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새 식구로 합류한 루비 이야기

새벽 4시 반경에 눈이 떠져서 일어났다. 나는 거실로 나가서 소파에 앉았다. 거실에 있던 루비가 반가워 어쩔줄을 모른다. 이리뛰고 저리 뛰더니 내가 앉은 소파 위로 올라와서 내옆에 제 등을 딱 붙이고 앉는다. 나는 손을 들어서 루비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머리에서 목과 등으로 꼬리 부분까지 손길에 애정을 담아서 살살 쓸어 주었다. 루비의 다리 네개도 가만 가만 만져 주었다. 루비의 얇지만 따뜻한 등가죽이 잡히고 뼈들이 만져진다. 3킬로그램의 무게가 나가는 루비는 신생아 정도의 몸무게가 나가는 조그만 말티즈강아지이다.

어른만 살던 집에 갑자기 애교쟁이 쪼그만강아지가 새식구로 들어온 것이다. 거실로 방으로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는 조그만 강아지가 우리집 조용한 정경에 더해졌다. 마치 움직이는 동물로봇이라도 되는것처럼 루비는 이리 저리 저 가고 싶은데로 돌아다니면서 논다.

우리집은 세 식구이다. 결혼한 두 딸과 독립하여 살고 있는 아들은 제각각 살고 있다. 그래서 중증 치매를 앓는 시어머님과 우리 부부 세식구가 산다. 어머니가 치매가 중증으로 진행하고 대소변도 못가리게 심해지면서 나는 할일이 더 많아졌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덩치가 커다란 아기가 된 것이나 다름없이 되었기 때문이다. 먹는것, 입는것, 씻는것, 자는것, 배변하는것 어느것 하나 사람 손이 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제손으로는 할 수 없는 전적으로 엄마에게 의존적 존재인 아기처럼 된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렇게 정신 없는 나에게 또하나의 일거리가 늘어났다. 바로 아들이 키우던 말티즈강아지 루비를 이번 추석에 집에 데리고 온 것이다. 원래 아들은 어디를 가든 루비를 자동차에 태워 데리고 다녔다. 그래서 이번에 추석을 쇠러 집에 오면서 루비는 당연히 데리고 와야 했다.

문제는 루비가 잠간 다녀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강아지 집이며 강아지 먹을거며 강아지 용품들을 몽땅 차에 싣고 아들은 루비와 함께 집으로 들어 섰다. 혼자 사는 아들이 자신이 1년이 넘게 애지중지 키우던 루비를 집에 놓고 가려고 데리고 온것이다.

기실 나는 아들이 루비를 데려다 놓겠다고 했을때 처음엔 좀 걱정스러웠다. 이미 철저하게 보살핌을 필요로하는 아기화된 어머니를 보살피는 일도 힘들기가 장난이 아닌데 철없는 강아지를 하나 우리 집에 데려다 놓는다구? 어이쿠~ 이걸 어째…

어머니 대소변 치우는것도 모자라 이젠 강아지 똥오줌을 내가 치워야 한다는 말이지 아이구 내신세야~ 이런 한심스러운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들이 늘 일하러 나가면서 집에 놓고 나가는 루비를 안쓰러워하는 것은 이해가 되었다.

게다가 아들은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루비를 사랑하고 키우는지 기가찰 정도이다. 그래서 나는 “아들, 강아지 루비에게 쏟는 그정성이면 어서 결혼해서 네 애를 낳아 그렇게 정성스럽게 길러보렴.” 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아들은 루비를 잘 돌봐 주었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루비를 아들처럼 저렇게 잘 보살펴 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럴 마음의 여유가 도저히 안 생길것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루비는 꾸역 꾸역 우리집 식구의 일원이 되겠다고 제집까지 밥그룻까지 싸들고 들어 왔으니 말이다.

아들은 이번 추석에 유난히 길게 집에 있었다. 보통 명절날엔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 가더니 이번엔 5박6일로 길게 있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루비가 서서히 우리 집에 적응하는 것을 지켜 보려는 것이다. 어서 루비가 우리와 친해져서 무리없이 두고 떠나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은 산책을 함께 가면 루비의 목줄을 내게 건네 주곤 했다. “엄마가 산책시켜 보세요. 산책하다가 루비가 숲에 가거나 길가에 가서 킁킁대면 억지로 끌지말고 따라가서 기다려 주세요.” 나는 속으로만 “어휴 앓느니 죽지 저 애물단지를 왜 데려와 가지고는…”하고 투덜 대었다.

