 29절 말씀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 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작은 것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성도는 곧 천국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성도는 곧 천국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중세 세대 스코틀랜드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부흥 강사는 예수를 믿을 사람 나오라고 시간 시간마다 소리쳤지만 한 사람도 결신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부흥 강사 앞에 한 소년이 걸어 나왔습니다. 부흥 강사는 얼마나 낙심했는지 모릅니다. 단 한 명밖에 결신자를 못 얻은 집회였기 때문에 부흥 강사는 실망하였습니다. 사람은 실망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실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작은 소년 한 사람을 통하여 놀라운 큰일을 하셨는데, 바로 이 소년이 훗날에 아프리카 대륙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위대한 리빙스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는 할 수 없다”고 거부하였습니다. 이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너에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모세의 손에 든 것은 말라빠진 마른 지팡이였습니다. 보잘것 없는 작은 마른 막대기 하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손에 든 작은 막대기를 통하여 모세에게 용기를 주셨고, 보잘것 없는 작은 막대기로 바로 왕을 대적하였고, 홍해를 갈랐고, 반석을 쳐서 생수가 나오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작은 것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고 버려 버립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가장 작은 것을 통하여 일을 하시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직 작은 사람이기에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손에 무엇이 있습니까? 나에게 가장 작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 작은 것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작은 겨자씨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부끄러워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작은 두 렙돈을 가지고 내놓고 부끄러워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나는 너무 작은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자책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 작은 믿음, 그 작은 헌금, 그 작은 사람을 사용하시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디베랴 광야에서 예수님의 손에 올려 진 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덩어리는, 작은 소년의 손에서 아주 작은 물고기와, 보리떡이었지만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고, 2만 명이 배불리 먹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 말씀에,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비밀은 이렇게 아주 작게 시작된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우리부터 작은 사람이 되어서 천국을 이루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누룩 비유

본문 33절 말씀에,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4번째 천국에 대한 비밀은, 누룩의 비유입니다. 작은 겨자씨의 비유가 외형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누룩의 비유는 내면적인 변화를 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도 변한 것이 없으면 안됩니다. 반드시 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비밀을 누룩으로 비유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천국의 비밀은 변해 가는 것입니다. 누룩에 대한 해석은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면은 성경에서 누룩을 악한 의미로 보고 있는 곳도 있기 때문에 악하게 보기도 합니다. 긍정적인 면은 누룩이 변화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듯이, 기독교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누룩을 긍정적인 면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누룩은 복음의 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적은 양의 누룩이 가루 서 말을 부풀게 했듯이 보잘것 없이 시작된 작은 천국 복음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고, 세상 곳곳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변화되는 비밀을 아는 성도가 천국 비밀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밀가루에 적당량의 물을 넣고 반죽을 합니다. 이때 밀가루만 가지고서는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는 빵을 만들 수 없습니다. 밀가루에 누룩을 넣어  반죽을 해야 합니다. 이때 누룩을 아주 조금만 넣으면 됩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반죽이 된 밀가루가 부풀어 오릅니다. 전부 부풀어 오릅니다. 천국 백성은 바로 이 반죽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누룩과 같습니다. 밀가루 전부를 변화시키는 것은 밀가루 자체가 아니라 누룩입니다. 누룩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가 들어간 곳은 모든 문화가 변했고, 민족성이 변했고, 사회가 변화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세상과, 사람을 변화시키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누룩은 일종의 이스트와 같은 효모 작용이 뛰어납니다. 누룩의 특성은 변화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누룩의 비유에 하신 주님의 의도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한 마디로 너희가 변화되라는 것입니다. 가루 서 말을 부풀게 변화시킨 누룩처럼, 너희도 누룩 같은 복음을 받은 사람이라면 변화되라는 말씀입니다. 누룩을 뜻하는 복음은 곧 능력입니다. 누룩이 들어가는 곳은 변화가 일어나듯이, 복음이 들어가는 곳은 변화가 일어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6절 말씀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을 받아들인 국가마다 모두 변화되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마다 모두 변화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또한 복음을 받아들여서 이렇게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혹시 우리의 변화가 멈춰져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우리의 변화는 멈춰 서 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계속 변화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 이 시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변화는 거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신앙이 이 정도면 됐지” 하는 자만심에 빠져서 더이상 변화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 만물이 더이상 변화되지 않고 정지된 상태가 되면 썩게 되어있는 것이 만사의 이치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더이상 변화되지 않는다면 타락하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룩 같은 복음은 우리를 끓임없이 변화시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변화되어야 합니다. 어제의 신앙보다 오늘의 신앙이 더 뜨거워야 합니다. 내가 변화되어갈 때 내 가정이 변화되어가고, 내 가정이 변화될 때 내 교회가 변화되고, 더 나아가서는 나라가 변화되어 갑니다. 내 가정이 아직도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아직 복음으로 완전히 변화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아직도 타락된 곳이 많이 있고, 우상이 난무한다는 것은, 교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으로 변화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곧 능력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성도들이 천국 비밀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여리고에 사는 삭개오는 부자면서 세리장으로 권세를 부리면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예수님에 대한 복음의 소식을 귀로만 듣고 있었습니다. 삭개오에게 전해진 그 복음은 삭개오를 변화시키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변화에 만족하고 있지 않았고, 더 변화되기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말을 들은 삭개오는 거리로 나갔지만, 이미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서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삭개오의 마음은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지위, 권세, 체면 다 버리고 뽕나무로 올라가서라도 예수님을 만나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뽕나무로 올라간 것입니다. 삭개오가 뽕나무로 올라간 것은 단순한 예수님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듣고 삭개오의 변화된 모습이었습니다. 변화된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뽕나무에 있는 삭개오에게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께서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삭개오의 이름까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변화될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기억하시고 살펴보고 계십니다. 삭개오의 변화를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믿음이 그 상태에서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삭개오의 신앙에 더 큰 변화가 있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집에 가셔서 삭개오를 더 변화시키셨습니다. 삭개오가 어떻게 변했습니까? 자신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의 변화에서, 이제는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참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삭개오 역시 재물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삭개오는 재물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을 정도로 변화된 것입니다. 무엇이 삭개오를 이렇게 변화시켰습니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삭개오를 이렇게 변화시킨 것입니다. 

