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다가오니 반찬거리며 살것들이 있어서 잠시 마트에 다녀왔다. 남편은 교회에 있고 집에는 어머니와 루비(강아지)만 두고 시장을 보러 다녀온 것이다. 현관문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 귀가 밝은 루비가 쫓아 나와서 멍멍 짖어댄다.
현관문을 열고 시장 봐온 것을 현관에 그대로 둔채로 집안으로 들어섰다. 어머니가 얌전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현관에 있는 시장봐온 물건들을 가지러 가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 이게 무슨 냄새야? 아무래도 어머니가 수상했다. 소파로 가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일어서 보시라고 했다. 구린 냄새가 났다. 변을 보신 것이다. 그런데 단순하게 기저귀만 갈아 드릴 상황이 아닌것 같았다.
어머니 손을 잡고 욕실로 들어갔다. 바지를 벗기니 똥덩이가 두덩이 툭 떨어진다. 아이쿠 씻겨 드려야지 이거 안되겠구나. 내 예상대로 혼자서 변을 보고 뒷처리를 못해서 다리며 사방 변이 묻어 있다.
시장을 봐온 것중에는 냉장고에 신속히 넣어야 할 고기며 찬거리가 있었지만 지금 그게 급한게 아니었다. 나는 열일을 제쳐 놓고서 어머니가 저질러 놓은 대변 뒷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을 대야에 받으면서 어머니의 옷을 벗겨 드리고 샤워기로 변이 묻은 몸의 부분부터 씻어내고 나서야 목욕의자에 앉혀 드렸다. 머리를 감기고 온몸을 비누칠해서 닦아 드렸다. 내몸에서도 땀이 풀풀 난다.
어머니를 씻겨서 세탁해 놓은 새옷을 입혀서 침대에 눕혀 드리고 한보따리 내 놓은 어머니의 빨래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똥이 묻은 옷들은 손으로 애벌빨래를 해서 세탁기에 넣어야 한다.
어머니곁에 내가 잠깐만 없어도 이 난리가 나는 것이다. 시장봐온 찬거리들을 주섬 주섬 냉장고에 넣으면서 방금 어머니 치닥거리에 힘들었던 상황을 떠올렸지만 그래도 나는 웃었다. “그래도 감사해야지”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여기까지 읽으면서 독자들은 의아해 하실 것이다. 아니 집에 들어서자 마자 벌어진 그 상황에 웃음이 나오다니 울어도 시원치 않을텐데 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 우리집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들어 보면 이해가 되실 것이다.
하루 전 날의 일이다. 낮에 주간보호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갑자기 맥없이 앉아서 찔러봐도 꼬집어봐도 아무 반응을 안보인다는 것이다. 센터에 상주하는 간호사가 혈압을 재 보았더니 60으로 떨어져 있으니 응급실로 모시고 가겠다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는 자동차를 운전해서 김포에서는 제일 큰 종합병원인 우리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에 들어서니 코로나로 인해 보호자중 한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응급실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이게 또 무슨 일인가 이거 일당하는거나 아닐까 염려를 하면서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전화를 받으면서 걱정했던것 보다는 어머니 상태는 괜찮았다.
우선 의식이 있었고 혈압도 정상으로 회복되었다고 간호사가 알려 주었다. 그렇지만 일단 응급실에 실려 들어 왔으니 나에게 환자복을 갈아 입혀 드리라고 한다. 병원복으로 갈아 입고 어머니는 CT촬영을 받았다.
머리와 가슴을 CT촬영을 하고 피를 뽑아서 혈액검사를 했다. 응급실앞 대기실에 앉아서 남편도 나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3시간쯤 지나서 의사가 검사결과가 나왔다고 들어오라고 해서 응급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했다. 119를 타고 들것에 실려 응급실에 들어간 어머니는 나올때는 자기발로 걸어 나오셨다. 정신이 드셨는지 남편이 어머니 손을 잡고 걸어 나가려고 하자, 어머니가 주변을 휘둘러 보시더니 짐을 챙기고 있는 나를 찾아서 내 손을 꼭 잡으신다. 같이 가자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꼭 무슨 일 나는줄 알았는데… 몇시간전만해도 우리 부부는 식겁(시껍)하며 놀란 가슴이었다. 응급실이기도 하고 CT를 두번이나 찍고 혈액검사를 해서 병원비가 꽤 많이 나오긴 했지만 어머니가 아무 이상 없으니 감사할뿐이다.
나는 다시금 가슴을 쓸어 내리며 사람이 일상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김포우리병원 주차장에 차댈때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대고 많은것을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준비했다. 멸치된장찌개에 배추전을 부치고 생고구마 깍뚜기와 단호박찜으로 저녁메뉴를 차렸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한나절동안 검사를 받고 응급실에 있다가 나온 사람같지 않게 저녁밥을 싹싹 맛있게 다 드셨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전화가 걸려온 시간부터 식겁(食怯: 뜻밖에 놀라 겁을 먹다) 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온가족이 둘러 앉아 아무일도 없었던듯 저녁을 먹고 있는 현실이 고맙기만 했다.
병원에 입원 하셨더라면 상황은 더 복잡해졌을 것이다. 아무 이상없이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온것만도 감사했다. 어머니가 옷에다 대변을 보고 사고를 쳐도 감사의 마음이 있으니 나는 웃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의 이름을 ‘감사의만찬’이라고 불러 주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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