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지금은 사라진 회갑연의 의미

요즘은 회갑연을 대부분 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칠순잔치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백세 장수시대가 되어서인지 육십살을 살고 칠십살을 산 것은 장수로 치지도 않는 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재미있는 경로당 이야기가 그 예가 될 것이다.

칠십대의 시아버지와 함께 사는 며느리가 있었다. 며느리는 밤낮 집에서만 보내는 시아버지에게 “아버님 심심 하신데 경로당에 라도 나가세요. “했다. 그랬더니 그 며느리의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의견을 딱 자르듯이 인상을 찡그리며 “싫어 안간다” 하는 것이다.

며느리는 “왜요, 아버님? 경로당에 시설도 잘해 놨다는데 가셔서 놀다 오세요” 했다. 그랬더니 시아버지는 “경로당에 가면 90대 형들이 커피 타와라 라면 끓여와라 하고 일만 시켜. 내가 이나이에 커피 심부름이나 하고 집에서도 안하는 라면끓이기나 해야겠니?”하더라는 참으로 웃지못할 이야기가 있다.

이젠 초고령화 사회로 들어선 우리나라는 경로당도 나이별로 만들어야 할때가 아닌가 싶다. 경로당을 70~80세 까지 하나 만들고 80세이상 하나를 만든다든가 해서 경로당을 이용하는 분들이 너무 많은 나이 차이 때문에 위와 같은 사례가 일어나지 않도록 고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의 일이다. 나의 큰오빠가 등기우편하나를 보내왔다. 봉투를 열어보니 USB 한 개가 들어 있다. USB에 담긴 내용은 다름아닌 이미 오래전에 소천하신 나의 친정아버지의 회갑연을 축하한 내용이었다.

30년전에 비디오로 찍어 두었던 것을 기계를 잘 다루는 큰오빠가 USB에 담는 작업을 해서 형제들에게 보내준 것이다. 비디오기계가 없어진지 오래기 때문에 예전의 추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는 다시 보지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비디오에 찍힌 내용을 USB에 담아 놓으면 언제든지 손쉽게 볼 수 있다. 우리집에도 나의 아들이 이번 설에 구정을 쇠러 집에 왔다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시아버님의 칠순잔치 비디오를 USB에 담아주었다. 그래서 구정날 가족들과 함께 시아버님의 칠순잔치(고희연)장면을 다시 보면서 즐거운 추억에 잠겨 보았다.

나는 친정 아버지 회갑잔치 내용이 담긴 USB를 화면이 넓은 TV화면에 연결해서 보았다. 아주 오래전 추억이 새롭기만 했다. 60세의 친정아버님은 지금의 나보다도 적은 연령이셨으니 청년처럼 새파랗게 젊어 보이셨다.

또한 아버지의 자녀들인 우리 친정형제들도 30~40대이니 전부 젊은 모습이었다. 친정아버님은 누님이 위로 둘이고 아들로는 독자이셨다. 외아들인 아버지는 4남1녀의 자녀를 낳으셨다.

그리고 그 5남매를 통해서 6명의 손자와 6명의 손녀 도합 12명의 손자손녀를 보셨다. 그래서 아버지의 직계 후손만 22명이된다. 이처럼 아버지 한사람을 통해서 형성된 22명의 대가족이 참석하고 여러 친척들도 함께한 회갑연은 정말 화기애애하였다.

회갑연 순서에 따라서 아버지의 회갑연을 축하하기 위해 자녀및 손주 그리고 친인척들이 돌아가면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전문 밴드마스터 한 사람을 초청하여 반주를 하게 하여 더욱 흥겨운 잔치자리가 되었다. 회갑연 장소는 당시 청주에서는 유일한 호텔인 청주관광호텔 이었다.

내가 노래할 차례가 되었다. 내가 부르고 싶은 유일한 노래는 찬송가였다. 오빠들과 친인척들 모두가 대중가요를 불렀다. 나는 그때도 오직 신앙중심으로 살고 있을때여서 아버지의 회갑연에도 검정색 장정본인 성경찬송합본을 가지고 갔다.

그런데 내가 찬송가를 부르자 밴드 마스터가 반주를 하지 못했다. 대중가요만 반주해온 사람이니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무반주로 내가 부른 찬송가는 459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 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아도 이 찬송가는 아버지의 회갑연 축하노래로 정말 딱 어울리는 노래였다.

1절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는 가사는 회갑연을 맞을때까지 살아오신 분의 생존에 관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내용으로서 회갑연 축가로 매우 적절하고도 적합한 가사이다.

2절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힘 받아 살았네 물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아버지는 58세에 어머니를 먼저 천국으로 보내시고 혼자 살고 있으시던 중에 회갑을 맞이 하셨다. 평생 어머니의 수발을 받으며 살아오신 아버지가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아 수년을 외로이 살아내고 나서 회갑을 맞이하신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어찌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3절 마지막 소절은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이다. 아버지는 나중에 예수님을 영접하셨지만 당시 아버지는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구원 받고 천국 가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딸인 나의 소원을 담아서 불러드린 찬송가였다.

