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다. 물론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는 지난 주에 꽤 기분 좋은 여행을 했다. 원래부터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 하나 맞추어 가다 보니 나름대로 멋진 여행이 된 것이다.
우선 지난 화요일인 10월18일에 부산에서 내가 속한 노회의 가을노회가 열렸다. 부산에 갈 일이 별로 없던 나는 부산에 가게 되자 겸사 겸사 만날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함께 애국운동을 하던 K권사님이 연락이 되었다.
그 다음엔 부산서 가까운 거제에 가보기로 했다. 최근에 결혼한 아들로 인해 거제에 사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돈도 만날겸 신대원 동기 목사님 두 분이 거제에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반가운 만남이 예측되어 있었다.
멀기만한것 같은 부산을 비행기로 갔더니 50분만에 도착 하였다. 마침 김포공항에서 지하철 두정거장 거리에 살고 있는 나는 서울역의 KTX보다 김포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하는 편이 편리했다.
게다가 항공료가 KTX가격보다 저렴했으니 두말할 필요없이 비행기를 탔다. 김해공항에 내리면 곧 지하철이 연결이 되었다. 노회가 열리는 부산제일교회에 도착해서 잠시 교역자회를 참석했다.
교역자회에서 토스토와 음료를 점심으로 준비해서 나누어 주었지만 나는 별도의 점심 약속이 있었다. 부산 사는 K권사님과 점심을 먹기로 했던 것이다. K권사님은 나를 꽤 유명하다는 한정식 집으로 안내했다.
음식 가격도 꽤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음식이 맛이 있었다. 일찍 출발 하느라고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한 허기진 배를 맛있는 코스로 나오는 요리를 먹으며 채우는 행복을 만끽했다. 권사님은 맛있게 음식을 먹는 나를 흡족하게 바라 보았다.
“이 집 꽤 유명한 한정식 집이예요.” 그러고 보니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들이 계속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는 권사님에게 고안국선 목사님의 일주기 기념전도책을 한권 선물했다.
전에는 이틀씩 하던 노회를 코로나 이후에는 반나절로 축소해서 오후 1시에 시작한 노회가 오후5시 좀 넘어서 마쳐 졌다. 이제부터는 여목사님들만을 대상으로 여교역자회가 주도하는 ‘일일여교역자힐링데이’를 시작할 차례다.
나는 올 한해 우리 노회 여교역자회장직을 맡아서 여목사님들을 잘 섬겨야할 목표가있었다. 그래서 노회에 참석하는 여목사님들을 대상으로 ‘해운대일일힐링데이’를 계획해서 준비했던 차였다.
힐링데이를 할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숙식해결 이었다. 해운대에 있는 호텔의 2인1실 객실6개를 예약했다. 호텔은 비지니스 호텔로 깔끔했다. 여목사님들은 모두 11명이 참석하겠다고 신청하였다.
저녁은 바다가 바라 보이는 일식집에서 회정식을 먹었다. ‘일일여교역자힐링데이’에 참석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나의 권고로 참석했던 여목사님 한분이 환~ 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목사님, 힐링데이 안 왔더라면 후회할뻔 했어요. 이렇게 맛있는 요리도 못 먹을뻔 했잖아요.” 마침 빨간빛으로 물들고 있는 석양의 바다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여목사님을 보니 내 마음도 무척 기뻤다.
호텔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고 쉬고 난 후 나는 아침 일찍 해수온천이 나온다는 호텔사우나장으로 내려갔다. 호텔투숙객에게는 무료로 제공되는 사우나였다. 나는 물안마를 받으며 그동안 아팠던 허리와 어깨가 펴지는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사우나를 가나보다.
아침식사는 호텔 바로 옆에 있는 해운대에서 꽤나 유명해서 줄을서서 먹는다는 ‘금수복국’집엘 갔다. 따끈한 복국으로 아침을 먹고 호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신 후 우리는 모두 숙박 했던 호텔에서는 체크 아웃을 하고 해운대해변열차를 타러 갔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해운대에서 송정까지 갔다가 바로 되돌아오는 왕복표를 끊었다. 송정에 내려서 단체 사진을 찍고는 바로 돌아왔지만 기차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그 자체가 힐링이 되었다.
