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장례식후 간 힐링여행 베트남


수년간 코로나로 모든 여행들이 멈추어 있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완화되자 내가 속한 시찰회에서 베트남 달랏과 나트랑으로 부부동반으로 해외수련회 계획이 잡히게 되었다. 남편은 어머니가 위급해서 어떻게 되실지 모르니 나혼자만 다녀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 열하루전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소천하셨다. 어머니상을 당한 우리에게 문상을 온 시찰장님은 남편도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시찰장 목사님은 큰일 치르고 쉬기도 할겸 남편 김목사님도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적극적으로 권해서 남편도 함께 가기로 했다.

모처럼의 해외 여행을 위해서 먼저 남편의 선그라스를 맞추러 갔다. 남편의 선그라스가 너무 구형이었던 것이다. 그 선글라스는 26년 전인 1997년에 선교지로 떠날때 맞추었던 안경알이 아주 작은 것이다.

너무 오래되어 구형인데다가 안경알이 작은 남편의 선글라스는 지금은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심히 촌스러웠다. 마침 안경점이 우리동네에 새로 생겼다. 꽤나 시설을 잘 갖춘 커다란 안경점이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치매환자인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여행을 떠나기가 어려웠다. 꼭 가야할 상황이 생겨도 각각 가든지 어머니를 모시고 가야 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부부동반이라니… 웬지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밤비행기로 출발해서 나트랑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달랏으로 출발하였다. 가다가 오래된 사찰 한곳을 들렀다. 관광객들을 위해서 무용수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잠시 보고 나와서 다시 대절버스에 올랐다.

달랏은 나트랑에서 버스로 4시간 거리에 있다. 베트남 안남산맥 남쪽 끝 해발고도 1,400∼1,500m의 람비엔 고원지대에 있다. 구릉지대여서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고 기후가 일년 내내 18∼23 ℃ 정도로 쾌적한 곳이다. 마치 중국의 곤명같다고나 할까.

이번 여행에서 만난 스토리맨이 있었다. 그는 현지 가이드를 맡은 가이드였는데 자신의 인생스토리를 장시간 버스를 타고 달랏으로 가는 내내 우리에게 풀어 놓았기 때문이다. 누구나의 인생에도 다 스토리가 있듯이 그의 인생길도 녹록지가 않았다.

가이드 청년의 입담이 얼마나 좋은지 많은 분들이 저런 청년이 거듭나서 변화되어 설교가나 강연가가 되어도 좋겠다는 말들을 하였다. 그만큼 이야기를 흥미있게 잘 풀어 나갔다. 오토바이 사고라는 크나큰 역경을 딛고나서 결혼도 하고 열심히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달랏은 한마디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베트남이라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마치 유럽의 한 도시에 온 것 같았다. 단층과 이 삼층의 아기자기한 창문의 유럽식 예쁜 건물들이 그걸 증명해 주었다.

꽃과 딸기 그리고 커피로 유명한 휴양도시 달랏은 베트남에서도 매우 부유한 곳이어서 외국인뿐만 아니라 자국인들도 끊임없이 관광을 오는 곳이다. 그런데 달랏의 그 부유함을 가져다준것은 비닐하우스농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걸 알려준 사람이 한국인이다.

바로 한국인 김진국 교수가 한국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이곳 달랏대학에 농업분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의 비닐하우스 농법을 전파한것이 실효를 거둔 것이다. 베트남의 기후가 연중 8개월 정도는 우기라서 화훼농사가 힘든데 이를 비닐하우스농법을 적용해 안정적이고 고소득원으로 정착을 시켰다는 것이다.

인류가 발전하고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처럼 자신의 달란트를 적극 나누어야 한다우리나라의 한 농업전문가에 의해서 놀랍게 부유함을 누리는 베트남의 달랏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점이다. 그리고 달랏에서 갔던 잊지 못할 관광지중 하나는 ‘크레이지하우스’이다.

‘크레이지하우스’는 곡선을 활용한 기괴한 모습으로 가우디의 작품들을 연상케 하며 놀이공원처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원래 이 건축물을 지은 목적은 어린이들 교육을 위한 시설로 지었으나 정부가 허락해주지 않아서 원래의 목적대로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크레이지하우스‘는 현재 낮에는 관광용으로 사용되고, 밤에는 12개 정도의 방이 모텔로 사람들에게 숙박을 제공하는 용도로 쓰이지만 원래 숙박시설 용도로 지어진것이 아니기 때문에 숙박시설로 그리 인기가 있는곳은 아니라고 한다.

남편은 교육자답게 ‘크레이지하우스’에 매우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면서 해외에서 유학을 하고 와서 이런 동화속에나 나옴직한 특별한 건물을 지어 어린이들에게 꿈과 상상력을 심어 주고자 했던 크레이지하우스를 건축한 사람에게 경의가 표해진다고 했다.

추억에 남는 또 하나는 밤에 팀을 만들어 야시장을 방문한 것이다. 두리안을 사먹으러 간 것이다. 두리안은 냄새 때문에 호텔안에서 먹는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팀별로 야시장에가서 두리안을 사서 껍질을 벗겨 달래서 일회용 장갑을 끼고 두리안을 먹었다.

문득 전에 선교지에서 살때 다른지역에서우리집에 왔던 선교사님이 생각이 난다. 그 선교사님은 병으로 인해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C국의 남쪽에 있는 북열대 지역이어서 열대과일을 손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선교사님은 우리집에 들어서자 마자 두리안없느냐고 물었다. 마침 냉동실에 두리향 한통을 사서 껍질을 벗기고 냉동해서 아이스크림처럼 먹으려고 둔것이 있었기에 두리안 한쪽을 가져다 주었다.

그 선교사님은 내가 가져다 준 두리안을 다 먹고는 성이 안찬듯이 두리안 더 없느냐고 하더니 결국 내가 두고 두고 먹으려고 사다 두었던 상당히 커다란 두리안 한통을 자기 혼자서 다 먹고 돌아 갔다.

그만큼 두리안을 좋아하는 사람은 먹고 또 먹어도 더먹힐만큼 맛있는 과일이다. 이과일은 호불호가 강해서 두리안의 역한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 과일이기도 하다. 아무튼 두리안은 더운 나라에서는 쉽게 맛볼 수 있는 과일이다.

이튿날 다시 나트랑으로 버스를 타고 와서 해물부페로 저녁을 먹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러 갔다. 부부동반으로 했던 베트남 여행에서 힐링을 경험 하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버스를 타는것은 많이 피곤하기도 하였다.

역시 여행은 잦은 이동보다는 한곳에 정착해서 그야말로 조용히 쉬는 것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짐정한 힐링이 되지 않을까 언젠가 여행에 관해서 지인에게 들었던말이 생각이 났다.

선진국에 사는 외국 사람들은 여행지를 한곳 정했으면 그곳에서 며칠이고 쉬면서 진정한 힐링을 하는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짧은시간 여행을 하면서도 이곳 저곳을 보러 다니느라고 진정한 휴식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감이 갔다.

그렇긴 하지만 함께 여행을 간 여러 목사님들의 섬김은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우리 부부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후 갔던 여행이어서 잠시 슬픔을 잊고 마음을 다스리기에는 좋았던 여행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천국에서 빙그레 웃으시며 우리를 바라보실것만 같다. “아들아 며늘아 이번 여행 참 잘 갔구나 너희 둘이 십년여 나를 돌보느라 참 수고 많았다. 내 잊지않고 있단다. 애들아 사랑한다” 천국에 휴대폰이 있었다면 어머니는 아마 우리에게이렇게 메세지를 보내 주셨을것만 같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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