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영국과 한국에서의 동병상련(同病相憐)

오전에 영국에 살고 있는 K집사님과 카카오 페이스톡으로 무료통화를 53분간이나 했다. 내 마음이 컬컬했기 때문이다. 나의 선교문학 독자이신 이제 70대 초반인 K집사님은 93세의 치매환자인 남편을 돌보느라 힘들게 지내고 있는 분이다.

같은 병을 앓고 있으면서 서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을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한다. 자신이 겪고 있는 일과 같은 일을 겪으며 그것에 따른 힘듦과 아픔을 동일하게 느끼는 사람들 간에도 이 말은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치매환자 시어머니를 돌보는 나의 이야기는 곧 K집사님의 남편을 돌보는 이야기이고 K집사님의 치매 환자 남편을 돌보는 이야기는 곧 나의 치매환자 시어머니를 돌보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K집사님과 나는 서로의 힘듦을 카톡으로 나누면서 치매환자를 돌보면서 힘든 마음을 나누곤 했었다.

그런데 K집사님은 천만다행으로 아들이 엄마의 간병을 너무나 잘 돕는다고 한다. 아래층에 있는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만 톤이 올라가도 이층에 있던 아들이 뛰어 내려 온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이 노령의 치매환자 아버지를 간병하는 것이다.

K집사님의 30대 초반의 외동아들은 처음에는 아버지의 대변을 보고 구역질을 할 정도로 비위가 약했으나 지금은 끄덕도 없이 아버지를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히고 파우더를 발라주고 하면서 너끈하게 간병을 한다고 한다. 오히려 나이 많은 엄마가 힘들까봐서 수발하지 못하게 할 때도 있다고 한다.

나는 예전에 영국에 갔을 때 영국 주택을 본 적이 있는데 일층은 주방과 다이닝룸이고 침실은 모두 2층에 있다. 그러나 K집사님은 환자를 잘 돌보기 위해서 1층인 다이닝룸에 남편의 침대를 옮겨 놓고 돌보고 있다고 했다.

K집사님은 종종 치매남편을 돌보기가 얼마나 힘든지 “하루에 몇 번이고 울고 싶을때가 있어요.” 하고 나에게 카톡을 보내어 고백하기도 하였다. 아무리 아들이 돕는데도 남편을 간병하는 전적인 책임은 K집사님에게 있으니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치매환자를 간병해 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상황이 어떤 정도인지 말이다. 우리집에도 오늘 새벽부터 비상이 걸렸다. 나는 새벽예배를 마치고 어머니 방문 먼저 열었다. 문을 열자 마자 벌써 확~풍겨오는 지독한 구린 냄새.

그러나 전처럼 오줌냄새인 암모니아 냄새가 아니다. 이크~ 변을 보셨나 보다. 그러나 잠든 어머니의 얼굴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너무나도 멀쩡했다. “어머니 일어나 보세요. 기저귀하고 속옷 갈아야 할것 같은데요.” 옷을 들추어 보다가 나는 아~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그냥 가저귀나 속옷을 갈아입힐 정도가 아니었다. 이미 옷 위로 변이 배어 나와 있었다. 아마도 침대위에 누운채 변을 본 모양이었다. 어머니를 일으켜 손을 잡고 욕실로 들어갔다. 속내의는 말할 것도 없고 두꺼운 잠옷바지에 까지 잔뜩 배어 있는 대변을 보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일단 어머니의 몸부터 씻겨야 했다. 씻겨드린 어머니는 곧 누우려고 하실 것이기에 침대를 살펴 드려야 한다. 어머니를 씻겨 놓고 얼른 어머니 방에 들어가보니 침대위의 이불이며 두개의 침대매트며 그밑에 깔아논 방수깔개까지 다 똥물이 배어 있다.

이불과 매트를 다 들어내고 새로 침대 세팅을 하고 어머니를 눕히고 빨래감을 방 밖으로 한보따리 내밀어 놓았다. 대변이 묻은 빨래감은 변이 묻은 부분이라도 전부 애벌빨래를 한 후에 세탁기에 넣어야 한다.

변이 묻은 부분 부분을 애벌 빨래를 해서 이불을 세탁기에 넣은 후에 집안의 창문들을 다 열어 젖혔다. 추운게 문제가 아니었다. 얼른 환기를 시켜야 했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벗어 놓은 대변 묻은 옷들을 정리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서면서 나는 생각에 잠긴다.

아… 어머니가 이젠 아예 침대가 화장실인줄 아시는건가… 그래도 전에는 스스로 화장실에서 변을 보고 닦는 처리를 못해서 화장실에 똥물을 뿌려서 화장실을 청소하고 닦는 일이 큰 일이었는데 이젠 아예 누운채 옷에다 대변을 모두 봐 버리다니… 치매가 더 심해지신건가…휴~~~

일회용 장갑을 끼고 어머니가 벗어 놓은 속내의와 잠옷바지를 물로 헹구어내기 시작했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 … 계속 옷을 헹구어 내는데도 노란 똥물이 자꾸만 나오니 계속 맑은 물이 나오기까지 헹구어 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물을 먹은 어머니의 겨울용 극세사털로 만든 잠옷이 어찌나 무거웠던지…내 힘으로 헹구어서 옷을 들어올리기가 힘들었다. 옷이 물을 먹으면 이렇게 무거워 질 수 있다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물을 잔뜩 먹은 옷을 들어 올리려니 허리가 말할 수 없이 아팠다.

