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로아와의 약속을 지키게 한 청년

나는 모처럼 대구에 내려왔다. 여건상 짧은 일정이지만 임신한 딸이 한주간 내내 힘들었다고 해서 잠시나마 위로가 되어 주려고 내려간 것이다. 또한 늘 눈에 밟히는 귀여운 로아와 로이를 보고 싶어서 이기도 했다.

이튿날이 되었다. 로아는 어린이집에 안가겠다고 떼를 쓴다. 할머니와 놀고 싶다는 것이다. 겨우 겨우 떼쓰는 로아를 달래서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래서 나는 로아가 어린이집 하원을 할 때는 꼭 로아를 데리러 가야 한다.

몸이 무거운 딸은 집에 있으라고 하고 아이들을 데리러 나 혼자 어린이집에 갔다. 그런데 로아보다 더 일찍 하원하는 로이를 먼저 데리러 어린이 집에 갔다. 로아와 로이는 나이차가 있어서 같은 아파트 안이지만 어린이집이 각각 다르다.

작은 아이인 로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가서 “로이야~” 하고 불렀다. 그런데 선생님손에 이끌려 나오는 로이는 나를 보더니 인상이 안좋다. 제 엄마가 안데리러 온 것에 대해 속상해 버린 것이다. 그 조그만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곧 아우를 보는 로이가 요즘 유독 제 엄마를 밝히는 것이 안쓰럽다. 아이들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기막히게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되는 모양이다. 동생이 태어나면 제가 받던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일까?

로이를 데려다가 제 엄마에게 인계해 주고 이번에는 로아를 데리러 로아가 다니는 어린이 집에 갔다. 로아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로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보다 딸네 집에서 좀 멀리 있다. 어린이집에 들어서서 “로아야~” 하고 부르니 로아가 아주 반색을 한다. 역시 로아는 로이보다 큰애이다.

로아가 내 손을 잡고 나오면서 얼른 한마디 한다. “할머니, 롯데리아 갈거지?” 나는 “그래, 그러면 좋지만 엄마가 미세 먼지도 많고 바람불고 날씨도 안좋고 하다고 바로 집으로 오라고 했어” 했다. 내 말을 들은 로아는 금새 시무룩해 진다.

싱싱카를 가지고 왔던 로아가 핑크색 킥보드를 타면서 앞서 간다. 롯데리아를 안간다는 내 말에 화가 난 것이다. 로아와 나는 두 사람만의 특별한 약속이 있다. 내가 대구에 오면 꼭 로아를 데리고 롯데리아에 가기로 한 것이다.

나는 손녀의 실망하는 모습에 마음이 안 좋았다. 그래서 “에이~ 딸에게 한소리 듣더라도 로아를 데리고 롯데리아에 가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는 “로아야 ~롯데리아 가자 “했다. 롯데리아에 데리고 간다는 내 말에 시무룩했던 로아의 얼굴에 금방 화색이 돈다.

그런데 아뿔싸~ 로아와 함께 롯데리아를 향해서 걸어 가면서 생각해 보니 내게 돈이 하나도 없었다. 이번에 대구에 내려 올 때 돈을 쓸 수 있는 카드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다. 현금 역시 단 만원짜리 한 장이 없었으니 이걸 어쩐다?

지하철이야 우대용 교통카드가 있으니 됐고 KTX티켓은 핸드폰에 이미 끊어 저장해 두었다. 그렇지만 돈을 쓸 수 있는 카드를 하나 챙겨 왔어야 하는데 그냥 왔던 것이다. 나는 순간 머리 속이 복잡해 졌다.

자, 이걸 어쩐다. 어린 손녀딸의 기대를 꺽는 일은 있으면 안되는데… 아이스크림과 감자튀김을 사줄 몇 천원이 없어서 이렇게 내가 곤란해 지다니… 어떻게 하지… 신나는 로아와는 달리 나는 혼자 고민에 빠진다.

