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7도. 올들어 가장 춥다는 날이다. 새벽기도 마치고 돌아오는데 까치가 까까깍까… 하고 운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에서 먹을것을 찾으러 왔는지 이 추운날 이른 아침부터 우는 까치 소리가 왠지 안스럽게만 들린다.
본래 까치가 아침에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속담이 있다. 바로 엇그제 구정이 지났다. 까치 울음 소리를 듣기도 전에 반가운 손님인 자녀들이 밀물처럼 왔다가는 썰물처럼 돌아갔다. 그런데 올 구정엔 특히 작년 구정과 달랐다. 새식구가 늘었기 때문이다.
구정인 설을 하루 앞둔 토요일날, 대구에 사는 아들과 며느리가 KTX를 타고 서울로 출발 한다고 연락이 왔다. 자녀들이 도착하는 시간이 꼭 점심때이니 무얼 해 먹일까 나는 고심이 되었다. 따끈한 갈비탕을 끓여 줄까 하다가 역시 생일상엔 미역국이지 싶었다.
왜냐하면 지난해 8월 결혼한 우리 예쁜 며느리가 마침 설 전날인 토요일 그날이 생일이었다. 남편과 나는 며느리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선물과 케이크를 사 놓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 역시 생일이니 미역국을 끓여 주기로 했다.
쇠고기를 달달 볶다가 미역을 넣어서 미역국을 끓이고 그 다음에는 잡채를 만들었다. 막내딸도 오기로 했으니 막내가 특히 좋아하는 잡채를 일찍이 만들어 두기로 했다. 손이 많이 가는 잡채를 만들어 놓고 시금치나물, 도라지나물, 고사리나물로 삼색나물을 만들었다.
이젠 메인 요리로 구정 쇠라고 큰딸이 사서 보내온 갈비찜을 하면 다 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시댁에 처음 구정을 쇠러 오는 며느리에게 더 맛있게 먹일 음식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특별한 메뉴를 생각해 냈다. 그것은 바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쇠고기 등심 스테이크를 해 주는 것이다.
스테이크는 평소 우리집에서 잘 해먹는 음식이 아니어서 나는 유튜브를 켰다. ‘집밥백종원’의 유튜브를 켰더니 “고기맛은 고기탓이 아니예유~ 백종원의 스테이크 완벽하게 굽는법“ 이란 10분짜리 동영상이 있다. 나는 동영상을 꼼꼼하게 보았다.
기본적인 요리를 하는 사람에겐 요리강습강사기 몇마디만 팁을 말해 주어도 척 알아듣고 응용을 할 수 있게 된다. 나도 그동안 많이 해본 불고기 재우는법, 갈비 재우는법은 잘 알지만 스테이크는 집에서는 잘 안해 먹어서 생소했다.
스테이크는 밖에 식당에서 사 먹으려면 여간 비싼게 아니다. 아마 일인분 5만원은 하지 않을까 싶다. 마침 집에 등심 한팩을 사다 놓은 것이 있으니 스테이크로 손님맞이를 해 보기로 했다. 안성맞춤으로 집에 아주 근사한 그릴도 있으니 말이다.
오래전에 당근마켓에서 ‘키친아트 렉스 와이드 그릴(kitchen-Art REX WIDE GRILL)’을 저렴하게 사 둔것이 생각났다.이것은 많은 식구들이 고기를 구어 먹을 수 있는 와이드 대형 그릴이다.
시중가 17만원이 넘는 와이드 그릴이지만 당근마켓에서 5만원인지 4만원인지에 구입해 두었었다 . 물론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신품이다. 큰딸은 식구도 없는데 언제 쓰겠냐며 도로 당근에 팔으라고 했지만 나는 고이 간직해 두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를 위해서 말이다.
남편이 창고에서 그릴을 꺼내어 닦고 식탁위에 설치해 주었다. 나는 가장 귀한 손님인 자녀들에게 맛있는 스테이크를 구어 주기 위해 열심으로 스테이크를 맛있게 굽는 법을 공부했다. 그런데 뭐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두툼한 쇠고기 등심에 앞 뒤로 소금간을 충분히 하는것이 비법이었다. 대개 고기가 짜질까봐 살살 소금을 뿌리는데 스테이크용고기는 매우 두툼하니 넉넉히 소금을 뿌려 준다. 그리고 고기의 맛을 내는 후추도 고기의 앞뒷면에 뿌려준다.
