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기도에 올인하는 인생

새벽부터 안개가 자욱하다. 아파트안 정원도 건물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뿌우연 안개속에 가로등 불빛만이 유일하게 그 주변을 비치고 있다. 안개속 불빛을 따라 걸어가는 한사람을 보며 문득 성경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모습은 마치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불타는 떨기나무 가까이 걸어가는 형상의 모습으로 내게는 이미지화 되어 보여졌다. 나는 뒤에서 그를 따라가며 “찰칵 “ 사진 한장을 찍어둔다.

그는 날마다 새벽에서 정오까지를 기도시간으로 떼어 놓고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그가 이처럼 기도에 집중하게 된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젊을때부터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잘 믿어볼까가 오직 그의 삶의 목표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좀더 나이 들어서는 아무래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주님께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편안하게 살아가던 30대 중반의 어느날 그는 사표를 내고 신학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하여 그는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 미지의 땅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떠났다.

90년대 그때만 해도 많이 낙후되어 있던 C국에서 그는 인생의 절정기랄수 있는 40대에서 50대를 살았다. 그는 옛직업인 교사를 버렸으니 다시는 잡을일 없겠지 하면서 집어 던졌던 백묵을 다시 집어 들고 선교지의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복음을 전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낡은 버스를 타고 가서 미지의 땅 젊은이들에게 上帝非常好!(하나님은 참 좋은분입니다)를 전했다. 복음을 들은 젊은이들을 제자 삼고 제자들이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지켜 보는 재미에 선교지에서 그의 인생의 중반이 훌쩍 지나갔다.

그런 그의 뇌리속에는 잊혀지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그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지 않았던 때의 일이다. 그의 대학시절은 가난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움을 당해 가세가 기울자 그는 가정교사를 하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인생의 고민을 끌어안고 살아가던 대학생시절, 그는 어느날 밤에 서초동의 어느 작은 교회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쏟아 놓았다. 그때만 해도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해 확신은 없을때였다.

그는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 들어가서 독백같은 고백을 하고 나왔다. 휘영청 밝은달이 서초신동교회 마당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웬 검은 그림자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저 이교회 담임목사입니다. 저하고 이야기좀 잠깐 나눌까요?” 그 목사님은 그날 그청년의 삶에서 BC와 AD를 갈라놓았다. 그 목사님의 복음전도로 그날밤 그 청년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마음속에 영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는 예수의 영에 불들린 삶을 살아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청주의 사립고등학교에서 교사가 되어 국어를 가르쳤지만 그는 늘 자신의 본업은 ‘복음전도자’라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십여년간 근무했던 교직생활을 정리하고 신학을 공부한 후 선교지로 파송되어 들어간다.

십년이 흐른 후, 선교지에서 아내의 비자제한으로 아내가 먼저 추방을 당하고 그는 혼자 남아 교회를 지키며 30여명의 성도들을 섬겼다. 부부가 떨어져 산 지 일년후에 선교부의 권고로 그는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내의 비자가 풀리면 다시 선교지로 들어가기로 하고서…

고국에 있는 동안 그는 충북 옥천에 있는 바나바훈련원에서 영성훈련을 받았다. 그 때 바나바 훈련원 원장님은 “A텐트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다. A텐트는 바로 기도텐트이다.

어디서나 A텐트를 만들어 놓고 매일 세시간씩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하지않는 목사는 건달목사가 되기 쉽다며 철저히 자신을 기도에 헌신하라는 원장님의 가르침에 그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달란트가 해외에서온 유학생들의 석사 박사 논문을 도와주어 졸업하도록 돕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C국의 젊은 여교수의 박사논문을 도와주어서 박사학위를 받게 해준것이 그 사역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가 댓가를 받지 않고 무료로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하도록 도움을 주자 그 여교수는 고마운 마음에 자진해서 스스로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그후 그 여교수는 복음을 받아 들이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녀의 나라로 돌아갔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유학생들을 도와서 논문을 지도해주며 복음을 전하였다 . 그동안 수십명의 유학생이 그의 도움으로 논문을 통과하여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국어교육학을 전공한 것 또한 선교에 도움이 되는 이때를 위함이었다는 것을 그는 깨닫고 있다.

최근에 그는 박사학위논문을 도움받고 학위를 받은 유학생으로 부터 작은 선물을 받았다. 홍삼이었다. 유학생들은 무료로 돕고 있는 그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이런 작은 선물들을 보내온다. 그럴때마다 그의 얼굴에 보람을 느끼는 잔잔한 미소가 피어 나곤 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해외 유학생들의 논문을 완성하도록 돕는일이 아니다. 그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도사역이다. 수년동안 하나님은 그에게 계속적인 기도훈련을 해 오셨다. 그러나 지속적인 기도의 삶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난 수년 동안 조국이 총체적인 위기에 휘청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는 오직 기도만이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새벽부터 오전 12시 까지 기도에 올인한다. 아침은 금식을 하니 교회에서 집에 돌아올 필요도 없었다.

그는 세로로 세우는 피봇모니터에 기도제목을 올려놓고 기도한다. 그동안 기도해야할 내용을 타이핑하여 적어 넣은것이 A4용지로 천사백 페이지가 넘어갔다. 눈이 피로해 서 16포인트의 글씨크기를 조정해 놓고서 기도한다.

기도하면 할수록 기도할 제목들이 늘어났다. 수년전에 바나바훈련원에서 “목사는 하루 세시간은 기도해야 한다”고 배웠던 ‘A텐트의 비밀’을 그는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 최소한 4시간 이상을 기도하면서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목사는 물론 그리스도인으로서도 특별한 특권이다.

요즘에 와서야 그는 작지만 아담한 예배당 및 선교회 건물이 마련된 것이 자신을 위해 마련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의 아내가 교회와 선교회 사무실을 만들려고 했을때 정작 자신은 적극 반대했었는데…이제 그혜택을 자신이 가장 많이 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엠바운즈 , 죠지물러, 잔 낙스 등 기도의 거장들은 기도에 대해서 강의 하거나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 기도는 그 자체가 바로 사역이요 일이다.

그는청년때는 CCC에서 복음을 전하고 중년에는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이제 은퇴를 몇년 앞둔 시점에서 기도사역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야말로 복음의 문을 여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올해도 가을이 오고 있다. 올가을 하늘은 사파이어색 파란 하늘이다. 흰구름 두둥실 떠가는 조국의 하늘아래에서 그가 드리는 기도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날마다 올라간다. 곧 추운 겨울이 다가오리라. 그는 기도의 군불을 때며 푸르고 푸른 복음의 계절이 오게 될 미래를 준비한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시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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