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다. 아파트 담장에 빨간색 넝쿨장미가 화려하게 피어났다. 이 꽃 이름은 ‘유월장미’인데 유월장미가 오월에 꽃을 일찌기 피운것을 보니 가족행사가 많은 오월에 먼저 꽃을 피워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나보다.
우리집도 소소하게 부모인 우리 부부가 자녀들에게, 또 삼남매 나의 자녀가 부모에게 사랑을 표시하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먼저 지난주 토요일엔 수도권에 사는 막내딸이 아빠 엄마 어버이날을 맞아 미리 밥을 사 주겠다고 해서 서울역에서 만나서 밥을 먹었다.
‘서리재’라는 한식당에서 ‘미나리 한 상세트’란 것을 먹었다. 생미나리줄기와 양념쭈꾸미와제육이 돌냄비에 담겨져 화덕 위에서 익어가고… 돌솥밥엔 미나리 다진것 위에 커다란 먹음직한 백명란이 한덩어리 얹혀져 있다.
밥을 덜어내어 참기름을 넣어서 비벼 먹으라고 직원이 안내해 준다. 그리고 돌솥엔 뜨거운 물을 부어 두었다가 누른밥을 만들어 먹는것이다. 계란찜과 된장찌개도 나온다. 음식 가격은 좀비쌌지만 꽤나 맛갈스러웠다. ‘명란솥밥’은 나도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이다.
밥을 먹고 서울역안에 있는 태극당에가서 후식으로 모나카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딸은 빵도 여러개 사 주면서 내일 아침도 드시고 대구 내려가실때 기차안에서 드시라고 한다. 오랫만에 푸근하게 딸과 가족식사를 해서 기분이 좋았다.
이튿날 우리 부부는 김포에서 사역을 마치고 대구로 왔다. 그런데 큰딸이 연락을 해왔다. 대구 서구에 있는 ‘동인’이라는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자는 것이다. 큰딸네 다섯식구와 우리 부부가 코스식 중국요리와 양꼬치를 먹었다. 자동으로 돌아가면서 양꼬치가 구어져 타지도 않고 참 편리했다.
그리고 어린이날 이튿날인 월요일 대체휴일인 5월 6일은 대구에 사는 아들과 딸 가족이 우리 집에 모두 모였다. 로아 로이 조이가 선그라스를 멋지게 쓰고 외갓집을 방문했다. 나는 큰딸과 함께 장을 봐왔다.
점심엔 콩나물, 호박, 당근, 양파, 표고버섯, 무우생채, 상추를 넣고 야채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저녁엔 닭도리탕을 만들었다. 단배추를 넣은 시원한 된장국을 끓이고, 닭볶음용 닭고기에 감자,당근,양파,표고버섯 당면을 넣은 간장으로만 간을 해서 나의 전공음식인 닭도리탕을 만들었다.
어른들이 먹는데는 닭볶음에 고추장이 들어가면 더 맛있겠지만 어린 손주들을 먹이려고 진간장과 설탕으로만 간을 했다. 예상대로 손주들은 닭도리탕 고기도 먹고 야채와 어우러져 맛있는 닭도리탕 국물에 밥을 비벼서 밥을 잘 먹는다.
닭도리탕은 가성비가 높은 음식이다. 영양도 좋고 밥반찬으로도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지난날 선교지에서 전도하기 위해서 닭도리탕을 참 많이도 만들어서 선교지의 사람들을 대접했었다. 닭도리탕은 C국 청년들도 매우 좋아하던 음식이다
점심을 먹은후 아래로 작은 손자 둘은 남편이 아파트 놀이터에서 데리고 놀기로 하고 나는 아들, 며느리, 큰딸과 손녀 로아와 함께 ‘굿윌스토어’ 라는 곳엘 갔다. 그곳은 장애우의 재활을 돕는 사회적기업으로 기업들로부터 기증 받은 새물건들을 매우 저렴하게 팔았다.
나는 아주 가벼운 양산 하나(3,000원) 키높이운동화(만원->정가는 89,000원 )발편한 봄구두(만원->정가는 79,000원)면티(3,500원) 에샀다. 몇가지 양념과 식품도 샀는데 모두 무척 저렴했다. 계산하고 나오는데 선물로 화장품도 두개를 준다. 완전 득템을 했다.
선교사로 살아온 나의 알뜰생활 전략은 늘상 이런식이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머리속에 메모해 두고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노라면 뜻밖의 세일물건을 만나거나 오늘처럼 아주 저렴하게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기회가 온다. 그러면 부담없이 물건을 장만할 수 있다.
