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힘들지요? 미안해요

어머니는 치매로 인해 기억도 잊었을뿐 아니라 정상적인 인지활동이 거의 어렵다. 사람에게 뇌의 역활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츠하이머병(치매)을 앓는 어머니를 모시면서 나는 더욱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는 식사를 할때도 반찬과 밥과 국의 구분을 못하신다. 무조건 한곳에 다 들어 부어서 식사를 하신다. 그래서 나는 요즘 어머니가 식사를 하실때 물컵을 좀 멀리 놔 드린다. 식사를 하는 밥그릇에 물도 다 들어 부으시기 때문이다

매일 드시는 약도 식사하고 드시라고 옆에 놓아드려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약도 반찬이라고 생각하고 밥에 섞어 버리시기 때문이다. 예전엔 어머니가 기본적으로 하시던 일들을 이젠 거의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치매란 그래서 슬프면서도 무서운 병이다.

또한 치매는 사람들과 자기와의 관계성도 다 잊어 버리게 한다. 가족들이 어머니 자신과 어떤 관계가 되는 사람인지를 어머니는 모르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집에서는 웃지못할 일들이 날마다 새롭게 벌어진다.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에게는 아저씨 혹은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나에게는 전에는 선생님, 언니 라고 부르셨는데 요즘은 그것도 잊어 버리셨는지 모르지만 나를 부르실때 “어이~ 이리와봐요”라고 하신다.

그런데 지난 주말인 토요일에 어머니를 목욕시켜드릴때의 일이다. 그날은 마침 어머니의 큰딸이 오래간만에 어머니를 뵈러 집에 와 있었다. 나는 시누이에게 어머니 목욕좀 시켜 드리라고 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자녀가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을 고쳐 먹고는 늘 해 드리던대로 어머니에게 익숙한 내가 목욕을 해 드리기로 했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욕실로 들어갔다. 어머니의 머리를 먼저 감겨 드리고 비누거품을 내어 몸을 닦아 드리고 있는데 어머니가 불쑥 한 마디 하신다

“힘들지요?” 순간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수년간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목욕을 시켜 드렸었지만 이렇게 대 놓고 미안하다고 하는 당신의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가까운 사이여서 예의를 굳이 갖추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이인데 갑자기 깍듯이 예의를 갖춘 말을 들었던 경험 말이다.

예를 들면 남편이 아침밥을 먹으면서 아내에게 정색을 하면서 “힘들었지요? 고마워요” 라고 깍듯이 예의 갖춘 말을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을까? 아마도 아내된 사람은 순간 면구스러움을 느끼며 오글거리는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한번만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머니를 목욕을 시켜 드리는 내내 어머니는 “힘들지요?” “미안해요.”를 반복하셨다. 나는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당황스러운 내 감정을 감추고 애써 태연하게 “왜 그런 말씀을…” 하면서 어머니의 몸을 닦아드리는 일에 집중했다. 그동안 나는 어머니가 치매로 인해서 아무것도 모르시는 줄 알았는데…

어머니를 목욕을 시켜 드릴때 목욕 안한다고 떼를 쓰거나 골을 부리거나 화를 내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에게 어머니의 깊은 감정은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으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다시 가슴속에서 나도 모를 뜨거운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어쩌면 어머니는 인지능력은 떨어져 있지만 어머니의 가슴속에선 자신을 섬기는 며느리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고 있으신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생전 하지 않던 말을 하신 것이다.

치매에 걸리면 흔히 바보가 된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보가 혹은 멍청이가 “힘들지요? 미안해요” 라고 예의 갖춘 말을 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한참동안 생각에 잠기면서 어머니를 씻겨 드렸다. 그러다가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아하~ 어머니가 당신의 딸이 지금 집에 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통 며느리와 딸이 함께 있다면 누가 어머니를 씻겨 드릴까?

아마 대부분 친딸이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딸이 함께 살지 않고 어쩌다 어머니를 방문한 것이었다고 해도 어머니가 낳은 친 딸이 자신의 어머니를 목욕시켜 드리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하고도 지당한 일일 것이다.

