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게된 동기
필자는 그동안 몇 년동안 생각해 왔던 미국 대륙 횡단을 얼마전에 마치고 돌아왔다. 단지 횡단을 한 것만이 아니라 동부에 가 다시 서부로 돌아왔으니 미국 대륙을 왕복한 셈이다. 처음에는 한번도 안한 대륙 횡단 자동차 여행이라 기대도 되고 흥분도 되었지만 막상 왕복을 해보니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기억에 남고 풍부한 경험이 되고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추억과 소중히 간직할 기억의 경험이 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로스앤젤레스에 돌아오니 무언가를 해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도저히 그대로 소셜 미디어에 올렸던 것보다 이렇게 좀 길게 여행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크나큰 모험아닌 모험으로서 새로운 삶의 원동력과 정말 그대로 기억으로만 돌릴 수 없어 이렇게 글로 남기고 싶은 것이다. 실로 이번 여행은 필자가 이렇게 젊지 않은 나이에 했던 어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고 가슴이 충만한 경험이었다.
처음 출발은 7월 21일 금요일에 출발하여 4일간의 여행끝에 7월 24일 워싱턴 디시에 도착하였고 거기서 6일간 여러 행사에 참석하고 남북전쟁 전투 유적지와 여러 워싱턴 디시의 유명한 곳을 둘러보고 다시 7월 30일 일요일에 워싱턴 디시를 출발하여 5일의 여행끝에 8월 3일 목요일에 도착하였다. 갈때는 40번을 타고 주로 남부를 관통하여 여행하였고 올때는 중서부를 가로지르는 70번을 타서 하루가 더 걸렸다. 남부와 중서부를 다 본 셈이다. 이전에는 비행기로 워싱턴 디시와 뉴욕에 몇 번 가보았지만 비행기로 가서 체류한 후 다시 비행기로 온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실로 피부에 와닿는 산 경험이었다.
미국에 살면서 그동안 오랫동안 미국 대륙 횡단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제대로 실행에 못 옮기다가 이번에 해보자는 마음으로 정말 대륙횡단에 나선 것이다. 그 기회는 7월 25일 워싱턴 디시에서 하는 KDVA (한국 방위 퇴역군인 협회)와 CSIS (국제 전략 연구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한미동맹 70주년 세미나 참석이었고 또 7월 27일 역시 워싱턴 디시 한국전 기념관에서 하는 한국전 정전 기념식 참석도 있었다. 이날 미국 의사당에서 열린 같은 기념식에도 참석하였다. 7월 26일에는 예정하지 않았던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열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위 평화협정안 반대 기자회견에도 참석하였다. 그리고 이 일정동안과 금요일, 토요일에 워싱턴 디시 근방 북부 버지니아에 있는 많은 미국 남북전쟁 전투 유적지도 돌아봤다. 정말 유익하고 다양한 경험이었다. 특히 미 의사당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의사당에 들어가 참여했다는 점에 매우 뜻깊었다.
갈 때에는 별로 세부 여행일정도 짜지 않고 솔직히 가면서 계획하자는 마음으로 출발하였다. 내 차는 금년 초에 중고로 구입한 2005년 형 캐딜락 CTS로 출발할 때 약 7만마일을 달리고 있었다. 가는데 약 2천6백 마일이 걸렸으니 한 5천 마일 이상을 달린 셈이다. 가기 전에 가다가 먹을 것을 절약하려고 마켓에서 여러 에너지 바하고 귤같은 과일도 준비하였다. 또 물도 사고 튜나 캔도 많이 샀다. 가면서 이 준비한 음식들을 다 먹었다. 갈때는 운전하다 차가 고장이 나거나 펑크가 나면 어찌하나 걱정이 있었지만 왕복여행 내내 차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차가 중고로 엔진 오일이 조금 세서 운전하는 동안 엔진 오일 몇 캔을 넣었을 뿐이다.
