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동에 있는 박승철헤어스튜디오에서 L목사님을 만나기로 하였다. 꼭 만나야 할 일이 있어서였다. 성남에 사시는 L목사님은 내가 사는 김포 보다는 둔촌동이 훨씬 가깝기 때문에 내가 마침 미용실에 갈 일도 있어서 겸사 겸사 그곳에서 만나뵙기로 한 것이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할 일을 마친후 L목사님과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식당은 내가 이곳 둔촌동에 오면 거의 어김없이 가는 ‘얼큰칼국수샤브샤브’ 집이다. 얼큰한 고추장육수에 버섯과 미나리 야채를 무한리필로 제공해 주는 집이다.
보글보글~ 얼큰해 보이는 육수가 끓는다. 식사기도를 하고나서 버섯과 미나리 그리고 고기를 넣어서 막 식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L목사님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신다. “아주 쪼금이야 “라고 하시면서 팔을 벋어서 나에게 건네 주었다.
그건 바로 노란 은행잎을 닮은 오만원권 두 장 이었다. 사실 L목사님은 종종 우리 교회에 헌금을 해 주셨었다. 그러나 오늘은 우리교회를 방문 하신것도 아니기에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좀 뜻밖의 일이어서 놀라워 하였다.
“아니, 목사님 갑자기 웬 돈을…” 하면서 면구스러워 졌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머리속에 ‘어머니병원비’라는 여섯글자가 지나갔다. 어머니 치료비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감사함으로 받았다.
나는 “목사님 후원해 주셨으니까 식사값은 제가 낼께요.” 했다. 목사님은 말없이 웃기만 하신다. 이 집은 언제나 식사를 마치고 나면 만족감이 드는 집이다. 샤브샤브로 야채와 고기 그리고 칼국수를 먹고 마지막에 계란볶음밥을 해 주는데 아주 담백하게 맛있어서 뒷맛까지 깔끔했다.
식사를 많이 안 하시는 편인 소식가인 L목사님도 마지막 볶음밥까지 다 드시면서 맛있다고 하신다. 밥을 다 먹고 나는 얼른 일어서서 계산대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L목사님은 앉은 자리에서 아주머니를 불러서 카드를 주며 결제해 달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은퇴목사님이신 L목사님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는 언제나 관대할 뿐 아니라 무척 즐기시는 분이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는 늘 아끼고 절약하며 사신다. L목사님은 좋은일, 옳은일, 복음과 관계되는 일이면 아낌없이 돈을 쓰는 모습을 나는 여러번 지켜봐 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엔 여러 유형의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 상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주의 깊게 살피는 삶을 사는 기버형(Giver)의 사람이 있고 늘 자기 자신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이 준것보다 더많이 받기를 바라는 테이커형(Taker)이 있다. 그런가 하면 주지도 받지도 않거나 준 만큼 반드시 받아내는 매처(Matcher)형이 있다.
이런 유형별로 본다면 L목사님은 진정한 기버형(Giver)의 삶을 사시는 분이다. 그래선지 L목사님의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붙는다. 은퇴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현역목회자 이상으로 바쁘고 의미 있는 삶을 사시는 분이다.
내가 L목사님을 알게 된 것은 아마 나의 ‘선교문학’ 을 통해서일 것이다. 또 알고보니 나와 같은 교단이셔서 나는 L목사님에게 더욱 친밀함이 느껴졌다. 더욱이 L목사님 역시 나처럼 글을 쓰신다. 매일의 삶을 힐링칼럼으로 써서 사람들에게 나누시는 매우 부지런한 분이다.
자, 그러면 ‘어머니 병원비’이야기는 어떤 스토리가 있는가? 지난 주일아침 이었다. 어머니가 방에서 큰 소리를 내셔서 나는 얼른 어머니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머니가 손으로 이마를 만지면서 아프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자신의 방안 침대에 걸터앉아 옷을 입다가 어떻게 넘어 지셨는지 모르지만 이마를 협탁에 부딪히신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의 이마에 커다란 자두만한 혹이 둥그렇게 부풀어 올랐다.
나는 마침 집에 운동선수들이 부딪혀서 다치거나 부어 올랐을 때 바르면 효과가 좋다는 파워풀엑스(Power fulx)라는 크림타입의 약이 생각났다. 관절을 다치거나 부딪혔을때 바르는 이 약을 상비약으로 사다 놓은 것이 기억이 났다.
나는 그 약을 가져다가 둥글게 부풀어 오른 어머니의 이마 부위에 넓게 펴면서 발라 드렸다. 이튿날은 집에서 하루를 쉬게 해 드렸다. 이젠 아프지는 않다고 해서 그 다음날 주간보호센터에 가셨는데 주간보호센터에서 인근 정형외과를 모시고 다녀 왔다는 연락이 왔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는 찍었지만 좀 큰 병원에 가서 시티촬영을 해보면 좋겠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받아 왔다고 한다. 나는 남편과 함께 주간보호센터 차량으로 귀가하는 어머니를 곧바로 인계받아서 우리자동차로 옮겨 타시게 하여 예약해 두었던 신경외과로 모시고 갔다.
그런데 나는 치료비가 걱정이 되었다. 우리 동네에 새로 개업한 꽤 큰 규모의 병원들이 몇 개 있었다. 전화를 걸어서 시티촬영 가격을 물었다. 한병원에서는 7만원 이라고 하고 또 하나의 병원에서는 4만원 가량이라고 한다. 나는 당연히 4만원 이라고 한 병원엘 갔다.
그러나 결과는 시티촬영과 진료비용이 10만원 가까이 나왔다. 나는 좀 속상했다. 별 수 없이 3개월 할부 지불을 하고 약을 처방 받아 집으로 왔다. 결과는 타박상 정도여서 약을 드시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은 정도였다.
그런데 내마음 속으로 불만스러운 하소연이 터져 나왔다. “주님 우리 형편 아시면서…왜 어머니에게 이런 일이 일어 났나요? ”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집안에 돈이 떨어지면 식구들이 아프지라도 말아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 일이 있은 직후였기 때문에 나는 L목사님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10만원을 내게 주셨을때 곧바로 “아… 이건 어머니 병원비” 라는 답안이 떠올랐던 것이다. 아무튼 L목사님의 배려와 섬김은 생각지 않게 지출된 병원비로 그렇지 않아도 재정부족으로 추워지던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주기에 넉넉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후원을 받으면 나는 습관적으로 교회에 헌금을 해왔었다. 그러나 이번엔 아예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번 주일엔 기초연금 나온 십일조만 드려야지 L목사님에게 받은 이돈은 헌금하지 말고 어머니 병원비로 지출된 것을 때워야지 하고 굳게 결심을 했다.
하지만 습관은 무섭다. 주일날이 되자 나는 이 노란 은행잎 두 장을 헌금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것이다. 결국 나는 감사헌금 봉투에 L목사님의 이름을 적고 감사헌금으로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바쳤다. 어머니 병원비야 또 하나님께서 채우시겠지 하면서 말이다.
과부의 두렙돈이 아마 이런 헌금 이었지 않았을까. 없는 가운데 자신에게 있는 것을 전부 넣었던 가난한 과부의 헌금 말이다. 내가 믿기로 하나님의 나라는 L목사님 같은 기버형(Giver)의 사람들을 통해서 확장되고 자라간다. 지난 주일은 그래서 전보다 더 은혜로운 주일을 보내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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