어느듯 강아지 박사가 된 아들은 또나에게 말한다. 루비가 가다가 킁킁 거리는 것은 다른 동료 강아지들이 오줌싼 곳에 저도 댓글을 다는 거예요.” 나는 또 속으로만 “후후후…. 강아지는 오줌으로 문장을 쓰고 오줌으로 댓글을 다는구나 세상에 웃읍기도 해라”

게다가 “엄마 루비가 똥싸면 똥꼬를 물티슈로 닦아 주시고요. 아침에 일어나면 눈꼽과 코도 물티슈로 닦아 주세요.”한다. 나는 겉으론 “응 그러마” 해 놓고서 또 속으로는 “ 아이구~ 이건 갈수록 태산일세 강아지 얼굴 씻기는 수발까지 들어야 한다 이거지 에휴~ 잘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아들은 또 말한다. “ 근처에 애견미용실 있으면 가끔 데리고 가서 미용도 해 주시고요. 엄마가 돈 아낀다고 직접 하다가 루비가 움직이거나 해서 가위에 찔리면 안되니까 애견미용실 에 데리고 가서 위생미용좀 해 주세요.” 한다.

나는 루비처럼 킁킁 대지도 않고 조용히 속으로 댓글(말대꾸)을 단다. “애야 내 머리도 미용하러 가려면 돈아까워 못가고 두달에 한번 갈까말까 하는 정도인데… 루비는 나보다 호강하는구나. 그렇게 이뻐 죽겠으면 제가 키우지…” 하고 아들이 듣지 못하도록 속으로만 궁시렁댄다.

대구에 비교적 자주 갔던 나를 보면 루비가 꼬리를 살랑이며 다가오지만 남편과 어머니가 현관에서 집안으로 들어 서거나 어머니가 어머니 방에서 거실로 나오시면 루비는 날카롭게 짖어 댄다. 나는 루비가 못듣게 속으로만 “아이구~ 애가(루비)나만 따르니 내 손이 다 가야 하겠구나 이거 큰일이다.

드디어 아들이 떠나기 하루전날이 되었다. 아들은 바쁜 엄마인 나대신 제 아빠에게 루비에 대한 인수인계를 했다. 루비의 먹거리며 옷이며 배변 매트며 목줄이며 아빠에게 인계했고 남편은 차근 차근 거실 서랍에 정리를 했다. 아들은 루비와 헤어짐을 아쉬워 하며 떠났다. 루비를 일년동안 키우며 든 정(情)이 얼마나 깊었을까싶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들이 떠나자 루비가 자기를 보호 해줄 대상으로 내가 아닌 남편을 찍은 것이다. 루비는 남편에게 꼭 붙어 있기 시작했다. 남편이 서재로 들어가면 루비는 따라 들어가서 발치에 앉아 있고 남편이 거실로 나오면 따라 나와서 남편 옆에 찰삭 붙어 앉아 있는것이 아닌가?

그뿐인가 저녁에 날씨가 어둑해지기 시작하면 산책을 가자고 남편에게 앞발을 들고 서서 기어 오르며 루비는 나가자는 신호를 했다. 별 수 없이 남편은 나와 함께 가든 산책을 루비와 함께 가서 루비를 운동시키고 돌아오게 되었다.

일단 루비가 남편을 집안의 제1인자로 알아보고 알아서 기는 것은 제일 잘한 일이다. 나에게도 말이다. 나만 따르고 내가 어머니 수발에 보태서 강아지 루비의 그 시중을 다 들어야 했으면 아마 내가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루비를 지켜보고 사랑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루비도 남편이 밖에 나가서 없다든지 하면 그다음엔 내게 와서 찰싹 제 등을 내몸에 붙이고는 앉는다 쓰다듬어 달라는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루비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어요” 하는 것만 같다.

오래전 선교지에 들어 가기 전에 하얀삽살개 한마리를 키웠었지만 밖에서 키웠던 적이 있었다. 집에서 이렇게 식구처럼 함께 지내며 키워보는 강아지는 처음인데 가만보니 루비는 생긴것도 예쁘지만 은근히 사랑스러운데가 많다.

루비 때문에 하하… 호호…우리 집에 웃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치매환자가 있고 간병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별로 웃을일 없는 우리 가정에 웃음을 주시려고 루비를 보내주셨나보다 하고 말이다. 그러니 루비가 우리집에 온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 되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8:28)”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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