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무엇이 더 더러운가

새벽에 어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기저귀를 갈아 드리기 위해서이다. 나는 어머니 침대 옆에 팔걸이 의자를 하나 놓아 두었다. 어머니가 일어나실때 의자를 붙들고 의지하여 일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어머니가 일어서서 의자 팔걸이를 붙잡고 서 있는 동안 젖은 기저귀를 빼고 몸을 잘 닦아 드린후 새것으로 교체한다. 그런데 어머니가 문득 나에게 한마디를 한다”앉지 말아야지? ”

그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저으기 놀란다. “아니, 어머니가 어제 새벽에 있었던 일을 기억 하신다는 거잖아”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병(치매) 를 앓고 있어 기억을 잘하지 못하는데 어제 새벽의 일을 기억 하시다니…

어제 새벽의 일이다. 늘 그래왔듯이 새벽에 어머니 방에 들어갔다. 구린내 냄새가 예사롭지 않다. 얼른 일어나시게 해서 보니 대변을 기저귀에 잔뜩 본 것이다.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에 잠자리에 들어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우기도 뭣해서 나혼자 처리 하리라고 생각을 했다.

얼른 대변이 잔뜩 묻은 기저귀를 빼내고 비닐봉지에 담는데 어머니가 그만 침대에 덜퍽 주저 앉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고~ 조금만 더 서 계시지… 아직 몸을 닦지도 않았는데 그냥 앉으시면 어떡해요.” 했다. 대변이 묻은 패드를 또 빨아야하니 말이다.

아무튼 어머니를 깨끗하게 다 닦아 드렸다. 그런다음 침대에 새 패드를 깔아 놓고 빨아야 할 대변묻은 빨랫감을 한가득 가지고 어머니 방을 나왔다. 그러나 내 마음엔 불만스러움이 그냥 있었다. 왜 어머니가 침대에 주저 앉아서 나에게 일거리를 또 이렇게 만들어 주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손으로 침대 패드의 대변묻은 부분을 다 빨아서 세탁기에 넣어야 하기에 빨래감을 가지고 화장실에 들어왔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한마디 하신다. “너 똥이 뭐가 더럽냐? 네 죄가 더 더럽지 “

뜻밖에 내 마음에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금새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아… 그렇구나 어머니의 똥이 더러운게 아니라 내 죄가 더 더럽지…나의 죄를 용서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까지도 불사하셨는데 나는 어머니의 대변 치우는게 힘들고더럽다고 투덜대고 있구나…

성령님의 깨우치심에 나는 유구무언으로 할말을 잃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대소변 뒷바라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살면서 지어온 죄에 비하면 말이다. 주님은 먹보다도 더 검은 나의 모든 죄를 흰눈보다 더 희게 용서해 주셨다.

나는 젊은 시절 예수님을 영접하고 날마다 큐티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로마서8장을 읽다가 큰 자유를 경험 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이 로마서 8장의 말씀을 레마(진리)로 받은후 나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동안 나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죄책감에서 완전히 벗어 났고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었다. 마음에 참된 평안을 누리는 기쁘고 복된 삶을 살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영생의 소망 가운데 살게 되었는데 치매환자인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무엇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그리고 이 일을 내가 할 수 있다고 주님이 인정 하셔서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인생 가운데 그 누구도 생노병사를 피해 갈 사람은 없다. 우리 어머니의 노후에 찾아온 저 치매란 병도 한 사람의 인생의 여정 가운데 닥쳐온 일일 뿐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는 치매걸린 어머니를 돌보아야 하고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에게 그 일을 맡겨 주셨다.

왜냐하면 내가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를 인정 하셨기 때문이다. 세 아이를 내 손으로 직접 키워 내었고 선교사로서 선교지의 사람들을 섬겨 보았고 어릴때부터 동정심과 인정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던 내가 아니었던가

오래전 출가하기 전의 일이다. 친정 할아버지가 파리약을 소주인줄 알고 들이 마셔서 위기에 빠졌을때 나는 할아버지를 업고 뛰었다. 병원을 가려면 택시를 잡기 위해서는 우리 동네에서 십여분 걸리는 큰길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18세로 40여킬로 그램의 작은 몸집의 내가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오신 다부진 몸매의 남자인 할아버지를 업고 뛸 수 있는 초능력에 가까운 힘은 할아버지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에 의해서 주어진 힘이었다. 그렇게 해서 할아버지는 병원에 가서 위세척을 하고 살아 나셨다.

그뿐인가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교사를 하다가 사표를 내고 실직을 한 후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모두 9식구나 되었다. 세탁기도 고무장갑도 없던 시절이었다. 겨울만 되면 골머리를 앓고 드러누워 버리는 할머니는 식구들의 빨래를 어린 나에게 하게 했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이니 머리에 빨래함지를 얹어 이고서 30분을 걸어서 냇가에서 빨래를 빨아오곤 했다. 소시적(어릴때)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어른들의 말이 있듯이 나는 어려서는 정말 충실하게 고생이란 고생은 다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그런 고생은 인생의 약은 될지언정 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길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체질로 어려서부터 훈련 되어 있었기에 선교사로 갈 수 있었고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나는 결혼하기전 나의 결혼을 위해 열심히 기도 했었는데 그 기도제목중에 하나가 “맏며느리가 되어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게 해 주세요” 가 있었다. 대부분 아가씨들이 둘째아들이나 셋째 아들에게 결혼하여 부모 안모시고 편하게 살고자 하던 때였으니 나는 정말 독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것 같다.

그리고 그 기도대로 된 것이다. 물론 당시 내가 그런 기도를 드렸을때는 부모님이 늙고 병들어 수발까지 하며 산다는 구체적인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부모님께 인정받고 사랑을 받으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을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도 응답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어머니가 가장 의지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은 며느리인 나이니까 말이다. 내가 없이는 어머니의 일거수 일투족의 모든 일들이 마비된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나에게 어머니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 주신다.

우리 어머니의 친정 엄마의 성이 나와 같은 나씨이다. 어머니는 북한에 두고 온 친정엄마를 늘 그리워 했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의 친정어머니와 같은 성을 가진 며느리를 얻으신 것이다. 그리고 그 며느리가 어머니의 노후를 돌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 어머니를 이 땅에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기전에 70년전 생이별을 한 북한의 가족들 특히 우리 어머니의 친정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나를 통해 채워 주고 싶으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느날 하게 되었다.

내가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아 드릴때 어머니의 몸을 닦아 드릴때 어머니는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는 모양이다. 어머니는 종종 나에게 “우리 엄마네 우리 엄마야” 라고 하시니 말이다. 우리 어머니의 친정엄마의 역활을 나는 지금 맡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때 마다 내 마음은 어머니에 대한 애정으로 짠~한 마음이 들곤 한다. 잠옷을 갈아 입혀 드리고 침대에 뉘운 어머니에게 이불을 다독여 덮어 주고 얼굴을 매만져 드리면서 “어머니 사랑해요. 잘 주무세요.” 인사를 하면 어머니는 만족한 웃음을 얼굴 가득 띠운채 눈을 감으신다. 나는 어머니의 방문을 조용히 닫는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마 19:19)”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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