그런 상황속에서 며느리인 내가 어머니를 목욕시켜 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나를 향하여 생전 안하던 말인 “힘들지요? 미안해요” 를 반복하고 있으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최근에 변화는 또 있었다.

수일전에 있었던 일이다. 매일 어머니의 대변을 기저귀에 받아내며 치워야 하는 나는 어느 순간 짜증이 난 적이 있었다. 그날 아침도 구린 냄새가 나는 어머니가 대변을본 기저귀를 빼서 비닐봉투에 넣어서 어머니 방에서 가지고 나왔다.

마음 속에서 불만스러운 감정이 치밀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내 속에서 말을 걸어 왔다. “그 똥이 뭐가 더럽냐? 네 죄가 더 더럽지. “ “나는 네 죄를 깨끗이 치워 주었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 마음에 말을 걸어오신 분은 바로 성령님이었다. 나를 깨우치는 주님께 나는 할말을 잊고 말았다. 그리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맞아요 주님. 주님은 제 무거운 죄를대신 감당해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제 죄를 다 없애(도말)주셨지요.”

바로 그날 아침에 어머니 간병 뒷바라지에 힘들어 하는 나에게 주님은 커다란 선물을 주셨다. “사랑”이라는 선물코드를 내마음에 넣어 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이후 내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어머니를 대하는 내 태도가 더 친절하게 바뀐 것이다. 물론 남편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늘 내가 어머니에게 친절하게 하는 것을 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아닌 내 내면의 태도의 변화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이상 치매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것이 며느리로서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내 마음에 그날 아침에 주님께서 ‘그리스도의사랑’을 부어주신것이 분명했다. 어머니의 수발을 드는것이 더이상 힘들지가 않았다.

어머니가 밥을 흘리며 식사를 해서 날마다 식탁 바닥을 닦아야 하는 일도, 대소변을 기저귀에 받아내야 하는 일도, 어머니를 씻기고 옷을 입혀 주간보호센터에 보내 드리기 위해 모시고 가는것도, 그 어느것도 내겐 더이상 힘든일이 아니었다.

그저 아주 오래전 결혼해서 아이 셋을 내가 낳아서 정성과 사랑으로 키워내던 어머니의 마음 그 자체로 나는 돌아가 있었다. 시어머니는 당연히 내가 돌봐야 할 자녀같은 사랑스러운 존재로 여겨졌다.

자기가 낳은 자식이 똥싼다고 오줌 싼다고 미워하는 엄마가 없듯이 더이상 내 마음에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힘들거나 부담이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를 향해 더욱 부드러워져 있었고 상냥한 태도로 돌봐 드리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하나님이 내 마음을 만지시고 나서 일어난 변화였다. 내 마음에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 주시자 어머니의 병수발을 드는 것도 나는 온전히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하나님이 옳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하나님이 주신 환경에 나는 불만을 갖지 않고 기쁘고 즐겁게 감당하려 한다. 일일이 손이 가야만 하는 치매시어머님의 수발을 드는것도 경제적인 어려움도 다른 그 어떤 것도 나에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래전 선교지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가졌던 마음 “주님이 있으라고 하신 곳이 내가 있어야 할곳이고, 주님이 하라고 하신일이 바로 내가 할일 입니다” 라고 순종의 의지를 보이며 고백 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선교지의 생활을 그렇게 감당하며 살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도 바로 그때처럼 나는 나의 인생에서 내가 해야할 중요한 임무인 ‘부모공경’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나에게 사서 고생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가 하나님을 따르는 삶자체가 사서 고생하는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 자원된 고생에는 말 할 수 없는 기쁨이 있고 약속된 영생이 있으며 말씀에 순종하는 선행에 대한 주님의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성경을 읽고 사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치매로 인해서 정상적인 삶을 살기 어려운 어머니 이신것을 잘 알기에 내게 “힘들지요? 미안해요” 라고 한 이 한마디가 내 가슴을 사뭇 감동으로 먹먹하게 한 포근한 주말의 오후였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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