아버지의 사촌과 친지들 그리고 조카들이 노래를 불렀다. 나의 어린 삼남매도 마이크를 잡고 합창을 했다. “이몸이 새라면 이몸이 새라면 날아가리 저멀리 보이는 작은섬까지…”라는 노래를 불렀다.

큰아들과 큰딸은 키가 커서 마이크에 입을 대고 노래를 부를 수 있었지만 아직 어려서마이크까지 키가 닿지 않은 막내딸을 내 큰조카가 번쩍 안아서 마이크 가까이에 입을 대게 해 주는 장면은 참 흐믓하기만 했다.

장남인 큰 오빠가 신경을 써서 준비한 친정아버지의 회갑연엔 그야말로 우리의 친인척, 내가 자라면서 보아왔던 모든 친척들이 다 참석한 것 같았다. 사촌 육촌 팔촌 까지 그리고 더 먼 친척들까지 참석한 회갑연은 아버지의 평생에 가장 성대한 모임이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손위 누님이 두분 계셨다. 바로 나에겐 고모이신 두분 고모님이 한복을 곱게 입고 나오셔서 사람들이 축하노래를 부르는 동안 덩실 덩실 춤을 추어서 회갑연의 흥을 한껏 돋구어 주셨다.

아내 없이 혼자 살고 있다가 회갑을 맞은 남동생의 회갑연을 춤을 추어 축하해 주는 두분 고모님의 형제애 모습을 보며 내 마음 또한 울컥해 왔다. 내가 젊었던 30년전 회갑연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어쨌든지 친정아버지의 회갑연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우선 회갑연 장소를 잘 선택했다. 당시에는 회갑연 장소를 관광호텔에서 여는 것은 드문일이었다. 큰회사의 간부로 지내며 세상물정을 잘 아는 큰오빠의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수십년이 지나서 다시 그 회갑연을 보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아버지가 회갑연을 안했더라면 그후 다신 만나지 못하고 이세상에서 헤어진 친척들도 많았다. 그래도 이런 잔치가 있어야 친척들이 오고 가까운 친구들이 찾아와서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회갑연을 찬성하는 편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나는 나의 남편의 회갑연을 열어주었다. 벌써 8년전이다. 깔끔한 한정식 식당을 빌려서 남편의 회갑잔치라기 보다는 회갑감사예배를 드리고 오찬을 나누었다. 자녀들과 가까운 친구들과 동역자들 그리고 제자들을 초청했다.

오십명 정도 초청된 대단히 조촐한 회갑연 이었지만 나름대로 매우 의미가 있던 회갑기념 오찬이었다. 역시 그런 축하의 자리가 마련되었기에 만날 수 있었던 지인들과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남편이 고교 교사일때의 제자가 찾아와서 서로 반가운 해후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한 육사교회에서 기독생도제자사역을 할때의 생도가 중령이 되어 찾아와서 우리가족 모두가 참으로 반가웠다.

내후년이면 돌아오는 남편의 칠순(고희)을 아마 나는 기획해서 기념할 것이다. 사람일을 어찌 알겠는가? 그래서 나는 기념할것은 철저히 기념하고 축하할 일도 빼놓지 않고 축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아직 성지순례를 가보지 못한 남편 K선교사에게 칠순기념으로 성지순례를 가게 하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나는 기회가 주어져서 성지순례를 다녀 왔지만 남편과 함께 한번 더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모시고 사는 시어머님을 뵈면 기념일 축하도 젊었을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많아지면 축하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병(치매)을 앓는 우리 어머니에게는 아무리 좋은 음식도 멋진 파티장도 아무 의미가 없다.

며느리인 내가 만들어 드리는 간소하고 소박한 식사를 더 마음 맞아 하신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많이 늙으면 자신을 위해 잔치를 하고 파티를 해도 즐길 수 있는 지력도 에너지도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보다 젊어서 기력이 많을때 그리고 충분히 즐거워 할 수 있을 때 부모님의 생신도 챙겨 드리고 회갑도 칠순도 팔순도 기념해 드리고 축하해 드려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은 하도 젊게 사니 60세 기념인 회갑은 기념하지 않더라도 부모님의 칠순서 부터는 꼭 기념해드리는 것이 좋을것 이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장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세 장수시대라는 것은 맞지만 프로테이즈로 보았을때 백세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백명중 1-2명에 불과하다. 우리 어머니처럼 90세를 넘게 사는 어른들도 많은듯 하지만 사실은 동일연령대에서 5%도 안되는 숫자이다.

90대 어르신 백명가운데 5명 정도가 90세이상을 살고 있는 것이지, 95명은 이미 유명을 달리하여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 부모님이 생존해 있으시다면 칠순(고희연)과 팔순기념잔치를 꼭해드리라고 권면해 드리고싶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 3:1-2)”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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