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어머니가 주간보호센터에 가시고 나면 우리 부부는 거실창 앞에 놓아둔 작은 탁자에 마주 앉아서 성경을 읽는다. 얼마전 대리석 식탁이 중고마켓을 통해 우리집에 들어오고 나서 전에 쓰던 작은 식탁을 거실 창문 앞에 놓았더니 나름 쓸모가 많았다.
바깥 경치를 감상하면서 커피를 마셔도 좋고 창 앞이라 밝아서 독서를 해도 좋다. 그동안 밥을 먹는 식탁에서 성경을 읽다가 창쪽 탁자로 와서 읽기로 했다. 왜냐하면 메인 식탁은 안쪽에 있어서 낮에도 책을 보거나 식사를 할 때도 꼭 불을켜야 한다. 그런데 자연광이 밝은 거실창 앞 탁자에선 불을 켤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성경읽기 계획표에 의해서 시편 한편을 먼저 읽고 구약의 그날 정해진 분량을 읽고 그다음 신약을 읽고 마지막으로 다시 시편 한편을 읽는 방식으로 성경을 통독한다. 하루에 50분~1시간 가량 읽으면 석달 정도면 신구약 한번을 통독하도록 되어 있는 성경읽기 프로그램이다.
원래 이 성경통독법은 녹음된 성경통독사의 성경을 읽는 소리를 귀로 들으면서 눈으로 성경을 따라 읽는 방식이지만 나와 남편은 우리의 목소리를 사용해 소리를 내어 읽는다. 서로 번갈아 가면서 성경 한장씩 읽는다. 한사람이 읽으면 다른 한 사람은 눈으로 따라 읽다가 자기 차례가 오면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성경을 다 읽고 함께 기도 제목을 내 놓고 기도를 한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그리고 가족들을 위한 중보기도는 주로 이때 함께 합심하여 기도한다. 기도제목을 나누려는데 남편이 정색을 하고 말한다. “여보! 나 오늘 기념해야 할 일이 있어. 축하해 줘요.”
나는 남편의 말을 듣자 마자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도무지 무슨 기념일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혼 기념일도 아니고 생일도 아니고 우리 가족이 처음 선교지에 들어간 날인 3.1절은 지나갔고…아니 도대체 이 양반이 나 모르게 무슨 기념일을 만들어 둔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는 듯이 남편은 씩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 하였다. “우리 바나바훈련원에서 훈련 받을 때 이강천 원장님이 하신 말씀 기억나? 목사가 나이 먹고 기도하지 않으면 건달목사가 된다고 했던말 말이야.” 하고 운을 뗐다. 나는 “그럼요. 기억나지요”했다.
우리 부부는 선교지에서 돌아왔을 때 함께 바나바훈련원에서 기도훈련을 받았었다. 나는 딱 한 기수 훈련을 받았지만 남편은 두 기수 훈련을 받았다. 이처럼 반복 훈련을 받아서인지 남편은 학습이 잘된것 같다. 기도훈련을 배운대로 실천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때 ‘A텐트의 비밀’도 알게 되었다. 어디든지 A형태의 기도텐트를 만들어 놓고 텐트안에 작은 성경탁자 하나와 방석을 놓고 기도생활에 매진 하라는 제안을 원장님은 훈련생들에게 했었다. 목회자라면 최소한 하루 2시간 이상은 기도해야 한다고 하면서 적어도 3시간씩 기도 하라고 하였다.
그후 남편은 스스로 기도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오전에 두시간 기도하고 오후에 두시간 기도하기도 하고 여러 모습으로 기도에 올인하려고 애썼다. 뭐든 마찬가지 이지만 경건의 연습도 지속하기가 쉬운일이 아니다. 큐티 생활이든 기도생활이든 쉬지 않고 지속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남편 K선교사는 일년전 부터는 노트북에 기도제목을 입력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제목은 계속 업데이트 되었고 분량도 계속 늘어났다. A4용지로 천페이지 가량을 매일 기도하다보면 4시간도 다섯시간도 어렵지 않게 기도하면서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3월 4일이 꼭 그렇게 매일 4시간 이상 기도한 지 1년이 된 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념하고 싶고 축하 받고 싶다고 남편은 말을 꺼낸 것이다. 나는 남편의 말을 들으면서 남편의 성실성에 다시한번 감탄을 했다. “야~ 정말 축하할 일이네요. 무얼로 축하를 할까요? 호호호…”
그러자 남편은 “응 짜장면 먹으면서 축하하고 싶어” 한다. 나는 “에이 겨우 짜장면이예요? 더 맛있는 것 먹으러 가지요.” 했다. 그러나 남편은 “아니야, 나는 짜장면이면 족해 그대신 일반 짜장면집 말고 좀 고급 짜장면집으로 갑시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짬뽕을 시켰다. 그런데 남편은 자신이 짜장면값을 내었다. 일년간 일정한 기도 시간을 지켜낸 것에 대해 스스로 축하 하고 싶었는데 내가 함께 축하해준 것 만도 고마우니까 짜장면 값은 자신이 내겠다고 한다.
나는 “그럼 디저트는 내가 살께요.”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동네 유일한 빙수집인 ‘꽃빙’에 갔다. ‘대만인절미팥빙수’를 시켰다. 양이 많아서 두 사람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분량이기도 하고 맛도 있어서 시킨 것이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주인이 우리 좌석으로 왔다.
대만팥빙수는 지금 만들 수 없으니 다른 것을 시키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인절미팥빙수 하나를 시켰다. 둘이서 빙수를 먹으면서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나라에 일어났던 어려운 일들… 탄핵사건부터 시작해서 계속 터져 나왔던 사건 사건들…
참으로 수년간 참 힘든 시간들이었다. 나라걱정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내 일신상의 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병들지도 않았고 앓아 눕지도 않고 잘 버텨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기도의힘’ 이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나누었다.
뿐만 아니라 전에는 그저 당연히 여기던 모든 것에도 우리는 다 감사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그동안의 어렵게 돌아가는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서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라 걱정에 막막할때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버티어 낼 수 있었다.
어쩌면 남편이 이처럼 매일 몇 시간씩 기도의 제단을 결사적으로 지키어 낼 수 있었던 것도 어려운 나라 상황을 보면서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절박하고 간절한마음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남편은 오래전부터 기도의 사람이 되고 싶어했고 그 소원에 이제 더욱 가까이 다가서 있었다.
올해는 비록 소박하게 짜장면을 먹으며 기념했지만 내년에도 남편 K선교사가 기도의 삶을 충실히 살아서 기념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좀 더 멋지고 근사한 식당으로 내가 안내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 덕분에 오늘은 참 특별한 기념을 했다. 기도시간 충실히 지킨 일주년 기념이란 그리 흔한 기념일은 아닐 것이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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