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훈 칼럼] 사활을 걸고 흔들 깃발이 무엇입니까?

“마치 미로를 걷는것 같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오늘날의 기독교를 향해서 내뱉은 한마디 입니다. 미로는 길을 잃게 만들어서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를 일컫습니다. 현대 기독교를 미로에 비유를 한 그 목사님의 한마디는 방향을 잃고 혼란을 겪고 있는 현대 기독교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악’이라고 표현할수 있을만큼 현대 기독교에 스며 들어온 영적 혼탁 현상은 신자 개인과 교회 공동체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잠식해 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입니까?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기 위해 신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기독교 전문가들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신학적 돌파구와 새로운 가르침의 돌파구와 새로운 제도적 돌파구와 심지어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복음을 제시 하고자 애쓰는 흔적들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새로운’ ‘새로운’ ‘새로운’ 무엇을 제시하는 발상들이 오히려 현대 기독교를 더욱더 길을 잃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현대 기독교에 스며든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새로운’ 무엇이 결코 아닙니다. 

현대 기독교에 스며든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무엇 보다도 사도들이 전하고 가르쳤던 단순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중세 암흑기의 어둠을 빛으로 나오게 한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들이 전하고 가르쳤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낡고 진부한 옛날 방식이라고 폄하 하면서 시대 감각에 맞는 새로운 방식의 복음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고 방식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사고 방식을 유지 하는 한 불붙는 신학이나 불붙는 메시지나 불붙는 기도나 불붙는 찬양을 기대할수 없습니다. ‘불붙는’이라는 표현은 성령의 불같은 은혜를 가리킵니다. 성령의 불같은 은혜 없이는 그 어떤 새로운것으로도 기독교에 스며든 ‘악’을 제거하지 못합니다. 

성령의 불같은 은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온전히 사로 잡힐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성령의 불같은 은혜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 입니다. 그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사활을 걸지 않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수준 높은 신학은 있는데 불붙는 신학을 만나기가 쉽지 않고 수준 높은 메시지는 있는데 불붙는 메시지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준 있는 새로운것을 찾으려는 시도를 멈춰야 합니다. 그저 단순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단단히 붙드는 것입니다.

결국 승리하는것은 결코 수준있는 새로운 무엇이 아님을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승리하는것은 단순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입니다. 신자 개인들과 교회 공동체들이 단순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사활을 걸고 붙들도록 모두 함께 간절하게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단순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사활을 걸고 붙든다면 비록 그 숫자가 적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현대 기독교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 개인들과 교회 공동체들을 성령의 불로 뜨겁게 타오르게 할 것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외치고 선포하며 나갑시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 나의 삶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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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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