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부재-메이요우이거차이(没有一个菜)

꼬박 한주간만에 집에 돌아왔다. 지난 토요일 딸의 출산이 앞당겨지면서 다시 대구로 내려 갔다. 그 전주에 만삭인 딸을 돕기 위해서 대구에 내려가서 한주간 딸을 돌보아 주고 올라왔다가 이튿날 다시 내려간 것이다.

감사하게도 딸은 이번이 세번째 출산인데도 모든게 순적했다. 산모인딸도 외손자인 아기도 모두 건강했다. 마지막 출산이 될 수도 있어서 몸조리에 신경을 써야해서 딸은 아직 어린 위의 두아이들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예 독한 마음을 먹고 조리원에 두 주간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 없이 지내야 하는 두 손주 로아와 로이를 돌보아 주러 내려간 것이다. 꼬박 한 주간이 지난 후에 사위가 직장에 출산휴가를 내고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눈에 밟히는 어린 두아이 때문에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내집이 있는 김포로 돌아왔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딸이 조리원에서 조리를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때까지 한주간을 더 손주들을 돌보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집엔 내집대로 돌보아야 할 치매 앓는 시어머니가 계시고 해야할 일도 있으니…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 오분 거리에 있는 풍무역으로 남편이 마중을 나왔다. 남편이 내가 가지고 온 캐리어를 받아서 끌었다. 그런데 아파트 정문까지 왔을때 남편의 발걸음이 멈추어 서더니 아파트 정문 앞에 있는 편의점인 CU에서 무얼좀 사 가자고 한다.

콩나물과 두부를 사가지고 가자는 남편에게 내가 “집에 반찬 없어요? 딸애가 반찬 주문해서 보내 주었다는데…”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메이요우이거차이(没有一个菜: 반찬이 하나도 없어요)”한다. 물론 내 남편은 중국인이 아니다. 중국어가 입에 붙어서 나온 말일뿐이다.

그리곤 이어서 “당신이 어제 온다고 하기에 아껴 먹고 있던 반찬을 다 먹어 버렸지”한다. 그래서 편의점에 들러서 두부를 사가지고 왔다. 집에 들어서서 옷을 갈아 입기가 무섭게 나는 요리를 시작했다. 밥은 남편이 안쳐놓아서 전기압력밥솥이 밥을 하고 있었다.

얼른 호박 감자 양파 두부를 넣고 된장찌개를 한뚝배기 끓였다. 그 다음엔 내가 해 놓고간 반찬을 아껴 먹어가며 버티어 준 남편에게 상이 될만한 반찬을 만들었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인 고추장호박찌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큰 감자 두개를 깎아서 채썰어 물에 담가서 전분을 뺀 후에 양파를 채썰어 함께 넣고 기름에 마늘을 볶다가 함께 넣어서 볶고 삼삼하게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통깨와 참기름을 넣어 마무리 하여 감자채를 만들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달랑 열무김치통만 있다. 배추김치도 깍뚜기도 오이소박이도 다 먹고 좀 많이 남았던 열무김치만 있었다. 아무튼 몇가지 반찬을 준비했으니 얼른 밥상을 차렸다. 남편에게 들라고 하면서 어머니방에 가서 어머니를 먼저 모시고 나오라고 했다.

남편은 “아마 안드실거야 오후4시에 밥을 드렸거든” 한다. 나는 “점심을 오후4시에 드려요?” 했다. 남편은 “응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어 아침을 드리고 계속 주무셔서 점심을 늦게 드리게 된거야 그러니 그냥 주무시게 해. 지금 배 안 고파서 안 드실거야” 한다.

나는 한끼라도 거르면 안된다고 주무시는 어머니를 깨워서 모시고 나와서 새로한 밥에 된장찌개와 만든 반찬들을 차려서 식사를 하시게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늦게 식사해서 안드실것이라는 남편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어머니는 내가 차려 드린 밥과 된장찌개 감자채 볶은것과 열무김치 호박찌개 어느것 하나 남기지 않고 싹 다 드신 것이다. 빈 밥그릇과 빈 반찬그릇들을 보면서 내가 “어머니 맛있으세요?” 했더니 어머니는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맛있게 하나도 안 남기고 싹 다 저녁밥을 드시는 어머니를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허허허…하고 웃더니 “역시 어머니는 며느리가 해주는 밥이 맛있으신 거구나” 한다. 그런데 어머니만 밥과 찬을 몽땅 다 드신것이 아니다.

남편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고추장호박찌개에 밥을 비벼서 게눈 감추듯이 밥한그릇을 다 비운다. 그리고도 입맛이 당기는지 상당한 분량의 감자와양파를 채썰어 볶아서 삼삼하게 간을 한 감자채는 후식처럼 다 먹는다.

마침 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아빠와 할머니가 내가 만든 반찬들을 해서 막 지금 저녁을 맛있게 다 드셨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내가 올때 사위가 사준 “치즈케이크에 아메리카노 곁들여서 후식으로 아빠랑 드세요”한다.

다른때 같았으면 밥 먹으면 되지 살찌게 후식은 뭐하러 먹느냐며 주지 않았을 나였다. 하지만 오늘은 남편에게 보다 너그러울 필요가 있었다. 한주간을 꼬박 아내의부재를 견디어내며 어머니를 간병하고 돌본 남편에게 상을 주어 격려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얼른 아메리카노 커피와 치즈케이크을 한조각 잘라서 남편에게 식사와 후식까지 풀코스로 대접을 했다. 남편은 흐뭇하게 후식까지 다 들고 나서 만족한 모습이다. 나는 우리집 텅빈 냉장고를 보면서 아내의 부재를 느꼈을 남편을 생각했다.

내가 만들어 놓고 간 반찬은 아껴서 어머니 만 드리고 자신은 대충 김치하고 밥을 먹었다더니 정말 여러 종류의 김치조차 동이났다. 남편은 사실 대식가이다. 이름을 남편의 부모님이 그렇게 지은탓이리라

남편의 이름인 김대식(金大植)은 금처럼 귀한 것을 크게 심을 사람이란 뜻으로 해석해야 하겠지만 대식(大食)가(家)로 오늘은 변해 있는듯 하다. 아내의 좀 긴 부재탓에 몸도 마음도 많이 고팠나보다. 저녁 식탁을 저렇게 싹쓸이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잠 19:14)”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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