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빚가운데서 빛가운데로

햇볕이 아주 잘드는 고층아파트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세식구는 매우 행복하게 살았다. 올봄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이십여년간 신월동의 컴컴한 반지하빌라에서 사셨는데 우리 부부가 모시면서 김포의 신축아파트로 이사를 해서 7년동안 참 잘살았다.

그러다가 올봄 어머니가 돌아가실무렵 부터 우리 가정은 경제적난관에 부딪혔다. 무엇보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새아파트를 분양 받고 선교회및 교회건물을 분양 받았는데 저금리의 은행 이자긴 하지만 금액이 수억대에 이르다보니 점점 큰부담이 되었다.

거기다가 코로나이후 은행금리는 하늘높은줄 모르고 올라가고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웠던 우리가정은 더욱 휘청거리게 되었다. 은행 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애초에 저리로 빌렸던 은행대출이자는 이미 갑절로 넘어섰기 때문이다.

나는 날마다 마음에 말할 수 없는 큰 부담이 몰려 왔지만 뾰죽한 방법이 없었다. 그냥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수밖에는… “하나님 이 빚들을 갚을 수 있게해 주세요. ” 결국 그동안 어머니 모시고 행복하게 살았던 이 집을 파는 수밖에는 없어보였다. 그래… 이젠 어머니도 안계시니 이집을 팔자…

그렇게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봄이 가고 여름이가고 가을이 왔다. 한달 한달 은행의 대출금원금과 이자를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건 결국 다른 곳으로부터 빌려서 갚는 것일뿐 오히려 더욱 비싼 이자를 내야하는 일일뿐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가 살고 있던 우리집을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전세를 내 놓았는데 집이 전세로 나간것이다.우리집보다 큰 평수의 집과 같은 가격으로 전세를 내놨는데도 우리집이 나간 것이다.

집을 팔든 전세를 놓던 집이 잘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집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집도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누가와서 보더라도 “아~이런집에서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 나는 먼저 집을 청소하고 정리정돈을 깨끗이 했다.

중개인이 사람을 데리고 오면 대낮이지만 곳곳에 따뜻한 빛이 도는 무드등을 켜놓아서 집안 분위기를 부드럽고 안온하게 하고 크리스마스캐럴을 은은하게 들리게 해 놓았다. 그렇게 하기를 세차례… 드디어 세번째 손님이 집을 계약하게 된 것이다.

세번째 집을 보러 젊은 부부가 부동산중개인과 함께 왔을때 나는 미리 지난번 중국갔을때 중국이웃이 선물해준 귤녹차를 미리
끓여 두었다. 손님을 데리고 온 중개인이 “ 어머~ 집을 참 아끼면서 관리하고 사셨다는게 느껴져요. ”중개인이 이처럼 집을 칭찬을 하면 절반은 성공인 셈이다.

집을 다 둘러본 손님에게 나는 따뜻한 중국차를 대접했다. 세사람 모두 남김없이 차를 다 마신다. 현관에서 배웅하며 나는 집을 보고 가는 젊은 부부에게 인상깊은 마지막 메세지를 던졌다. “이렇게 예쁜 집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면서 행복하게 사세요” 내 말을 듣고 젊은 부부가 수줍게 웃으며 떠났다.

나는 전세 시세를 본것이 아니라 내가 빚갚는데 필요한 만큼의 금액을 전세금액으로 설정해서 내 놓았다. 믿음으로 말이다. 사실 우리집 바로 윗집과 아랫집이 모두 전세를 놓고 이사 나갔는데 그 가격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두집이 전세를 놓은 가격보다 우리집을 무려 50%를 더 비싸게 내놓았다. 그래야 빚을 다 갚을 수 있었기에 말이다.

세번째 고객이 우리집을 전세들겠다고 연락이 왔다. 조건은 삼주안에 이사를 들어 오게 해준다는 조건이었다. 나는 승락을 했다. “설마하니 내가 이사갈 집이야 없겠어”하는 생각이들어서였다. 우리집에 전세를 드는 사람들은 전세대출도 받지 않고 현금으로 입금해 주겠다고 했다.

자, 이제 전세돈이 들어 왔으니 빚은 다 갚을 수가 있었지만 우리가 이사할집이 문제였다. 내가 살고 있는 풍무동에서 12군데나 집을 보러 다녔지만 적합한 집이 없었다. 적당해 보이는 집들은 대부분 가격이 비쌌다. 그러나 나는 다시 빚을 지면서 집을 얻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중 그럴만한 특별한 계기때문이기도 했지만 자녀들이 살고 있는 대구로 이사할 생각을 갖게 되었다. 대구는 김포의 풍무동보다 2/3가격이면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처음엔 딸네집 근처를 중심으로 알아보았다. 그러나 브랜드가 있는 11년차 아파트여서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주변에 재개발이 되어 마침 10월~12월 입주를 해야 하는 신축아파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손녀딸 로아가 다니는 초등학교 바로 옆이었다. 마침 아파트 입주 물량이 많아서 저렴하게 월세로 나오는 아파트가 있었다.

일사천리로 월세 계약을 하고 두 주가 좀 지나서 바로 대구로 이사를 했다. 신축아파트 23층은 동남향으로 햇볕이 아주 잘들었다. 아침에는 주방까지 깊숙이 햇볕이 들어와서 따뜻했다. 전에 살던 집도 하루종일 햇볕이 잘드는 집이었는데… 그에 버금가는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우리가정이 이렇게 따뜻한 신축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된것은 순전히 기도의 응답이었다. 내가 살던집을 전세를 내 놓으면서 나는 날마다 기도했다. “하나님 지금 우리가 살던 집과 버금가는 집으로 이사를 가게 해 주세요.” 신축아파트에서 7년을 살다보니 나는 어느덧 새아파트의 그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알듯이 새아파트와 구축아파트는 가격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신축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수도권인 이곳은 지은지 20년이 넘어가는 집들도 3~4억씩 하는 전세가격이어서 내형편엔 전혀 무리였다.

그런데 빚은 빚대로 갚았고, 우리가 살 집은 전처럼 여전히 새아파트에서 살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김포로 사역을 하러 올라가야 하는 불편함쯤은 그동안 빚의무게로 마음고생하던것에 비하면 오히려 매주 즐거운 기차여행을 한다고 해도 좋을것이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시 4:1)”

글/ 사진: 나은혜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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