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대한민국 언론자유가 아시아 1위이며 3년 연속 상승해 대한민국에 새바람이 불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모양이다. 언론자유지수는 좌파가 오래 전부터 인용 선전하는 자료다. 우파 정부에서는 언론자유지수가 떨어졌다고 선동했었다. 청와대 홍보 내용이 사실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을 포함한 몇 나라의 경우에는 신빙성이 없다.
언론자유지수는 민간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가 여러 단체와 개인에게 발송한 설문을 계량화하여 순위를 결정한다. 이런 사회적 통계는 늘 논쟁의 이유가 되지만 마치 시험 점수처럼 “최선의 차선”이라고도 하겠다.
2017년 언론자유지수 자료에 의하면 총 180개 나라 가운데 만년 1등은 노르웨이다. 거의 매년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던마크, 네덜란드가 돌아가며 1-5위를 차지한다. 독일은 16위, 프랑스는 39위, 민주주의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영국은 40위, 일본은 72위이고, 한국은 63위였다. 자유가 국가가치인 미국은 놀랍게도 43위다. 이스라엘은 91위였다.
싱가포르는 의외로 151위에 기록되었다. 유엔통계국에 의하면 2017년 싱가포르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세계에서 12번째였기 때문이다. 이 때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29였다. 언론자유 지수는 이렇게 계속되다가 중국이 45위로 의외로 높고, 북한은 최하위인 180위로 기록되었다.
순위를 분석해 보면 정치사회적 갈등요인이 없는 나라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정치사회적 갈등요인이 많은 국가들은 국민소득이나 민도에 상관없이 순위가 낮게 나옴을 알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나 싱가포르를 보아 확인하게 된다. 일본이 2010년 11위에서 72위로 떨어졌는데 후쿠시마 원전피해에 대한 보도통제 때문이라고 한다.
코스타리카와 자메이카가 7위인 스위스 앞뒤에 위치하고 수리남, 사모아, 가나, 카보베르테, 통가 등이 비교적 상위권에 자리잡고 있다. 카보베르테는 아프리카 서쪽의 섬나라로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일인당 국민소득은 100위 정도의 작은 나라이다. 남미 자메이카는 114위 소득으로 언론자유지수 8위를 차지했다.
이들 나라가 벨기에나 독일, 일본보다 언론자유지수 순위가 높지만 그렇다고 더 자유로운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면 무책임한 정부를 가진 나라는 오히려 언론자유지수가 더 높게 평가된다고도 하겠다.
언론자유지수는 국경없는 기자회가 내보낸 ‘설문지’를 토대로 한다. 인터넷 통제로 악명높은 중국이 45위로 미국 다음이며 이탈리아보다 높다면 조금 더 자유로워진 ‘느낌’이 설문 답변에 얼마나 큰 주관적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종북화 된 한국 기자들의 주관적 답변이 어떠할지는 뻔하다.
또 이스라엘이 91위인지로 왜 늘 100위 앞뒤에서 맴돌고 있는지, 싱가포르가 왜 151위인지를 이해해야 언론자유지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언론자유지수는 사회의 자유도에 대한 객관적 측정이라기 보다는 정치사회적 갈등요인의 정도를 오히려 잘 보여주고 있다.
‘보수와 진보’라는 미국 우스개가 있다. “토크쇼가 싫으면 보수는 채널을 바꾼다” “토크쇼가 싫으면 진보는 그 프로그램을 폐쇄시키려한다” / “동성애 보수는 조용히 자기의 삶을 즐긴다” “동성애 진보는 동성애를 법제화하려한다” / “무신론자 보수는 교회에 가지 않는다” “무신론자 진보는 신과 종교에 관한 모든 언급을 막으려한다”…
이런 내용인데 진보를 좌파로 보수를 우파로 바꾸면 어쩌면 이리도 딱 들어맞는지 희한하다. 이런 식으로 개인이 간섭받는 사회가 더 나아가면 전체주의 사회가 된다. 전체주의로 통제된 사회가 되면 개인의 자유가 줄어들고, 줄어든 자유는 갈등요인을 감추게 된다.
한국의 언론이 김대중 정부 때에 좌파화 되어 언론권력이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지난 세월호 사고 때에 좌파화 된 언론이 얼마나 방종스러웠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폐해도 이젠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좀 덜 알려진 사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재임 1년이 지난 2014년 소위 진보정당이라는 새정치민주연합은 27개 이상의 언론매체에 대해 한 언론사 당 적게는 한 명에서 많게는 14명까지 담당 국회의원을 배정했다. 이렇게 배정된 국회의원 수는 모두 100명이 넘었다. 담당 국회의원의 임무는 할당된 언론이 자당에 불리(!)한 보도를 내면 성명서, 전화, 방문 등으로 항의하거나 법적 대응으로 압력을 넣는 일이었다.
이쯤 되면 이들이 말하는 언론자유는 허구가 된다. 허구적 ‘도덕적 우월’은 아무리 좋게 들린다 해도 허구이다.
토브포럼 대표 Stephen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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