아… 이거 이젠 나도 힘이 딸리네. 어머니 돌보다가 내가 몸져 눕는 일은 없어야 할텐데… 이젠 이런 힘든 일은 남편에게 하게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나부터 바꾸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왜냐하면 간병은 절대적으로 힘이 세어야 하니까 말이다.

청소 세탁 화장실 정리를 다 끝내고 이마에 땀을 닦으며 이번에는 어머니 드릴 흰죽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속이 계속 안 좋으신것 같다. 이틀전에도 하루에 일곱번이나 변을 기저귀에 보아서 이튿날은 주간보호센터에도 안보내 드리고 하루종일 집에서 죽을 끓여서 드시게 하고 돌보아 드렸다.

그렇게 하루동안 어머니를 집에서 잘 돌보아 드렸더니 이튿날인 그러니까 어제 아침엔 어머니는 스스로 침대에 일어나 앉아서 외출할 때 입는 코트까지 다 입고 침대에 걸터 앉아 있었다. 새 기운이 나신 것이다. 기저귀에 배뇨도 하지 않고 깨끗했다. 그날 내눈에는 우리 어머니가 유난히 이뻐 보였다.

그래서 어제는 기분 좋게 어머니를 주간보호센터에 보내 드렸다. 그리고 기분 좋은 김에 어머니 방의 침대 구조를 바꾸어 드렸다. 벽쪽에 붙여 놓았던 침대를 방가운데로 놓고 양쪽에 협탁을 놓아 호텔처럼 꾸며 드렸다.

그랬더니 조금 후에 남편 K선교사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어머니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가봐요. 어머니 방에 음악 감상실을 만들어 드렸어”한다. 나는 남편의 말이 생뚱맞게 들려서 “무슨 음악감상실을 그렇게 뚝딱 만들어요.” 했다.

얼른 어머니 방에 안들어가 보는 내가 답답했든지 남편은 나를 재촉한다. “아, 어서 들어가봐요.” 그 말에 어머니 방에 들어가서 보니 나는 쿡~ 웃음이 나왔다. 남편이 만든 음악감상실은 초간단했다. 예전에 쓰던 핸드폰에 유튜브를 켜 놓은 것이다.

그리고 화면이 크게 보이도록 핸드폰 확대경을 침대 협탁 앞에 놓아서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서도 유튜브에서 나오는 트롯음악과 가수들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도록 해 논 것이다. 한참 미스트롯으로 뜨는 김태연의 ‘간대요 글쎄’가 구성지게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하여간 저양반 아이디어는 좋으네 하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저녁에 주간보호센터에서 오신 어머니에게 보여 드렸더니 몇곡을 침대에 앉아서 들으면서 감상을 내게 말해준다. “저 노래 슬프다. 아이구~ 저 아가씨 노래도 참 잘 부른다.”

그렇게 어제는 기분 좋은 하루였는데 오늘 어머니의 대변세례로 새벽부터 비상이 걸리고 할 일이 많아지고 이렇게 힘들게 보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하루 일상생활이 어머니의 상태에 따라서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제는 하루종일 설사를 하셔서 주간보호센터에서도 몇 번 실수를 하시고 집에서도 몇 번이고 대변처리를 하느라 진이 빠지다가 어제는 말짱해서 기분 좋게 하루를 보냈는데 오늘은 또 새벽부터 침대 위에서 대변을 봐버린 어머니의 뒷치닥거리로 땀을 뻘뻘 흘리며 허리 아프게 일해야 했다

그러니 내 마음이 꿀꿀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누가 이해를 할 것인가? 기껏 이야기를 하면 왜 요양원에 안 보내드리고 사서 고생 하느냐는 말이나 들을 것이 뻔한 데 말이다. 그래서 이럴 때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최고의 대화상대며 위로자가 된다.

나와 같은 형편의 영국의 K집사님은 그래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K집사님도 남편이 요양원에 죽어도 가기 싫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의 나이도 이제 적지 않고 힘에 부치는데도 불구하고 집에서 간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혹시 치매환자가 여러분의 집에도 있다면 그리고 K집사님이나 나처럼 집에서 돌보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가족들은 간병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을 도와야 한다. K집사님의 아들이 적극적으로 간병하는 엄마를 돕는 것처럼 말이다. 간병에는 여자 남자가 따로 없다. 내 가족이면 다 함께해야 한다.

그럴때 간병을 도맡은 사람이 그나마 힘든 가운데서도 위로가 되어 마음도 지키고 건강도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이다. k집사님은 알츠하이머병(치매)을 앓는 남편을 간병하면서도 새벽에 동네를 돌면서 전도지를 돌린다고 한다. 아들의 간병 조력에 힘을 얻은 K집사님에게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오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세상 참 좋아졌다. 한국에서 영국으로 무료통화를 한시간 가까이 할 수 있는 세월이 오다니… 예전에 국제통화는 그야말로 비싸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떤 커플은 해외에 유학간 애인이 보고 싶어 매일 국제 전화를 했더니 한 달 월급이 국제통화료로 다 나가더라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인터넷 통신의 발달 덕분에 영국에서 치매환자를 간병하는 K집사님과 한국에서 치매환자를 간병하는 내가 전화를 통해서 그것도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 페이스톡으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다독이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시간을 갖을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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