사마리아 수가라 하는 동네에 한 여인이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면서 살아가 보았지만 삶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고, 변화된 것은 천한 여자라는 소리만 듣고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불쌍한 여인을 누가 어떻게 변화시켰습니까? 이 여인은 우물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복음을 듣게 되었고, 복음을 들은 이 여인은 마음이 변화되기 시작하였고, 그 변화는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더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여자는 물동이까지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 들어가면서 소리쳤습니다. “여러분,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오, 여기 그분이 여기 왔어요” 복음으로 변화된 천한 이 여인은 자신의 과거의 더러운 인생도 복음으로 치료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복음의 여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복음으로 변화된 이 여인은 자신의 과거가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과거에 매여 살지 않고, 사람들 눈치나 보고 사는 불쌍한 인생으로 살지 않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이 여인은 깨닫게 된 것입니다. 무엇이 사마리아의 천하고 불쌍한 여인을 이렇게 용기 있고, 소망 있는 여자로 만들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복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천국 백성이 누룩입니다. 우리가 천국의 사람이라면 이 누룩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대의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밀가루가 있어도 누룩이 없으면 결코 빵이 될 수 없습니다. 누룩이 있어야지만 부풀어 오르고 또 맛있는 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가 의미하는 것은 누룩과 같은 소수의 무리들이 세상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천국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 비록 수적으로는 적을지 몰라도 그들이 이 어둡고 부패한 세상을 개혁하고 변화시킵니다.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이미 천국이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천국은 처음부터 크게 오지 않습니다. 가장 작은 겨자씨 한 알로부터 시작됩니다. 누룩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이 확장되어가는 가는 것은 적은 누룩으로부터입니다. 적은 누룩을 통해 밀가루 전체가 부풀어 오르듯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이 세상 전체가 변화되어 갑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겨자씨는 천국 그 자체로서 천국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천국이 겨자씨로부터 나무가 될 때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누룩은 천국 백성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천국을 품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은 천국을 품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이 세상을 천국으로 변화시켜 가십니다. 비록 한 명이라 하더라도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십니다.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룩 한 스푼과 같이 적은 무리일지라도 능히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교회의 역사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역사,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놓은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종교개혁은 누룩과도 같은 한 사람, 미약한 한 사람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고작 열두 명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열두 명을 통해 하나님은 세상을 바꾸어놓은 주님의 교회를 시작하셨습니다. 온 지중해 세계에 교회를 세우고 당대 최강대국이었던 로마의 역사를 단숨에 바꾸어놓았던 것도 사도 바울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의 누룩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본질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천국으로 변화시키는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누룩이 되지 못하면 교회도 변하지 않고 세상도 변하지 않습니다. 아니, 가정도 변하지 않고 자식도 변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누룩이 되지 못하면 내 주변은 그냥 밀가루일 뿐입니다. 결코 부풀어 오를 수도 없고 빵도 될 수 없습니다.

누룩은 주변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너무 겸손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교회를 변화시키고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어? 나 혼자 힘으로 어림도 없어?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룩 한 수저이면 충분합니다. 내가 누룩이 되면 가정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세상이 변합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팔려간 곳은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보디발은 바로왕의 친위대장으로, 왕을 경호하고 정치범들을 잡아들고 사형을 집행하는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그러니 그 보디발의 집에 얼마나 많은 노예가 있었겠습니까? 요셉은 그 무수히 많은 노예들 틈에 끼어 있는 이름 없는 노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당시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소유하고 있는 소나 말처럼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에 불과했습니다. 더욱이 요셉은 애굽이 처음입니다. 당연히 애굽의 말도 할 줄 모르고 주인이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 알아듣지 못해서 얼마나 큰 고초를 당했겠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애굽땅에서 고독하고 외롭고 비천하게 살아가는 노예가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좌절하고 낙망하고 원망하고 한풀이를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달랐습니다. 요셉은 천국을 소유한 누룩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런 요셉을 통해 주인 보디발이 창세기 39장 3잘 말씀에,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다”. 보디발은 요셉을 통해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요셉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요셉의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애굽은 우상과 잡신이 판을 치는 나라입니다. 보디발도 당연히 우상들을 섬기며 살았을 것입니다.   