다시 해운대로 돌아와 바쁜 일정이 있는 분들은 먼저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기차역으로 갔고 남은 사람들은 해운대 바다가 바라 보이는 기가 막힌 전망이 있는 카페로 가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 다음 거제로 가는 스케줄이 있던 나는 일행가운데 먼저 나와서 택시를 타고 신평역으로 갔다. 사돈이 거제에서부터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사돈의 차를 타고 거제로 갔다. 처음 가보는 거제도… 그러나 꼭 와보아야 했을 거제도였다.
우리 어머니가 이북의 흥남부두에서 미군정을 타고 내렸던 곳이 거제였다. 어머니의 나이 꽃다운 스무살에 북한을 탈출해서 처음 내린 거제도… 나에게 여러번 거제 이야기를 하셨었다. 그 거제도를 이제서야 가보게 된 것이다.
이튿날 거제포로수용소에를 갔다. 마치 수목원같이 울창한 나무와 숲들이 청량한 공기를 뿜어내는 그곳은 하나의 공원이었다. 곳곳에 포로 수용소였을 당시의 모습들을 재현해 놓아서 포로수용소로서의 당시의 모습을 느끼게 해주었다.
시간이 없어서 거제포로수용소를 다 둘러 보지는 못했지만 다음에 한번 더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점심시간에 맞추어 만나기로 약속했던 신대원동기 목사님들을 만나러 갔다.
마침 거제 ‘옥포중앙교회’에 최근에 담임목사로 부임한 동기 목사님과 거제에서의 개척교회를 시작하기 위해 거제에 와서 살고 있는 동기인 두 목사님을 만나서 정말 오랫만에 점심을 먹으며 교제를 나누었다.
10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모두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들을 보니 하나님의 은혜 가운게 다들 잘 지내온 모습이다. 동기 목사님들은 내게 “선교사님은 정말 최강동안 이세요. 신대원 다닐때 그대로예요. ” 하며 감탄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던가. 신대원 다닐때 모두 총각이었던 두 목사님은 한사람은 삼남매의 아빠가 되어 있었고, 또 한 사람은 남매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 나역시 세 명의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었으니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후에 거제에서 동대구까지 시외버스가 있어서 순적하게 대구에 도착했다. 차를 가지고 마중 나온 아들 덕분에 편하게 딸네 집으로 갔다. 저녁은 아들의 신혼집에서 며느리가 만들어 주는 첫 저녁을 먹으며 감동했다. 나는 아들네집 거실 소파옆에 놓을 나무 화분을 하나 사다 주었다.
그리고 딸네 집으로 와서 보고 싶었던 손주들과 이틀을 함께 보냈다. 막내 조이가 많이 자라서 이젠 놀이터에서도 혼자 잘 걸어 다닌다. 미끄럼틀도 제 스스로 올라가서 내려 갈 줄도 알고 시이소오도 타면서 흔들어 대는 시늉을 한다. 활달하고 흥겨운 아이다.
그런가하면 큰아이 로아는 이제 자라서 친구따라 강남을 가는 때가 되었는지 온통 친구와 놀 생각뿐이다. 제아빠 따라서 워크숍에 가서 춤을 추기로 다 정해 있었다는데 놀이터에 나타난 친구를 보더니 아빠따라 안 가겠다고 딱 버틴다.
결국 제아빠의 대학원생 워크숍에는 둘째인 로이가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누나 로아 대신 참석해서 귀여움을 독차지 했다. 아이들이 각각 제 나이에 맞게 잘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었다.
가을 여행을 마치고 닷새만에 김포로 돌아오면서 이번 여행을 생각해 보았다. 다양한 만남과 일들이 있었지만 부산에서도 거제에서도 대구에서도 모두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이다.
여행을 다녀오니 가을은 한층 깊어져 있어서 내가 사는 아파트 정원의 나무들이 더욱 아름다운 채색옷을 자랑하고 있었다. 보도블럭에 떨어진 낙엽들이 마냥 정겨웠다. 분명 가을은 여행하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막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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