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추어 선 듯이 사방이 쥐죽은듯 조용하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 객실에 비치된 편한 의자에 혼자 앉아 있다. 눈을 들어 방한면 전면이 유리창인 너머로 보이는 고즈넉하게 흐르는강(금호강)을 바라 본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참 평화롭다.
방음이 잘 되어 있는 호텔이어서인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주변이 참 고요하다.나만의 이런 조용한 시간을 가져 보았던 것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바쁜 일상을 살다보면 충전을 위한 고요가 매우 절실하게 필요할 때가 있다.
나는 먼저 천천히 일어나서 호텔방에 비치되어 있는 캡슐 커피 한 잔을 내렸다. 향기로운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며 조금씩 마셨다. 조금 더 쉬다가 늦은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갈 생각이다. 10시에 문을 닫는다니까 30분전쯤 가면 되겠지
대구만촌동에 있는 인터불고호텔은 몇 년전에 내 생일날 자녀들이 이 호텔에서 부페를 대접해 주어서 한번 와 봤던 곳이다. 음식이 맛있고 가성비가 좋아서 서울에 사는 사람도 일부러 부페를 먹으러 내려 온다는 곳이다.
이번에 내가 속해 있는 함해노회의 가을노회가 이 인터불고 호텔 컨벤션홀에서 열렸다. 노회를 마치고 자녀들이 대구에 살고 있으니 딸네집으로 곧장 갈 수도 있었지만 혼자 조용한 시간을 갖고 좀 쉬고 싶었다. 단 하루 만이라도…
노회가 끝난 어제 저녁은 직전노회장 전노회장 전전 노회장 부부들과 함께 ‘능이오리백숙’을 먹었다. 그날 새로운 노회장이 취임하고 전노회장인 S목사님의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도 하고 격려도 하는 시간을 갖은 것이다.
내 앞에 앉은 사모님이 열심이 능이오리백숙을 덜어서 내 그룻에 담아 준다. 오리 한마리를 세사람씩 먹었는데 나는 두분의 사모님과 함께 먹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오리다리는 두 개를 내가 다 먹었다.
사모님이 나에게 주어서 생각없이 그냥 먹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랬다는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나는 ‘능이오리백숙’ 이라는 음식을 처음 먹어 보았다. 능이버섯을 넣고 끓인 오리백숙은 국물이 시원하고 무슨 보약 같았다. 한눈에도 보양식 이라는것을 알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은 ‘산들내음’이라는 식당은 경산 근처의 조금 높은 언덕바지에 있었다. 때마침 둥근 달이 둥실 떠올랐다. 그녀(달)는 밤의 여왕처럼 교교한 빛의 아름다움을 잔뜩 뿜어내고 있었다.
이런 기막힌 아름다운 밤의 정경을 놓칠 수는 없었다. 나는 네명의 목사님 커플의 사진을 몇컷트씩 찍어 주었다. 기회란 잡지 않으면 지나가는 법, 도도히 흐르는 달빛아래 부부가 다정하게 서서 찍어 논 사진도 충분히 ‘추억만들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부부처럼 일생의 희노애락을 함께 보낸 절친하고 소중한 관계가 또 어디 있을까. 그러면서도 추억을 남길만한 사진이라든가 하는 기념들을 잘 남기지 못하는 것이 가장 가까운 가족이기도 하다.
사진찍기 좋아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그재능으로 그분들에게 부부만의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추억만들기,를 해준 것 같아서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아직은 아마추어에 불과 하지만 말이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면서 우리 일행은 역시 언덕 높이 있는 커피숍엘 갔다. 1.2층을 다 사용하는 꽤 널찍한 커피숍이다. 나는 양이 적은 아포카토를 선택했다.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넣어 먹는 커피인데 내가 가끔 즐기는 커피중의 하나이다.
늘 그렇지만 노회가 열린다든지 총회가 열린다든지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나타나는 상업인들이 있다. 바로 교회관련 성경책자나 마이크 같은 물건들 또는 목회자들이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다.
이번에도 노회가 열리는 호텔인터불고 컨벤션홀 앞에는 몇몇 장사하는 분들이 나와 있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돋보기도 팔고 있다. 나이든 목회자들에게 필요할 거라 생각하고 가지고 왔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관심이 간 것은 신발이다.
바로 ‘울트라건강신발’이다. 최근 걸을때 발목과 무릎이 아플때가 종종 있어서 신발을 편하게 신어야겠다는 생각을 나는 하고 있었다. 건강신발에 대해선 수년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적지 않은 고가여서 직접 사 신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회의 장로님인 ‘울트라건강신발’ 사장님이 직접 나와서 20만원 상당의 신발을 목회자들에게 12만원에 팔고 있었다.