보디발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수하에 있는 수많은 노예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요셉이 하나님을 보디발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노예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것이 비참한 것입니다. 고난이 있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고통스러운 것이 저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것이 저주입니다. 요셉은 비록 노예로 살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보여준다는 것은 천국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셉은 정말 누룩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자 세상이 변했습니다. 보디발의 집이 변했습니다. 모든 것이 부풀어 올랐다. 창세기 39장 5절 말씀에,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보디발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았고 오히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그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그것도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이것이 누룩의 삶의 결과입니다. 보디발의 수많은 노예 중의 한 사람이었던 요셉, 그것도 애굽땅에서는 이방인이었던 요셉, 정말 보잘것 없는 한 사람이었던 요셉이 누룩과 같은 삶을 살자 그 주변이 변했습니다. 그 주변이 복을 받았습니다. 누룩의 사람은 자기 주변을 천국으로 바꾸어갑니다. 가정도 교회도 일터도 천국으로 바꾸어갑니다.   

누룩의 사람은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천국표가 붙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브랜드는 Made in Heaven입니다. 천국다운 말을 하고 천국다운 행동을 합니다. 천국의 사람을 대하듯 이웃과 성도들을 대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천국이 되고, 그 사람이 만나는 사람마다 천국을 경험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누룩과 같은 사람입니다. 

헌신의 삶이 누룩입니다. 예수 믿고서도 나만 편하고 나만 성공하고 나만 복 받고 내 자식만 잘되기를 바란다면 결코 누룩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교회에 모여 있어도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 가정도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천국으로 바꾸는 누룩이 되려면 내가 먼저 바꾸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성품도 생각도 행동도 변해야 합니다.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누룩은 밀가루 반죽에 섞이면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누룩이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빵이 돋보이게 됩니다. 누룩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것을 헌신이라고 합니다. 누룩이 자기 자신을 밀가루에 헌신했습니다. 반죽이 부풀어 오르도록 빵이 돋보이도록 자기 자신은 감추며 헌신했습니다. 그래서 누룩의 삶은 헌신입니다. 나를 희생하는 헌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군림하신 것이 아니라 헌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시며 우리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헌신으로 온 세상에 구원이 임했고, 예수님의 헌신으로 천국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누룩 그 자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천국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누룩으로 살 때 세상이 천국으로 바꾸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누룩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혼자라고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 혼자만 헌신한다고 불평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모르게 헌신했다면 그 사람이 누룩입니다. 그 헌신된 한 사람, 하나님을 보여주는 그 한 사람이 누룩입니다. 그 한 사람으로 주변이 변하고 복을 받게 됩니다. 그 한 사람의 누룩이 바로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무리

겨자씨의 모습은 실망적인 것이었으나, 나무가 된 모습은 희망을 갖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겨자씨의 비유는 우리가 올바로 천국을 소망하고,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로서 세상을 살아갈 때에만 복음의 씨가 싹이 트고, 자라나서 우리의 안식처가 예비된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처음 시작은 작고, 미약했으나 성장하면 큰 나무가 되는 겨자씨처럼, 천국을 소유한 한 생명은 미약한 것 같으나 이 작은 생명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는 것입니다. 겨자씨 나무 비유에서 주는 교훈은 교회라고 하는 곳은 처음에는 너무 작고 미미하지만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으면 자라난다는 사실입니다. 겨자씨 비유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의와, 사랑과, 하나님의 나라는 처음에는 안보이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크게 자라나서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입니다. 

누룩처럼 놀랍게 퍼지는 특성을 가진 복음이 나에게 임했다면 나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누룩의 변화의 특성은 멈추어지지 않습니다. 누룩에는 세 가지의 아주 중요한 힘이 있습니다. 회개를 가져옵니다. 새로운 피조물을 만듭니다. 누룩이 있는 곳,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곳, 복음이 있는 곳에는 새로운 피조물이 창조가 되어집니다.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정말로 예수님을 모시고, 우리가 정말로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하면, 예수님을 믿기 전과 예수님을 믿은 후가 분명하게 달라야 됩니다. 방향이 달라야 하고, 목적이 달라야 하고, 삶의 의미가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겨자씨 나무처럼,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한 누룩처럼, 싱싱하게 살아 있어서 삶에 지친 영혼들이 와서 깃들이며 쉼을 얻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도 여러분, 천국 비밀의 복음이 지금 우리에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이 천국 비밀을 깊이 깨닫고 겨자씨 같은, 누룩 같은 복음의 역사가 여러분 심령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말씀은 목사님들의 설교와 참고자료들을 인용하여 올린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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