내가 사는 아케디아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라스베가스 행 15번을 타고 가다가 드디어 동부로 향하는 40번을 탔다. 40번으로 타니까 이제 정말 대륙 횡단을 하는구나 하는 흥분감이 들기시작했다. 곧 아리조나 주에 들어섰고 여기서부터 캘리포니아와는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리조나 선인장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휴계지에 내리니까 아리조나 특유의 기분이 들었고 인디언들이 그들이 만든 장식품과 보석들을 볼 수 있었다. 하이웨이 옆 휴계소도 어쩐지 캘리포니아와는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고 방울뱀 조심하라는 푯말도 있었다. 광활한 사막과 뭉게구름이 있는 하늘이 아리조나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운전하여 도착한 아리조나. 광활한 사막과 뭉게구름 하늘로 아리조나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아리조나를 횡단하면서 역시 캘리포니아와는 다른 문화를 느낄 수 있었고 아직도 인디언 문화가 이곳에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리조나 횡단은 몇 시간이 걸렸고 곳곳에 인디언 풍습이 많이 남아있었고 인디언 문화의 생존감이 확연히 다가왔다. 캘리포니아에도 옛 인디언 문화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만 아리조나는 역시 인디언 전통이 더 많이 있어서 곳곳에서 인디언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여행으로 인디언 문화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이 생기고 또 여행에 돌아와서 인디언 문화와 이들의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아리조나에는 나바호 족들이 주로 많이 있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더 알아보니 북미 대륙에는 나바호 외에 수많은 인디언 족들이 있어 이들 문화도 아시아 대륙의 여러 인종, 문화들처럼 다양하며 서로 이질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아리조나, 오클라호마 남부를 둘러보니까 인디언 문화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곧 이어 뉴멕시코에 들어섰고 첫 날 묶을 숙박소를 찾아 알버커키에 있는 모텔 6에 도착하였다. 알버커키에 다가가는데 날씨가 바뀌어 천둥 번개가 치고 비도 몰아쳤다. 혼자 하루종일 내내 운전하다가 천둥 번개를 맞으니 기분이 이상해지고 처연한 기분도 들고 많은 상념에 잠기게 되었다. 알버커키는 제법 큰 도시로 동양인들도 꽤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일어나 다시 출발하여 계속 40번을 타고 동쪽으로 향해 가 텍사스 주에 다다랐다. 텍사스 북부 지역이었는데 40번이 달라스는 지나지 않아 북부쪽만을 여행하게 되었다. 텍사스에 다다르니 여기도 역시 뉴멕시코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곧 오클라호마에 도착하였고 여기서 더 많은 인디언 문화를 볼 수 있었다. 곳곳에 인디언 기념지와 상점들이 있어 인디언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오클라호마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디언들이 살고 있고 인디언 문화 연구의 중심으로 오클라호마 주 자동차 번호판에도 보다시피 Native America의 산 고장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19세기 중반 백인들의 박해를 받고 강제로 인디언들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벽화를 보게된 것이었다.
이 역사적 사실은 Trail of Tears, 눈물의 길이라고 하는데 당시 이 강제 이주때 수만명의 체로키 인디언들이 자신들이 대대로 살고 있는 땅에서 백인들에 의해 축출당해 험한 보호구역으로 몰아 이전하면서 수천명이 사망한 쓰라린 역사의 기록이 있다. 뜻하지 않게 이 눈물의 길 벽화를 보게 되어 나도 슬픈 감정에 빠졌다. 세계 역사에는 이러한 눈물의 사건들이 많으며 이러한 역사의 기록이 보자 역사를 연구하는 나로서 슬픈 감정과 역사의 잔인함, 그리고 항상 인류의 역사가 좋지 많은 않은 그러한 산실의 기록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한국도 1930년대에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 시베리아 남부의 한인들이 저 머나먼 현재 카자흐스탄 오지로 강제 이주된 기억이 있으니 나도 이 눈물의 길 벽화앞에서 역사의 참혹함을 다시 느끼게 된 것이다. 벽화는 어느 공원안에 있었고 어느 동양인들도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벽화 옆에 인디언 기념품 상점에서는 많은 인디언 유적품들을 팔고 있었고 백인들과 인디언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들로 붐비었다. 누구나 다 자신들의 역사를 간직하고 싶고 역사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오클라호마에서 본 인디언 강제 이전 벽화, 눈물의 길
이렇게 계속하여 동쪽으로 남부를 관통하면서 오클라호마를 지나 아칸소에 도착하였다. 이렇게 가는데 가는 곳 마다 중국 부페 음식점들이 있어 중국인들이 식당으로 이러한 곳에서도 많이 와 있구나하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서 한 군데 들어가 점심 부페를 먹었는데, 동양인으로서 남부 외딴 곳에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생각보다 맛있었고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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