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명절증후군 없는 설 명절

설날 휴가기간이 끝났다. 한주간 내내 가족들이 들고 났지만 이번 명절은 모처럼 명절증후군이 없는 설날이다. 그만큼 모든 것을 간소화 하고 평소와 같은 식단에서 한두가지 음식만 더 장만해서 먹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아무것도 안한다고는 하지만 모처럼 찾아오는 가족들에게 입맛 당기는 음식은 만들었다. 우리집의 오랜 전통인 녹두빈대떡은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녹두 반되를 했으니 양이 많지 않아서 금방 다 만들었다.

녹두 빈대떡 하고 떡국만 끓여서 설날 아침을 먹으려고 했더니 아침 일찍 출발해서 오고 있던 막내딸이 잡채와 떡국이 먹고 싶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이크~ 딸이 먹고 싶다고 하니 잡채는 얼른 만들어야겠는걸…생각하며 나는 잡채재료가 있나 살펴 보았다.

잡채를 만들려면 일단 재료가 충분해야 맛있는 잡채가 된다. 하지만 나는 별수없이 없는 재료는 빼고 있는 재료만 가지고 얼른 잡채를 만들기로 했다. 당면도 많지 않았지만 아침 한끼는 충분할 것 같았다.

피망도 시금치도 부추도 고기도 없었다. 일단 잡채를 물에 담그어 두고서 있는 재료를 찾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양파와 당근 그리고 말린 표고버섯이 있었다. 표고버섯을 불리면서 고기대신 햄을 채썰기 해서 볶아서 넣기로 했다.

달걀도 노른자와 흰자를 나누어 부쳐서 하얀색 노랑색을 내어 색갈을 맞추었다. 그런데 파란색 야채가 하나도 없으니 어떡한다? 고민 하다가 마침 해물파전을 만들어 먹으려고 쪽파를 한단 사서 다듬어 둔것이 생각이 났다.

쪽파의 파란잎 부분만 잘라서 살짝 익혀서 넣었다. 햄의 핑크색, 빨간색당근, 하얀양파, 노랑과 흰색의 달걀지단, 검정색 표고버섯, 그리고 쪽파잎의 파랑이 어우러져 제법 잡채색갈 7색의 구색이 갖추어졌다.

삶아낸 잡채를 진간장 설탕 참기름을 넣고 볶아서 간을 맞추고 7색 고명을 넣어 섞은후에 참깨를 뿌려 주니 근사한 잡채가 완성 되었다. 그렇게해서 잡채와 녹두전 그리고 떡만두국으로 설날 아침상을 차렸다.

점심엔 아무래도 명절날인데 그래도 고기 요리 하나는 있어야 할것 같아서 갈비찜을 하기로 했다. 전에는 갈비구이를 했었지만 구이갈비보다 만원가량이 저렴한 갈비찜용을 한팩 사왔기 때문에 갈비찜을 하기로 했다.

갈비찜용 고기는 용도가 더 다양하다. 갈비찜을 만들어 먹고 조금 남겨 두었다가 갈비탕을 끓어 먹으면 일석이조가 된다. 요리 방법이 다르니 맛도 다르고 같은 음식을 안내놓고 색다른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이니 좋았다.

갈비찜을 만들고 시레기국을 끓이고 오징어를 미리 손질해서 썰어둔것을 꺼내서 부침가루 반죽에 오징어 쪽파 양파 당근을 채썰어 넣고 달걀을 하나 깨넣고 손쉽게 파전을 부쳤다. 두툼하게 센불에 익혀서 뒤집기전에 달걀한개를 더 깨서 넣고 뒤집으면 된다.

넓은 접시에 두툼한 해물파전을 담고 가위로 여섯조각을내어 각각의 앞접시에 담아서 양념장을 찍어 먹도록 하고, 쇠갈비찜 그리고 된장시레기국, 이렇게 간단하지만 먹음직 스러운 설날 점심 밥상을 차려 주었다.

비교적 기름진 명절 음식에는 잘 익혀둔 동치미가 시원하고 감칠맛을 낸다. 김장할때 담아서 김치냉장고에서 잘 익혀 두었던 동치미를 아껴 두었다가 꺼냈다. 아주 시원하고 맛있어서 식구마다 동치미 국물을 남김없이 먹는다.

