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신통방통 커피 한 잔

지난 주엔 올망졸망 삼남매를 키우느라 바쁜 딸을 돕고자 대구 딸네 집엘 며칠 다녀왔다. 내가 집에 돌아오자 마자 남편이 내게 말을 걸었다. “이상도 하지? 당신 없는 동안에 어머니가 대변을 한번도 안보셨어” 한다.

나는 “그래요? 이상하네요. 지난 주엔 매일 새벽 보셨었는데…” 간병을 할때 제일 힘든 일은 환자의 대변처리를 할 때이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그 말을 듣고 걱정이 앞섰다. 지난 주엔 한 주 내내 새벽마다 어머니가 기저귀에 본 대변처리를 하느라 내가 땀을 뺐던 기억이 났다.

그런 어머니가 며칠동안 변을 안보셨다니 이상도 하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면 곧장 어머니 방으로 가서 기저귀 교체를 해 드린다. 그런데 지난 주엔 어머니는 거의 매일 새벽마다 변을 봐 놔서 새벽예배 시간도 놓치고 대변처리를 해 드리고 씻겨 드리고 패드를 빨아야 했다.

그랬던 어머니가 내가 없는 것을 알아보시기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아들에게 대변까지 치우라고 하기엔 미안하기라도 하셨던 것일까? 며칠동안 대변을 안 보셨다니 말이다. 낮에 나가시는 주간보호센터에서 변을 보셨다면 또 다행이지만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어머니를 간병하던 간병인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저녁 나절에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아 드리려고 했더니 기저귀에 변이 조금 묻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크~ 내가 와서 어머니가 이제 마음이 놓여서 대변을 보시려나보다.”

그래서 나는 얼른 어머니 손을 잡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어머니, 여기 양변기에 앉아서 변을 좀 보세요. 편안하게 앉아서 배에 힘을 좀 주어 보세요.” 했다. 어머니는 내가 시키는데로 배에 힘을 주었다.

한 십분좀 넘었을까 나는 어머니가 대변을 보게 해 드리려고 애를 썼다. 어머니도 배에 힘을 주고 끙끙 씨름을 하고 있지만 여간해서 변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분명히 변이 비치기 시작한것을 보면 대변을 보셔야 할 타이밍인데 말이다.

여전히 어머니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끙끙 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안쓰러운 마음이 되어 어머니의 배를 내 손으로 쓸어 드려 보았다. 어머니의 늙고 쭈글쭈글한 뱃가죽을 살살 쓸어 드렸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변이 안나와서 힘들어 하는 모습이다.

나는 따뜻한 물을 한컵 가져다가 어머니에게 드시게 하였다. 어머니는 변기에 앉은채 물한잔을 다 들이켰지만 여전히 변은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변을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여전히 변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문득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 ‘대장금’이 생각났다. 중종임금의 병을 치료하는 여자 주치의 대장금은 명의였다. 임금은 장폐색(intestinal obstruction: 장관이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막혀 장의 내용물이 통과하지 못하는 질병)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온갖 탕약을 다 지어 올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타고난 의학적 재능을 지닌 장금은 대변불통(大便不通)인 임금의 배를 절제하여 수술해서 막힌 장을 뚫어야만 임금이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죽어가는 임금을 살리고자 장금은 대신들에게 왕의 배를 열어서 수술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렇게만 하면 분명히 임금님을 살릴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 시대에 그런 일은 언감생심 입밖에 내어서도 안되는 말이었다.

당시 궁중에서는 임금의 몸 즉 옥체에 칼을 댄다는것은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아무리 탕약(한약)을 써도 임금 중종은 수술을 해야만 할 병이기에 결국 왕은 장이 막혀서 대변을 보지 못해서 죽고 만다.

한나라의 권세를 다 가지고 있는 임금이 몸속의 대변을 내보내지 못해 죽은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대변을 보지 못하는 어머니의 간병을 하다가 예전에 본 드라마까지 다 총동원해서 생각이 떠오르다니 우습다.

