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빗속의 데이트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서 분리수거할 쓰레기를 들고 먼저 아파트 아래로 내려간 남편이 전화를 걸어 왔다. “내려올때 큰우산 가지고 내려와요 비가 많이 오고 있어요.”

나는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아 드리고 잠옷을 입혀 드렸다. 매일 살에 붙여 드리는 치매치료제(리바스티그민패취)를 등에 붙여 드린 후 침대에 눕혀 드리고, 마지막으로 자리끼 물을 떠다 놓고서 집을 나왔다.

비가 많이 내렸다. 여러 아이들이 비를 피해서 아파트 필로티에서 놀고 있다. 이런 비가 쏟아지는 날 아이들이 비를 피해 놀곳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커다란우산을 활짝 폈다.

내가 늘 가지고 다니던 작은 우산으로는 이렇게 쏟아지는 비를 다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아파트를 벗어나서 옆에 있는 저류지 공원으로 갔다. 이공원의 산책로를 한바퀴 돌면 5분이면 되지만 반복해서 몇바퀴 돌면 그래도 꽤 운동이 된다.

날씨가 좋을때는 남편과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너바퀴를 돈다. 때론 무선 이어폰을 한개씩 나누어 귀에 꼿고 20-30분짜리 강의를 듣기도 한다. 어젠 비타민 강의를 들었었다.

의학의 발전과 함께 비타민의 효용성도 많이 밝혀졌다는 내용이다. 비타민 처방만 해도 살았을 사람들이 예전에는 비타민 처방을 못해서 생명을 잃었다는 저명한 내과의사의 강의를 들으면서 배우는게 많았다.

평생 약이라고는 모르고 살던 나도 요즘 들어 비타민 C를 꾸준히 먹고 있다. 세식구가 매일 먹으니 비타민C도 큰박스를 사야 한다. 어제만 해도 비타민C 600정 짜리를 한박스 주문했다.

비가 점점 세차게 내린다. 공원을 한바퀴 돌았는데 벌써 청바지 아랫단은 다 젖었다. 결국 공원은 한바퀴만 돌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걷자고 남편과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지하 주차장은 드나드는 자동차들로 오늘따라 번잡했다. 공기도 탁하게 느껴져서 운동으로 걷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처럼 짧은 산책이었지만 참으로 인상깊었고 오래도록 추억에 남을것 같았다.

그처럼 세차게 쏟아지는 빗속을 데이트를 했으니까 말이다. 커다란 우산을 받쳐들고 사랑하는 사람과 걸어 보는 일은 우선 그 자체로 무언지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가

쏴아~ 아우성치듯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내리는 빗속을 우산을 들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이 오늘따라 새로운 감동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요즘 일상을 재해석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래선지 요즘 나에겐 뭐든 당연하고 평범한것은 없다. 한끼의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을 수 있는 식구가 있다는 것도 특별하고 고맙고 감사하다. 오늘 저녁은 시레기죽하고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어머니는 소화 잘되는 시레기죽을 드렸다. 매운 떡볶이도 조금만 드렸다. 1930년생 우리 어머니는 뭐든 잘 드셔서 감사하다. 전에 들었던 말인데 어느 분이 변덕이 많은 치매 아버지를 모시는 어려움을 호소한적이 있다. 그 치매 할아버지는 식사를 할때 된장찌개를 끓여 드리면 비빔밥 만들어 오라고 하고 비빔밥 만들어다 드리면 다시 찌개를 가지고 오라고 변덕을 부려서 무척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무얼 만들어 드려도 다 잘 드신다. 죽도 밥도 냉면도 메빌소바도 심지어 쫄면까지도 다 맛있게 드신다. 그래서 난 복받은 며느리이다. 밥투정 없이 뭐든 잘 드시는 어머니를 모실 수 있으니까 말이지.

세차게 쏟아지는 비로 인해 오래 걷진 못했지만 의미 있는 빗속의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카친이 올린 글을 읽었다. ‘214세 최고령 부부 80년 해로의 비결은’ 이라는 제목의 글로 에콰도르에 사는 노부부는 기네스북에 등재 되었다고 한다.

각각 110세 104세인 두 사람은 나이가 도합 214세이다. 할아버지는 1910년 출생 했고 할머니는 1915년에 출생했다. 이분들은 5명의 자녀와 11명의 손주, 21명의 증손주, 9명의 고손주까지 두었다.

에콰도르의 노부부인 두 분은 올해 결혼 79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그분들은 올해 결혼 40주년을 맞는 우리 부부보다 꼭 두배를 더 함께 살아온 것이다. 과연 기네스북에 등재될만한 결혼기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부가 이처럼 해로 하는것은 특별한 은총일 것이다. 나의 조부모와 양가의 부모님들은 각각 한쪽이 먼저 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 것을 지켜본 나로서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글에는 두사람이 살아온 방식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역시 화목하게 사는 삶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음은 에콰도르 노부부가 한말이다

“부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의 비결이 “사랑과 성숙, 상호 존중”이라고 말했다. 딸 아우라 세실리아에 따르면 지금도 둘은 함께 영화나 연극을 보러 가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과일이나 채소를 심고, 가족이나 친구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해 베푸는 것도 좋아한다.

부부는 존중과 배려를 통해 오랜 시간 관계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우리 둘은 말다툼하거나 싸운 적이 없다”며 “의견 차이를 보인 적은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전혀 티 내지 않았다”고 했다.”

참 모범적인 결혼 생활을 해온 에콰도르의 노부부 이신것 같다. 남편과 빗속의 데이트를 한 날 이 기사를 읽어서일까 더 마음에 닿는 부분이 많았다.

남편 K선교사는 나를 위해 매일 기도하는데 나를 위한 기도제목이 A4용지로 다섯장이나 된다고 어제 나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나는 그 기도제목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내가 이만큼 살아가는것은 남편의 기도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에 남을 빗속의 데이트를 한 날 우리 부부 보다 곱배기를 더 살아온 에콰도르의 노부부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따뜻해 진다. 나도 남편이 에콰도르 노인처럼 오래 살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시 91:16)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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