아들 며느리는 어버이날 선물로 남편과 나의 다중초점렌즈 안경을 맞추어 주었다. 며칠전 내가 돌계단에서 넘어져서 안경알이 다 긁혀서 못쓰게 되었던 것이다. 정말 위험했었는데 코만 약간 긁히고 팔다리 어디 안부러지고 멀쩡한게 너무 감사해서 감사헌금을 드렸다.
남편은 선교사로 사역할때 후원교회가 맞추어준 안경을 거의 20년동안이나 썼다. 이번에 20년 만에 안경을 바꾸는 것이다. 정말 질기게 오래도 썼다. 그뿐인가 선그라스도 작년에 26년만에 동네 안경점에서 새로 맞추었다. 남편은 물건을 참 정하게 쓰는 사람이다.
어버이날인 오늘은 자녀들이 모두 출근하니 점심을 남편과 나가서 사먹을까 하다가 집에서 만두 두부전골을 몇가지 야채를 넣고 시원하게 끓여서 간단하게 먹기로 했다. 큰딸을 오라고 해서 소박하지만 따뜻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저녁밥은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손주들을 데려다 주고 큰딸집에서 먹었다. 카레라이스와 오이무침과 오뎅국으로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내가 남편에게 먼저 집으로 가라고 했더니 큰딸과 로아가 펄쩍 뛴다. 할아버지가 주인공인데 가시면 안된다고 말이다.
무슨 깜짝쇼를 준비한 모양인지… 오늘따라 요즘 석사논문 쓰느라고 늘 늦게 집에 오던 사위가 일찍 집으로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다 계획적이었던 것이다. 어버이날 우리를 기쁘게 해 주려고 로아네 가족이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것이다.
어쩐지 저녁을 먹자마자 로아가 멋진 드레스를 갈아입고 나오고, 둘째 로이는 마치 아동복 화보에라도 나옴직한 차림으로 방에서 슥~ 나온다. 멋진 체크 양복에 베이지색 버버리코트까지 걸치고 말이다. 막내 조이는 스파이더맨 옷을 입고 출동했다.
하얀 식탁보가 씌워진 식탁엔 핑크색으로 화사한 케이크가 장식되어 있다. 곳이어 노래를 부르고 조이가 잽싸게 촛불을 끈다. 하하… 호호…한바탕 웃음꽃이 핀다. 큰딸이 “안돼 조이야. 이번엔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인공이니 촛불을 끄셔야해” 하면서 다시 케이크에 불을 붙인다.
다시 노래를 부르고 이번엔 손주셋과 우리 부부가 함께 촛불을 껐다. 벌써 의젓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로아가 접시를 식구수대로 가져다가 놓더니 케이크를 자른다. 로아는 산수를 배우더니 8조각으로 잘 계산해서 잘라서 가족 모두 한조각씩 먹도록 배려한다. 큰딸은 살림밑천이라는데 로아가 벌써 제 엄마를 이리도 잘 돕는다.
아이들이 케이크 옆에 있는 카네이션이 그려진 카드를 할아버지인 남편에게 잡아 당기라고 한다. 커다란 카네이션 카드아래에 “엄마 아빠! 사랑하고 존경해요! 성진. 영화드림(로아. 로이. 조이) 라고 쓰여 있는 카드를 위로 잡아 당기니 돈이 줄줄이 붙어 나온다. 하하하… 호호호…우리 모두 웃음보가 터졌다.
다음엔 나에게 카드를 잡아 올리라고 한다. 내가 집은 카드엔 ‘사랑이 올라갑니다.’ 라고 카네이션 꽃카드에 씌여 있고, 아래에는 ‘선물의 완성은 현금’이라고 씌여 있다. 카드를 위로 잡아 당기니 이번엔 더 길게 돈이 붙어 나온다. 세종대왕과 퇴계이황이 번갈아 가며 나온다^^
달콤한 케이크 한조각과 딸이 직접 커피콩을 갈아서 내려준 카페인이 없는 커피를 한잔씩 마셨다. 나는 손주들에게 동화책 두권을 읽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장미향 실은 흐믓한 밤바람이 나와 남편의 얼굴을 간지럽힌다.
집으로 돌아 오는 내내 어두워서 보이진 않아도 남편의 얼굴에도 내 얼굴에도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 가족은 가능한 가까이 살아야 좋은거야. 그래서 부모에게나 자녀에게나 오월은 가족이 더욱 소중해지는 달인것만 같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시 127:3~5)”
글/사진: 나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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