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진정한 잠옷 주인

며칠전 인터넷으로 주문한 옷이 도착했다. 내가 입을 실내복(잠옷)이다. 곤색 바탕에 빨강색 계열의 체크무늬로 되어 있는 옷이다. 잠잘 때도 입고 집에서 실내복으로 편안하게 입으려고 상의와 바지로 디자인 된 옷을 주문했다.

새옷이니 입기 전에 한번 빨아서 입으려고 세탁을 했다. 말린 후 나는 새 잠옷을 입었다. 내게 맞는 사이즈를 주문했으니 내 몸에 잘 맞았다. 그런데 거실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시던 어머니가 내 잠옷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내가 어머니 옆 소파에 앉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손을 내밀어서 내 잠옷을 만져 보신다. 그리고 툭 한마디를 하신다. “아유 톡톡하고 좋구나.” 나는 얼른 어머니가 내 옷을 욕심 낼까봐서 “제가 어머니께 사드린 잠옷이 훨씬 더 톡톡하고 좋아요” 했다.

작년에 이미 어머니 잠옷은 두 벌이나 사 드렸던 것이다. 번갈아 입으실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계속 내 잠옷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자꾸 바라보면서 손을 내밀어 이리 저리 만져 보시는게 아닌가?

나는 어머니의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애가 다른 친구의 새옷을 보고 부러워 하는 모습처럼 보여져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어머니 이 잠옷이 마음에 들어요? 그렇게 좋아 보이세요? 그럼 이 옷 어머니 드릴까요?” 했다.

내가 그렇게 나오면 어머니는 당연히 “아니 내 잠옷도 있는데 왜 내가 네것을 입니? 그냥 좋아 보인다는 것이지” 라고 하셔야 할텐데 오늘 어머니의 반응은 전혀 그게 아니다. 어머니는 계속 내 잠옷에 눈을 떼지 못하고 “야 참 좋다. 아주 톡톡해(두꺼워) 보인다.” 라고 하시는 것이다.

나는 결국 어머니의 집중적인 내 옷을 탐색하는 시선에 더 이상 버티지를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방에 들어가서 다른 옷을 입고 그 잠옷을 들고 나왔다. “어머니 그렇게 좋아 보이시면 이 잠옷 그럼 한번 입어 보세요” 했다. 예전 같으면 체면 많은 우리 어머니는 ”네 것으로 산 잠옷을 내가 왜 입니? 별 말을 다한다.” 이러실 분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들고 나온 잠옷을 두 손으로 덥썩 잡으신다. 나는 어머니의 입고 있던 옷을 벗겨 드리고는 어머니가 그처럼 시선을 거두지 못하던 내 새잠옷을 입혀 드렸다. 물론 날씬한 체구인 어머니에겐 사이즈가 아주 잘 맞았다. 바지 길이도 적당하고 상의도 넉넉히 맞는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잠옷을 입고서 아이처럼 “아유 참 좋다.” 하시면서 몹시 즐거워 하신다. 나는 속으로 “햐~ 정말 내가 모른척 하고 잠옷을 안 벗어 드렸으면 얼마나 섭섭해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내 옷을 뺏어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에도 내가 입으려고 샀던 연회색의 패딩긴코트를 샀을 때도 그랬다. 그때도 내가 그 옷을 입자 어머니는 좋아 보인다며 계속 부러워하고 만져보고 하셔서 나는 견디지 못하고 그 겨울 패딩코트를 아예 어머니를 드렸다. 어머니는 지금도 겨울이면 그 코트를 제일 즐겨 입으신다.

어머니는 옷 맵시에는 감각이 있는 분이다. 서울에 처음 ‘라사라 양재학원’이 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는 양재학원에 등록하여 양재를 배우셨다. 양재학원 학원생들 가운데 실력이 제일 좋아서 일등으로 졸업을 했다. 그러곤 옷감을 끊어다가 본인 옷도 해 입으시고 가족들 옷도 만들어 주곤 하셨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인 나의 큰딸이 유치원을 다닐 때이다. 피아노 바이올린 같은 예능도 함께 가르쳤던 그 유치원에서 졸업을 앞두고 발표회를 하게 되었다. 드레스를 구해야 하는데 그때만 해도 그런 옷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고민하자 어머니는 “애, 내가 만들어 볼께” 하셨다. 그리곤 남대문 시장에 가셔서 핑크색 레이스 천과 안감을 끊어다가 큰 딸의 피아노 발표회 때 입을 드레스를 만들어 주셨다. 치마를 캉캉 스타일로 한층 한층 절개해서 만든 드레스였다.

딸은 그 핑크 드레스를 입고 핑크색 리본을 머리에 묶고 피아노 발표를 했다. 큰딸이 입었던 그 드레스는 나중에 막내딸 까지도 입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옷도 만들 줄 아시고 패션에 감각이 있으신 분이다. 그래서 비록 지금은 치매를 앓으며 많은 기억을 잃으셨어도 예쁜 것 고운 것 색감이 어울리는 것을 아시나보다.

어머니가 내게 넘겨 받은 잠옷을 입고 흐믓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보시는 옆 모습을 나는 슬쩍 지켜 보았다. 내가 입으려고 주문한 옷을 빼앗긴 속상함 보다는 어머니의 치매 상태로 인한 돌발 행동들에 대해 내 마음이 짠하게 아파온다.

한참 텔레비전을 보시던 어머니가 자겠다며 당신 방으로 들어 가신다. 마침 남편 K선교사가 자신의 서재에서 나오다가 어머니를 보고는 큰소리로 탄성을 지른다. “야~ 우리 어머니 참 멋지다. 그옷 아주 잘 어울리는데요.” 한다.

거실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묘한 기분이 든다. 남편의 입장에서 자신의 아내는 자신이 입으려던 옷을 빼앗겨서 씁슬한 기분일텐데( 내가 자원해서 드렸으니 사실은 괜찮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새 잠옷을 입었다고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두 여자 틈에서 사는 남편(2:1)이 균형있게 잘해야 한다. 그런데 남편은 나를 별로 배려하지 않는다. 하하…내가 마음이 비교적 넓은편이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소소한 다툼도 꽤나 일어날 수 있는 우리집 가족 구성이다. 여자 둘에 남자 하나가 사니 말이다.

아무튼 요즘 어머니는 아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전엔 나를 선생님 이라고 불렀었는데… 그 이유는 요즘은 남편이 어머니의 양치와 세수를 도와 주고, 주간보호센터 차량까지 모시고 내려가 배웅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아하~ 그러고 보니 우리 어머니가 남자 선생님(아들)에게 잘 보이려고 며느리 앞에서 체면불구하고 며느리가 산 예쁜 잠옷을 뺏어 입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어머니가 입은 새 잠옷을 보자 마자 그렇게 큰소리로 칭찬을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가 예쁜 잠옷을 부러워하고 욕심을 내는 것이 고맙다. 무언가에 관심이 있고 탐을 낸다는 것은 어머니가 그만큼 삶에 대해 의욕적이고 건강하다는 뜻일테니까 말이다.

다음에 어머니가 또 내 옷을 빼앗아 입으신대도 난 괜찮다. 어머니가 건강하게만 사신다면 말이다. 91세 인생의 말년을 며느리 옷도 나 달라고 떼써가며 아들 며느리와 알콩달콩 살아가는 우리 어머니. 그래도 참 행복한 분이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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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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