그다음이 정말 비법인데 올리브유를 소금과 후추간을 한 고기 표면에 역시 앞 뒷면에 충분히 발라 주어야 한다. (올리브유를 고기에 충분히 발라두면 센불에 구어도 고기가 타지 않는다) 그리곤 한시간 정도 냉장고에 넣어 두어 숙성을 시켜 준다 소금, 후추간과 올리브 기름이 충분히 배도록 말이다.
그런데 스테이크의 진정한 맛을 내는 것은 쇠고기의 육즙에 있다. 그래서 고기를 굽는 방법 또한 중요하다. 식탁위에 전기 그릴을 설치해 두었지만 고기는 화력이 센 가스불에서 후라이판에 먼저 굽는다. 이때도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튀기듯이 고기를 굽는 것이 비법이다.
이렇게 해야 고기 표면이 빨리 익어서 육즙이 빠져 나가는것을 막는다. 육즙이 빠지면 고기가 퍽퍽해지고 맛이 없다. 앞뒤로 센불에 이렇게 어느 정도 익힌 다음에 그릴에 얹어서 고기를 가위로 자르고 속을 익혀 가면서 먹는다.
감자, 당근, 피망, 양파, 마늘, 버섯 같은 야채도 넓다란 그릴에 얹어서 익혀가며 고기와 함께 먹는다. 상차림은 식구마다 잡채를 작은 접시에 한접시씩 놓아 주는 것이 먹기좋다. 삼색나물과 배추김치, 석박지, 백김치, 밥과 미역국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아무튼 우리 며느리의 생일상 차림은 가족들의 별점 5개는 충분히 받았을듯하다. 모두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입을 모아 이구동성으로 말했으니 말이다. 내가 깜박잊고 참기름도 소스도 내놓지 않았는데도 식구들은 모두 고기에 간이 잘 배어서 다른 소스에 찍어 먹지 않아도 아주 맛이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은 밖에 나가서 사 먹는줄로만 알았던 스테이크 요리를 이렇게 집에서 해서 저렴한 가격에(스테이크 일인분 가격으로 5명이 먹음) 여러 식구가 충분히 먹을 수 있다니 기분이 참 좋았다. 게다가 새식구가 된 며느리의 생일상이니 금상첨화이다.
모두 얼마나 든든히 스테이크를 먹었는지 아무도 저녁을 먹겠다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온 식구가 집앞 체육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애견 루비까지도 신이 났다. 산책에서 돌아와 아들 며느리는 잠시 쉬더니 다시 스타벅스로 데이트를 하러 나갔다. 참 좋을때이다.
이튿날인 설날인 주일 아침엔 당연히 떡국을 끓였다. 아들 며느리가 모두 떡국이 너무 맛있다고 한다. 이번 설날엔 내가 하는 요리마다 히트를 치고 있는 중이다. 아침을 먹고 아들 며느리의 세배를 받았다.
나는 며느리의 첫번째 새해 세배를 받으면서 뭔가 주고 싶었다. 문화상품권을 보관하고 있던 것이 몇장 있어서 세뱃돈 대신 주었다. “책 세권은 사 볼 수 있을거야” 라고 하면서 말이다. 아들이 자신은 안 주고 며느리만 주니까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인다.
자녀는 부모 앞에선 영원한 어린이가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마흔이 넘어도 세뱃돈을 넘보는 것이리라 하하하… 예전에 내가 젊은 새댁시절에 명절마다 시댁에 가서 시부모님에게 절을 올렸다. 그러면 우리 아버님은 아들들은 안 주고 며느리들에게만 새파란 만원권 한장씩을 주셨다. 그게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다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고 돌아와서 오후에 전을 부쳤다. 며느리가 도와서 녹두전, 동그랑땡, 동태전을 부쳤다. 삼색전을 부치려고 준비해 두었지만 손이 많이 가서 그만 두었다. 나도 이제 명절이면 설음식을 도와줄 며느리가 생겼다는 것이 뿌듯하기만 했다.
