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죽은자들의 아파트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그것은 이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지구촌에 사는 그누구 한사람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다만 누가 먼저 죽느냐 하는 순서가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 순서 역시 우리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누구든지 자신의 5분 앞에 일어날일도 우리는 모르는 채로 살아 간다. 만약에 사람이 태어난 순서 대로 꼭 그대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면 매우 공정하고 형평성이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태어나는 순서는 분명히 있지만 이 땅을 떠나는 순서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엔 가슴 아픈 일들이 많다. 특히 아직 어린 연령인 사람이 일찍 이 세상을 등지고 나면 남은 가족들 가슴에 큰 아픔을 남긴다.

조부모나 부모님이 사실만큼 살고 돌아가신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그리 슬퍼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만큼 들은 늙은 조부모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호상(好喪-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이라고 해서 대단히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긴다.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가장 가까운 가족의 죽음 앞에서는 애도한다. 사랑으로 결집된 육신의 정(情)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친정 아버지가 79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을때 내평생에 쏟은 눈물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쏟아내며 울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중병으로 다시 회복될 희망이 없다 하더라도 심지어 아무것도 못하는 식물인간 상태로 병들어 누워 있더라도 사랑하는 가족의 옆에 살아만 있어 주기를 바라는사람도 많이 보았다.

얼마전 유튜브에서 70대 후반의 할아버지가 가족인 두 병자를 돌보는 모습을 보고 가슴 아프게 느껴졌던 적이 있다. 그 할아버지는 아내인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에 있는데 그는 날마다 찾아가서 아내를 본다.

자신에게 욕을 하고 알아보지도 못하는 아내지만 평생 함께해 온 부부의 정 때문에 아내인 할머니가 있는 요양원을 거의 날마다 찾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주 가끔 할머니가 제정신이 돌아올 때가 있어서 그 기대 때문에 가는 것이다.

하지만 집에는 할아버지의 막내 아들이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서 지낸지가 18년째 누워만 있다. 늠름하고 씩씩했던 막내아들이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겨우 생명만을 건졌다.

머리를 다쳐서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한채 오직 누워서 생존만 하고 있다. 그런데 70대 후반의 할아버지가 그 막내아들을 돌보고 병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을 함께 돌보던 할머니가 치매가 심해져 요양원으로 간후 할아버지 자신이 혼자서 돌보고 있다.

그래도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이다. 비록 병들었으나 살아 있으므로 다른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그 병인이 또는 환자가 그래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당위성과 의미를 주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산 사람에게 더 이상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는 죽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봉안당(奉安堂)이다. 봉안당은 납골당이라고도 한다. 곧 시신을 화장한 후 유골을 모셔두는 곳이다.

나는 며칠전에 용인공원 안에 있는 아너스톤(HONORSTONE)이라는 봉안당을 다녀 왔다. 김포에서 70여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곳인데 길이 막히는 곳이 있어서 거의 두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서 갔다.

봉안당이 공원 안에 있었으므로 경관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전에 가졌던 봉안당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우선 시신을 화장해서 보관하고 있는 납골당이라는 무거운 이미지가 아니었다.

봉안당 입구에서 부터 푸른 잔디밭과 벤취들은 가족공원 같은 분위기였다. 봉안당 본건물을 들어서기 전에 따로 현대적으로 꾸민 아담한 카페도 하나 자리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커피를 마시고 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상주들도 여럿이 카페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카페를 지나서 봉안당 안으로 들어서니 마치 갤러리(gallery)같기도 하고 호텔로비 같은 착각이 들었다.

봉안당은 높은 지대위에 지어져서 로비에서는 공원의 풍광을 내려다 보면서 편안한 소파에서 쉴 수도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유골함을 보관한 곳으로 가 보았다. 봉안당은 마치 아파트처럼 층층 칸칸으로 되어 있다.

유골함 앞에 쓰여 있는 고인의 태어난날과 사망한 날자들을 보면서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것은 유난히 50년대생과 60년대생의 유골함이 많았기 때문이다. 종종 70년대생과 90년대생의 유골함이 보이기도 했다.