역시 내가 선뜻 살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으나 평소 관심이 있던 터라 그중 보라빛이 나는 구두를 한번 신어 보았다.
정말 편했다. 일반 구두를 신고 갔었는데 울트라 신발로 바꾸어 신으니 날아갈것만 같았다. 그만큼 발이 편하고 푹신해서 아무리 걸어도 피로감이 느껴질것 같지 않았다. 진작 하나 사 신고 다닐걸… 하긴 필요하다고 다 산적이나 있던가
나는 선뜻 산다고도 못하고 신발을 신은채 멈칫 거리고 있는데 나와 동갑나기 목사님 한분이 지나가다가 들려서 나를 보더니 카드를 꺼내 결제를 해 준다. 나는 “아유 목사님 아니예요” 했지만 그 목사님은 “하나님의 뜻이예요.” 하고 결제를 해 주고는 총총히 가버린다.
나는 평소 사고 싶었지만 못사고 있던 ‘울트라건강신발’ 을 뜻밖의 장소에서 선물을 받고 감격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함께 산책할 때 마다 걷다가 발목이 아파 걷지 못하고 쉬곤 하던 남편 K선교사가 생각이 났다. 동시에 얼마전에 남편을 잃은 안사돈 선교사님에게도 사 주고 싶었다.
나는 흥정을 시작했다. “저… 혹시 신발 두켤레 사면 얼마에 주실거예요?” 장로님 사장님은 두 켤레에 20만원에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내게는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또 “저… 장로님 코로나로 어려움 당해 남편을 잃은 여선교사님이 계신데 편한 신발을 하나 사 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저도 여유가 없으니 장로님이 하나 선물 하시면 어떨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예요.” 했다.
사업가에게 먹힐만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내 속마음을 전달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뜻밖에도 장로님은 즉석에서 “그러지요 뭐 선교사님에게 하나 선물하지요. ” 하는게 아닌가?
나는 예상 못한 신발사장님의 반응에 놀랐다. 하지만 얼른 안사돈 선교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발 사이즈를 물어보면서 ㅣ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울트라건강신발’ 사장님이신 장로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시라고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편의 신발을 샀다. 장로님은 10만원만 보내라고 한다. 발건강을 위해 정말 중요한 건강신발을 선물 받아서 기쁜데, 사돈 선교사님 신발과 남편의 신발까지 살 수 있었으니 마음 가득 흐믓함이 밀려왔다. 이 은혜로운 사건은 노회를 하는 막간에 일어난 일이다.
저녁 식사후 호텔로 돌아와서 로비에서 목사님과 사모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분들은 일정이 있어서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한다고 하면서 나에게 잘 쉬었다가 가시라고 한다.
그중의 한목사님이 주머니에 뭔가를 찔러 넣어준다. 내일 아침 식사를 하고 가라면서…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돌아왔다. 호텔방의 푹신하고 깨끗한 시트가 깔린 침대에서 나는 푹 잠을 잤다.
침구가 쾌적하고 좋아서인지 잠이 잘왔다.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다 보니 아침 먹으러 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나는 부지런히 나갈 준비를 하고 레스토랑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조식 마감시간 15분 전이었지만 나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호텔조식을 맛있게 먹으며 나를 위로해 주기로 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 말이다. 수프와 야채, 닭고기 그리고 쌀국수를 주문해서 먹었다. 오렌즈 쥬스와 디저트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돌아오는데 마침 인터불고호텔 초대 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주로 원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다. 작품 감상을 하면서 1분15초 짜리 동영상을 찍었다. 이렇게 해 두면 나중에라도 다시 감상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호텔방으로 돌아와서 다시 누워 쉬는데 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딸은 엄마가 피곤하면 체크아웃 시간을 늦추고 더 쉬고 오라고 알려 준다 프론트에 전화를 해서 체크아웃 시간을 언제까지 연장할 수 있나 물어보니 오후 1시까지 가능하단다.
체크아웃시간인 오후 1시까지 푹 쉬고는 호텔방을 나섰다. 택시를 기다리며 정말 이번 노회는 그동안 좀 지쳐 있던 나에겐 기막힌 ‘신의한 수’ 였다는 생각을 했다. ‘품격있는 완벽한 쉼이 있는 곳’이라는 호텔 광고 문구는 사실이었다.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왕상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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