저녁밥은 가족들 모두 먹을 생각이 없단다. 조금 늦게 차려 주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시간 가기를 기다렸다가 좀 늦은 저녁 시간에 밥상을 차려 주었다. 저녁은 시레기국 한가지에 석박지(무우김치) 하나만 내 놓았다.

아무래도 아침부터 점심까지 녹두전에 잡채에 갈비찜에 파전에… 기름진 음식들을 먹었기 때문에 저녁밥은 된장시레기국에 밥을 말아서 석박지와 먹으면 깔끔할것 같았다. 예상대로 가족들 모두 만족해 한다.

이와같이 설명절을 한 두가지만 맛갈스러운 음식으로 준비했더니 준비하는 나도 편했고 가족들도 다양한 메뉴로 매번 다르게 해 주니 좋아한다. 삼일 명절휴가를 보내고 대구에서 올라온 아들이 목요일 대구로 돌아간다고 한다.

갈비찜 한팩을 사서 갈비찜을 해 먹고 남겨둔 갈비로 갈비탕을 끓여서 아들을 먹여 보내기로 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갈비탕은 한시간 반가량은 끓여야 하기 때문에 미리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셋째인 막내아기가 아직 어려 이번 설에 못올라온 큰딸에게도 무얼좀 보내주고 싶어서 잡채를 만들었다. 이번엔 느타리 버섯과 포항초 시금치까지 한단 사다 두었으니 더 맛있게 잡채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잡채를 만들었다.

아들이 떠나기전 마지막 오찬으로 잡채와 갈비탕 그리고 해물파전을 만들어 주었더니 아들은 아주 흡족해 한다. 혼자 살면서 매식을 많이 하는 아들이어서 모처럼 집에오면 내가 더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아들은 마침 자동차를 운전해서 와서 이것 저것 실어 보낼 수가 있었다. 큰딸에게 보낼 음식들을 이것 저것 담았다. 아들도 당장 가서 제손으로 해먹을것을 생각하니 음식을 이것 저것 챙겨서 박스에 담고 아이스팩을 얹어서 싸주었다.

아들을 배웅하고 돌아와서 남편과 커피 한잔을 타서 마시면서 이번 명절 잘 지나갔다고 서로 주고 받았다. 한꺼번에 음식 준비를 하지 않고 식사때마다 음식을 한가지씩 한가지씩 준비해서인지 이번 설엔 명절증후군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한주간 내내 주간보호센터에 안가시고 집에만 있게 된 우리 어머니 간병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낮에도 두사람중 한 사람은 집에 남아서 어머니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음식도 스스로 잘 못드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남편 K선교사도 걱정스러운지 한마디 한다.” 이젠 어머니 밥도 먹여 드려야 할것만 같아…” 어머니는 얼마전부터 밥을 차려 드리면 밥그릇에 수저를 넣고 뺑뺑이를 돌리기만 하고 입에 떠 넣지를 않으시는 것이다.

결국 그럴때는 한숟가락 한숟가락 밥을 떠서 먹여 드려야 한다. 치매증상이 점점 깊어져갈수록 간병하는 나와 남편은 더욱 일이 많아진다. 그래도 어머니가 식사를 거절하지 않고 잘 드셔서 감사한 일이다.

요즘 어머니는 식사를 하시고도 또 식탁에 앉으신다. 늘 어머니부터 음식 수발을 들고 양치까지 해 드리고나서 우리 부부는 밥상에 앉는데 어머니는 방금 드시고도 또 밥상에 앉으시는 것이다.

“어머니 어머니는 밥 드셨어요. 이제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젼 보세요.” 하면 어머니는 소파로 가서 앉았다가 다시 식탁에 와서 앉으신다. 섭섭해 하시는 눈치다. 결국 나는 어머니 밥 그릇에 간단한 음식을 담아서 또 드시도록 해 드려야 한다.

나는 이번 명절에 집에만 계신 어머니 간병과 명절음식을 동시에 해야 했는데도 이번 설명절엔 음식을 힘들이지 않고 비교적 간단하게 그러면서도 맛갈스럽게 준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셔서 감사하기만 하다. 올해는 무조건 감사만 하기로 했으니까 말이다.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전 8:15)”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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