오히려 현재 80대일 40년대생과 90대일 30년대생의 유골함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곳에 와보니 100세 장수시대란 말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유골함 앞에 놓여있는 글귀와 사진들을 보며 가족을 떠나보낸 남은 가족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어느 유골함 앞에는 “아빠 사랑해요” 라고 쓰여 있고 어느 유골함앞엔 “엄마 이젠 아프지 마세요 꽃길만 걸으세요”라고 쓰여 있다. 그 외에도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등 고인을 그리워 하는 글귀들이 눈에 띄었다.

봉안당을 둘러 보면서 내가 느낀것은 이젠 봉안당은 단순히 유골함을 보관해 두는 곳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가족들이 찾아와서 좀 더 긴 시간을 봉안당에 머물다가 갈 수 있도록 공원처럼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유골함이 보존 되어 있는 방들도 커다란 창문을 내어 바깥 풍광이 잘 보이도록 되어 있고 편안해 보이는 의자와 탁자도 놓아서 그곳에 앉아 고인을 추억하며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자신이 죽은 후 유골함을 어디에 놓아 달라고 죽은 자는 말할 수 없겠지만 살아 있는 가족들이 봉안당에 찾아갔을때 쾌적함을 느끼며 어린 아이들과 함께 가도 쉬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가족과 후손들이 종종 찾아 왔을때 형식적으로 얼른 들렸다 가는 것이 아니라 봉안당에 와서 밥도 먹고(식사도 부페식인데 잘 나온다고 직원에게 들음) 커피도 마시며 잔디공원에서 아이들도 놀게 할 수 있도록 고안해서 지은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지를 미리 마련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이 막상 갑자기 상을 당했을때 가장 당황하게 되는 것이 어디를 장지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한다. 미리 준비 되어 있으면 가족들이 순서에 따라 장례를 치르고 유골함을 옮겨 보관만 해 두면 될 일이다.

나혼자 봉안당을 다녀온 후 남편 K선교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우리집도 갑자기 일을 당했을때 미리 장지 준비가 있어야 하는 상황은 충분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봉안당에서 보았던 가장 많은 유골함은 60대와 50대여서 인간의 수명(壽命)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살만큼 살고 자연사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사고사를 당하고 어떤 사람은 병사를 한다.

사실 90까지 사는 사람은 같은 연령대에서 5%이내이고 100세까지 사는 사람은 1-2%에 불과하다. 그 나이까지 사는 사람은 친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2020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1세라고 하니 평균적으로 90세 100세에 도달하기 전에 죽는다.

죽은자들의 시신이 재가 되어 모여 있는곳 봉안당(奉安堂), 그곳엔 온갖 삶의 애환을 열심히 살아내고 육체의 종말을 맞은 망자들이 있는 곳이다. 영혼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 가고 마지막때에 부활 할 육체들이 층층으로 지어진 아파트 같은 작은 집(칸)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나의 남편이 불쑥 말한다. “나는 죽으면 유골함을 집안 어딘가에 두고 싶어. (우리집 거실에 있는 아레카 야자를 가리키며 )아님 저 화분의 흙속에 내유골을 묻어 두던지…”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가족의 곁을 떠나기 싫은 남편의 내심을 나는 들여다 보았다.

어찌됐든 살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다가올 미래의 집은 봉안당(납골당)이다. 물론 아직도 고인의 10%는 화장이 아닌 매장이나 수목장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 화장을 하는 장례 문화에서 고인들은 점점 고급스러워져 가는 봉안당의 유골함이 들어가는 작은 칸 안에 언제인가 놓여질 것이다.

사람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 진리인것처럼 모든 사람은 다시 부활한다는 것 또한 진리이다. 예수 잘믿고 살다가 죽어 영생(천국)의 부활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예수 믿지 않고 살다가 죽어 영벌(지옥)의 부활에 들어가든지 선택은 당신의 자유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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