올해도 녹두전은 대 히트다. 아들도 며느리도 모두 맛있게 먹는다. 바삭하게 구운 녹두전을 양념장에 찍어 먹는 그 맛은 먹어보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맛있게 녹두전을 먹으면서 며느리가 “녹두전은 올 추석때까지는 못 먹을테니 지금 많이 먹어 두어야겠어요 호호호…”한다. 식탁에 또 한바탕 웃음꽃이 핀다.
역시 설 음식에 구색을 맞추려면 전이 들어가야 한다. 전을 기름에 구었기 때문에 살이 찐다고? 하하… 걱정 마시라. 살좀 찌면 어떤가 다시 운동해서 빼면 될 일이다. 점심을 먹고 온식구가 루비까지 데리고 자동차로 운전해서 ‘서울식물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이미 오후 4시가 넘어서 입장권을 안 팔아서 실내 식물원에는 못 들어가서 밖에서 산책을 했다. 그것도 좋았다. 강서구에 이렇게 좋은 식물원이 있었는데 처음 와 보았다. 우리는 돌아오면서도 저녁엔 무얼하고 놀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으로 왔다.
식구들이 모두 배불러서 저녁은 안 먹겠다고 해서 먹고 싶은 사람만 먹도록 간식으로 말랑말랑한 잔기지떡을 한접시 식탁위에 올려 두었다. 저녁엔 아이스크림 내기 윷놀이판을 벌렸다. 결혼 41년차 노부부(a old couple) 대(代)결혼1년차의 젊은부부(a young couple)의 윷놀이 세 판 시합이다.
명절날 가장 웃음을 많이 선사하는 놀이는 역시 윷놀이 이다. 소리 소리 지르며 윷을 놀았지만 아들 부부에게 2:0으로 올드부부인 우리 부부가 졌다. 그러자 아들이 남성대 여성으로 한판 더 하자고 한다. 남편과 아들이 한 조, 나와 며느리가 한 조 이렇게 윷을 놀았다. 새며느리가 무척 즐거워한다.
이기고 진 것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들 며느리가 미리 사다 둔 것이다. 즐거웠다. 흥이 많은 나에겐 특히 즐거운 저녁이 되었다. 일찍 자리에 누웠다가 억지로 불려 나와 참석한 남편도 즐거워 한다.
이밤이 지나면 내일 아침 반가운 손님들이 돌아 간다. 전에는 아들이 명절에 집에 오면 가능한 오래 있으려고 했다. 적으면 3밤을 자고 갔지만 보통 4밤을 자고 갔다. 그러나 이젠 친가와 처가 양가를 다 챙겨야 하니 전에 자고 가던 절반인 두밤만 자고 가야 한다.
우리 집에서 지하철 두정거장 거리에 있는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해 공항으로 날라가서 거제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 두시간 남짓 후면 거제에 도착한다. 나는 수년전 집을 구할때 공항근처에 집을 장만해 자녀들이 비행기를 타고 찾아오기 쉽게 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그런 소망을 가졌는데 드디어 그 소망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다. 로아네도 수년전 대구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와서 김포공항까지 우리가 픽업하러 갔었다. 로아가 어릴때 그게 인상적이었는지 자기가 비행기를 슝~ 타고 외갓집에 왔다는 흉내를 내곤 했다.
우리집 거실에서 보이는 두 줄로 죽~ 뻗어 있는 김포공항의 활주로에서 수 없는 비행기가 뜨고는 또 내린다. 무심히 보았던 비행기가 오늘은 달라 보인다. 얼마 안 있으면 아들 부부가 탄 비행기가 곧 이륙할 것이기에…
우리집에 첫 새식구로 며느리가 왔듯이, 결혼후 첫 새식구인 사위가 되어 장모님을 찾아갈 아들의 모습이 흐믓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날 아침 사돈집 근처 나뭇가지에서 거제까치도 까까까깍~ 울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시147: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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