어머니는 여전히 양변기에 앉은채 응응… 끙끙… 온 힘을 배에다 주고 대변을 나오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에구 어머니가 얼마나 힘이드실까… 그나 저나 무슨 묘안이 없는 걸까? 나는 장금이도 아니지만 무슨 방법이 없을까?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나는 집안에 무슨 소화제 같은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뇨 작용을 도와 주는데는 커피가 즉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물을 끓이고 믹스커피 한잔을 탔다.

물을 좀 많이 넣어 따뜻하게 농도를 맞춘후 커피를 가지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직도 변기에 앉아서 대변을 보려고 씨름중인 어머니에게 커피잔을 가져갔다. “어머니, 이거 커피인데 천천히 한모금씩 마셔 보셔요. 대변을 쉽게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커피에 들어 있는 성분이 우리 신체의 항이뇨호르몬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소변을 자주 보게도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커피에 들어 있는 ‘클로로겐산’과 ‘가스트린’ 성분이 배변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신안산대학교 호텔조리과: 커피와 이뇨작용)

어머니는 내가 시키는 대로 커피잔을 받아서 홀짝 홀짝 한모금 두모금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컵에 커피를 조금 남겨서 나에게 컵을 내미신다. 나는 “아니, 남기지 말고 천천히 커피를 다 드셔야 해요” 그리고 커피잔을 기울여서 어머니가 끝까지 커피를 마시도록 해 드렸다.

나는 내가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웃음이 푹~ 하고 나왔다. 화장실에서 커피를 마시다니 그것도 양변기 위에 앉아서… 하하하…어머니도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양변기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을거다. 하지만 지금 뭐 그런거 따질때가 아니다.

어머니가 변을 못보고 괴로워 하는거에 비하면 양변기에 앉아서 커피 한 잔뿐 아니라 두 잔을 마신들 어떠랴 나는 커피를 담았던 머그잔을 가져다가 주방에 두고 들어 오면서 제발 어머니가 시원하게 변을 보셨으면… 하고 기원했다.

내가 다시 화장실로 돌아와서 “어머니, 어떠세요? 소식 있어요?” 했다. 어머니는 아무 대답을 안한다. 나는 어머니의 대답 보다는 직접 양변기 안을 들여다 보았다. 와~ 놀라웠다. 정말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굵은 똥줄이었다.

방금 어머니가 마신 커피잔 입구의 둥근 지름만큼이나 됨직한 굵은 변을 보신 것이다. 며칠이나 변을 못 보셨으니 양도 얼마나 많은지 검고 굵은 어머니의 대변을 보면서 더럽다는 생각에 앞서 어머니가 얼마나 시원했을까 생각하며 화장지로 잘 닦아내고 처리해 드렸다.

어머니에게 변비약을 늘 드리는데도 대변 한 번 보기가 이렇게나 힘들다니… 아무튼 나이가 들고 늙으면 몸의 모든 기능들이 정상이 아닐때가 많은 법이지만 말이다. 어머니가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치매)이 어머니의 인지능력을 저하 시켜 어린애나 다름없이 만들었듯이 말이다.

그나 저나 커피야~너 참 신통하다. 어찌 그리 이뇨와 배변 작용을 잘시켜 주니? 어머니가 그렇게 변기에 오래 앉아서 배를 비틀며 끙끙대어도 나오지 않던 숙변을 저처럼 쉽게 쑥 밀어내어 나오게 해 주다니 말이다.

“커피!! 너 정말 신통방통 하구나. 앞으로 내가 더욱 너를 사랑해 줄께 알았지? “ 늘상 마시던 커피가 오늘 따라 더욱 친근하게만 느껴진다.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를 배변불통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고, 나에게도 감사의 저녁을 선물해 주었으니까 말이다.

“네 진영 밖에 변소를 마련하고 그리로 나가되 네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볼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려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신 23:12-13)”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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