로아는 신이나서 킥보드에 두발을 다 올려놓고 나에게 끌어 주기를 바랬다. 로아가 탄 킥보드를 끌고 걸어가면서 나는 계속 궁리를 한다. 이거 어쩌지… 우리동네가 아니니 외상도 할 수 없고… 하다가 나는 “에이 모르겠다 일단 롯데리아에 가고나 보자. “

일단 현장에 가서 부딪혀 보자라는 배짱으로 로아와 함께 롯데리아에 들어섰다. 자리를 잡아서 로아를 앉혀 놓고 매장 계산대로 갔다. 키가 큰 젊은 알바청년이 맞이한다.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 우리 구면이지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내가 대구에 올 때마다 로아를 데리고 오는 롯데리아이다. 하지만 한 달여 전인가 왔던 손님을 그 청년이 어찌 기억할까마는 나는 일단 호감있게 그렇게 말을 꺼낸 것이다. 청년도 “아, 안녕하세요.” 하고 내 인사에 응답한다.

나는 주문을 하기 전에 계산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저어… 그런데 내가 카드를 안 가지고 왔거든요. 혹 폰뱅킹으로 계좌이체로 돈을 지불할 수는 없을까요?” 하고 먼저 방법을 제시했다.

청년은 “아… 안돼요. 우리 매장은 현금결제나 카드결제 두 가지 방법 외에는 안돼요.”한다. 나는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아유~ 손녀딸과의 약속이라 꼭 지켜야 하는데 어쩌지요? 큰일이네…”

다시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저… 그럼 우리가 이동네 사니까 먹고 가서 돈을 가지고 오면 안될까요? 말하자면 외상이지요.” 했다. 청년은 잠시 생각하더니 “저 그럼 제 카드로 결제하고 음식을 드릴테니까 제 계좌로 돈을 보내 주세요.” 한다.

나는 구세주라도 만난듯 반가웠다. “아유~ 그럼요. 그럼요. 그렇게만 해 준다면 정말 고맙지요. 곧 계좌이체 할 수 있어요.” 했다. 드디어 소프트 아이스크림 두 개와 감자튀김 두 봉지를 주문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로아가 목을 빼고 매장 카운터를 바라본다.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중얼 거리면서… 휴~ 이렇게 기대 만땅인 로아를 자칫하면 큰 실망시킬뻔 했구나 하고 생각하니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아울러 롯데리아 알바 청년이 너무너무 고마웠다. 조금 있으니 벨이 울린다. 먹음직한 감자튀김 두 봉지와 소프트 아이스크림 두개 그리고 계산된 영수증과 청년이 손으로 쓴 자기 이름과 계좌번호가 적힌 작은 쪽지 하나가 놓여 있다.

내가 주문한 것은 총 4,400원 어치였다. 그 돈을 지불 못해서 내 사랑하는 손녀 로아를 대실망시킬 뻔 했던 것이다. 그런데 친절한 청년 덕분에 이번에도 나의 대구 방문에서 로아와 잊지못할 ‘추억만들기’를 성공할 수 있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딸에게 전화을 걸었다. “너도 로이 데리고 올래? 아님 햄버거 사다 줄까? “ 딸도 햄버거를 좋아한다. 딸은 “엄마 돈도 없다면서… 어떻게 결제했어?” 한다. 나는 “응 외상 달았어 하하하…먹고 싶은 햄버거나 말해 사다 줄께”

딸은 매콤한 스파이시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한다 나는 햄버거 두 개와 감자튀김 큰 용량으로 한봉지를 주문했다. 그리고 이젠 당당하게 청년에게 말했다. “저 스파이시 햄버거 두 개와 감자 대자로 하나 주세요. 결제는 좀 전처럼 계좌이체 해 줄께요.”

청년은 씩~ 하고 웃으면서 “네~네~” 하고 대답한다. 이젠 청년과 나는 척~ 하면 착~ 하고 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번 대구에 내려온 미션 가운데 중요한 미션인 “로아와의 롯데리아 데이트”를 완수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로아의 흡족하고 밝은 표정에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진 오후였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시 147:5)”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편집국

시니어 타임즈 US는 미주 한인 최초 온라인 시니어 전문 매거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