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내가 아주 잘 아는 선교사님 두가정이 선교사직에서 은퇴를 했다. 지금은 선교사가 만으로 70세가 되어 은퇴를 하므로 국내에서 사역하는 목회자와 같은 나이로 은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90년대에 내가 선교지로 갈때만 해도 선교사의 정년은 65세였다. 열악한 선교지에서 70이 될때까지 사역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해서 선교사 본인들을 위해 총회와 선교부에서 그렇게 정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국내에서 사역하는 목회자의 정년은70세이지만 해외 선교사로 파송받아 나간 목회자및 선교사는 65세에 정년을 맞게 되었다. 그러다가 최근 몇년전부터 해외선교사도 건강만 괜찮다면 70세까지 연장해서 사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라도 한번 시작한 일이나 사역으로 일생을 보내고 정년으로 은퇴를 맞는 일은 참 귀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의 앞일은 정말 자신도 모를 때가 많다. 나는 한참 꿈많던 20대 청년이었을때 선교사로 가겠다고 헌신하였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하고서도 그 꿈을 쫓아서 살았다. 아이셋을 낳아 웬만큼 자랐을때 청주에 살던 우리 가족은 서울로 올라와서 신학을 공부하고 선교사로 훈련받은 후 C국으로 파송되었다.
남편과 나는 일생을 선교지에서 살겠다고 결심했기에 아예 장기선교사로 헌신하고 나갔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내 인생사전에는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았던 일이 발생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학생들을 전도한 것이 죄가 되어 비자제한을 당하고 고국으로 컴백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선교지로 나가게 될 것을 기대했다. 왜냐하면 내 사전엔 내가 선교사로 사는 것만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선교지로 돌아갈 때는 실력있는 사람이 되어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50대 초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신학대학원에 들어가서 고등학교 과정같이 빡빡한 수업을 따라가야 하는 M.div 과정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예 공부하는김에 선교학박사과정(D.miss)공부도 미국의 그레이스신학교에 입학해서 집중코스(intensive)로 시작하였다. 나는 3년과정의 신대원을 졸업하고도 장신대를 떠나지 못하고 선교관에 일년을 더 머물면서 선교학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그러나 석.박사 학위를 다 받았지만 선교지로 다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우리 부부는 선교사로서 17년의 사역을 마감하고 국내에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남편 K선교사는 모교인 충북대학에 내려가서 중국유학생 사역을 수년간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남편은 ‘지구촌한국어교육선교회’를 설립하여 중국유학생들의 논문지도를 해 주면서 평북노회의 전도목사가 되었다. 나는 목사 안수를 받고서 ‘지구촌선교문학선교회(GMLS)’를 설립하였다.
‘선교문학’을 통한 문서선교와 선교사멤버케어 사역을 하면서 함해노회에 소속하여 전도목사로 사역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김포로 집을 옮기고 근처 프라자건물에 30평의 작은 한칸을 분양해서 선교회 사무실겸 교회를 개척했다.
굴곡 많은 삶과 선교사역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을 했고 선교지에 뼈를 묻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선교사 정년까지는 있을 것이라는 내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의 인생지론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 우선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있으라고 한 그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이동이나 새로운 개척선교에도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그냥 수용하고 받아 들이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인생철학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지금 시어머님을 모시는 내 자세도 바로 그런것이다.
어머니의 자녀 4명 가운데 어차피 우리 부부가 모시게 되었다면 피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기 보다는 (많은 분들이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드리고 사역에 집중하라고 권했다) 내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라는 생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시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느듯 우리 부부도 은퇴가 멀지 않은 시점에 와 있다. 남편은 만 2년후면 은퇴하게 되고 나는 비교적 긴 시간이랄 수 있겠지만 그래보았자 5년이 남았을 뿐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끝까지 선교지에서 내사명을 다 못마친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를 향한 계획과 인도하심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지 않던 비자제한을 당해 고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일은 어머니를 살린 일이다.
내가 고국으로 돌아왔을때 80대 초반의 혼자 살고 있던 어머니는 영양부족으로 167센티의 키에 몸무게가 42킬로그램일만큼 해골처럼 말라 있었고 위가 줄어 들어 식사를 잘 하지 못하시는 상황이었다.
나는 공부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장신대 기숙사에 머물었기 때문에 매주말 어머니집으로 와서 한주간 먹을 반찬이며 요리를 만들어 드리면서 보살펴 드렸다. 그러다가 학교를 졸업하고는 아예 어머니집 근처에 월세를 얻어서 3년간 어머니의 식사를 공궤했다.
어머니의 치매가 점점 진행되면서 결국 우리 부부는 어머니의 작은 집으로 들어가 모셔야만 할 상황이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내가 모시면서 어머니의 건강은 획기적으로 좋아 지셨다. 몸무게가 10킬로그램 이상이 늘었고 어떤 음식이든지 잘 드실만큼 위장도 건강해지셨다.
하나님은 나에게 성경에 나오는 시어머니를 보살폈던 룻과 같은 마음을 주셨다. 석.박사학위를 받았으면 그에 걸맞는 일을 해야 할텐데 나에게 치매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어린아이처럼 된 어머니를 섬기고 돌보는 일을 맡기신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생각한다.
한영혼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은 우리 어머니의 일생에 복을 주셨다. 흥남부두에서 미군배를 타고 남한으로 와서 대한민국 국민이 되시고 어려운 결혼생활을 하시면서도 4남매와 손주들을 키워내신 장한여인이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하신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나 같은 사람 즉 한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선교사요 목사인 며느리를 어머니에게 붙여 주신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에 나는 순종으로 화답하며 살아가고 있다.
최근에 잘 아는 선교사님 두 가정이 은퇴식을 하는 것을 보면서 왠지 ‘은퇴’ 라는 두 글자가 현실감있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누구에게나 은퇴는 다가온다. 자신의 사역에서 일에서 물러날 때가 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직장이나 일에서 은퇴한다고 해서 인생을 은퇴하지는 않는다. 인생은 여전히 이어져 간다. 인생 은퇴는 천국에 가는 바로 그 날이다. 그전까지 우리는 자신의 능력 안에서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더욱이 요즘은 100세 시대가 되었다. 어디그뿐인가 120세 까지도 건강하기만 하다면 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백살이 넘어서도 지적활동을 하는 분들이 있다. 강연을 하고 자신의 평생의 지식적 노하우를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이다.
전 서울대 교수셨던 104세의 김형석 박사가 어떤 인터넷 매체에서 인터뷰를 할 때 인상 깊게 들었던 내용이 있다. 자신이 학교에서 은퇴를 하자 그때는 아들이나 사위를 만났을 때 아들이나 사위가 밥값을 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아들도 사위도 다 은퇴를 한 후에는 만났을 때 아들과 사위가 김형석 교수에게 밥값을 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들은 돈을 벌지 않지만 아버님(김형석 교수)은 현역보다 돈을 잘 버시지 않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건강한 김형석 교수님은 병원에 갈 일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의료보험료가 매달 200만원 가까이 나온 단다. 지적활동을 계속하는 김교수님은 강연료로 그만큼 수입이 들어 왔기 때문이다. 얼마나 유능하고 멋진 삶인가?
어머니를 간병만 하게 하기 위해서 나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신 것은 아닐 것이다. 나하고 40년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는 김형석 교수님에 비하면 나는 아직 어린아이지 않는가. 그래서 은퇴? 난 그런 것은 잊기로 한다. 영원한 현역으로 살고 싶기 때문에 하하하….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사 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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