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는 유럽의 중세 사회구조를 싹 바꾸었다.
이 시기에 다빈치、뉴턴 등 많은 위인이 탄생했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낡은 시대와 결별할까?
페스트는 14세기의 유럽、그리고 세계를 공포의 구렁텅이에 내던졌다. 인구의 3분의1이 사망하는 이상사태였다. 단순히 인구가 줄어든 것만이 아니라 유럽의 중세사회를 근저로부터 흔들어 놓았다. 권력구조가 싹 바뀌어 봉건사회가 붕괴되었다.
유럽 중세는 로마교황이 절대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 힘을 보여주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카노사의 굴욕(Penance of Canossa)’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파문이 두려워 로마교황에게 굴복했다. 황제가 눈 속에서 교황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맨발로 서있었다고 한다.
그런 교황을 톱으로 한 교회였지만 페스트 유행에는 너무나 무력했다. 성직자 자신이 페스트에 걸렸다. 사람들이 종교의식을 했는데도 기도를 올렸는데도 효과가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 사람들은 낙담했다. 더욱이 성직자들 가운데에는 감염이 두려워 교회에서 도망한 사람도 있었다. 이는 교회 측의 배신행위로 비쳐졌다.
또 하나의 권력자인 봉건영주도 지위가 떨어졌다. 유럽의 봉건사회는 봉건영주가 토지를 소유하면서 농민으로부터 연공을 징수했다. 그러나 페스트로 많은 농민들이 사망했다. 노동력 부족 때문에 농민에게 임금을 지불하게 되어 농민에게 상대적으로 힘이 붙었다. 교회와 봉건영주라는 양대 권력 실추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르네상스였다. 교회가 지배했던 중세시대를 극복하려고 하는 움직임이었다. ‘암흑시대’와 결별하고 인간을 해방하는 운동이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천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다빈치라고 하면 말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사상 최고의 화가다. 대표작이 모나리자다. 그는 과학자로서도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르네상스기가 낳은 ‘만능 천재’라고 할 수 있다.
동시대의 화가로서는 미켈란젤로、라파엘로 등도 활약했다. 정치사상가인 마키아벨리도 등장했다. 백화난만의 인재들을 낳았다.
페스트는 그 후에도 유럽세계에 유행하는데、1665년부터 66년에는 영국에서 크게 확산되었다. 런던에서만 약 10만 명이 사망했다. 거리는 비참한 광경이였다.
“런던탑까지 걸었다. 하지만 세상에 거리가 너무 텅 비어서 쓸쓸하고 불쌍한 병자들이 나돌아 다니고 있는데 모두 종물이 되어 있다. 걷고 있는 사이에도 여러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모두 이 사람이 죽었다、저 사람은 병들었다、여기서는 몇 사람、저기서는 몇 사람、등이라는 것만 소문이 돌고 있다”(피프스씨의 비밀일기、岩波新書)。
그 무렵 어떤 젊은이의 운명이 바뀌었다. 아이작 뉴턴이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연구생활을 할 생각이었는데 페스트의 유행으로 대학이 휴교하게 되었다. 뉴턴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휴교는 2년에 달했다. 거기서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사과는 열매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더욱이 ‘미분적분’ 고찰방식도 발견했다. 뉴턴은 이 기간을 뒤에 ‘창조적 휴가’라고 불렀다. 과학사에 남을 위업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신형코로나로 지금 세계가 혼란스럽다. 회사는 재택근무로 되었고 학교는 휴교하고 있다. 리모트워크와 온라인수업이 일상광경이 되어가고 있다. 혼란 뒤에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서는 구시대를 결별하게 될 것 같다. 다빈치나 뉴턴이 다시 나타날까 어떨까? 우리들은 후세 사람들로부터 힐책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데마치 유즈르(出町譲, 경제저널리스트・작가)
Japan In-depth 2020/4/15
<3편으로 계속>
더 자유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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