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유비무환

나은혜 선교사(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오늘은 그동안 가 보자고 벼르고 별러오던 한림공원을 가기로 했다. 남편 K선교사는 제주를 떠나기 전에 한림공원은 꼭 가봐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묵고 있는 센터에서 한림공원 까지는 9킬로미터 남짓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그처럼 가깝기에 얼마든지 진즉에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드디어 가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가능한 아침 일찍 출발했다. 10만평 가까운 공원을 다 돌아 보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고 예측 되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90세 가까운 어머니를 모시고 관람해야 하는 것이다.

월요일 이어선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선지 한림공원은 더욱 쾌적 하였다. 입장권에도 한림공원 관람 순서가 차례대로 안내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순서를 따라 가기만 하면 되었다. 혹시나 어머니가 피곤해 지실 것을 대비하여 우리는 휠체어를 임대해서 가지고 갔다.

첫 순서는 ‘야자수 길’이었다. 높다랗게 시원하게 쭉쭉뻗은 야자수가 정말 멋있었다. 그런데 야자수가 대부분 쌍으로 붙어서 튼실하게 자라 있는 것이 특이하고 이채로웠다. 시원한 야자수 길을 지나 ‘산야초원’에 도달했다.

산야초원을 걸으며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셀카봉으로 사진도 찍어가며 즐겁게 산책을 즐겼다. 어머니의 컨디션도 좋아 보여서 안심이 되었다. 산야 초원을 한바퀴 돌아오면 이번에는 동굴관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협재동굴’과 ‘쌍용동굴’이다. 계단을 내려가 동굴 안으로 들어서니 아주 서늘했다. 천정에선 물방울도 뚝뚝 떨어졌다. 나는 어머니를 부축하여 걸으며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찬송을 불렀다. 어머니도 익숙한 찬송을 내가 부르니까 따라서 부르신다.

이런식으로 하여 한림공원의 여러 코스를 다 마치고 마지막 코스를 돌고 있을 때였다. 한손엔 지팡이를 짚고 한손은 내 손을 붙들고 걸으셨던 어머니는 내가 마침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손을 놓자 지팡이만 의지 하고 있다가 균형을 잃으신 모양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 어머니가 “아이쿠” 하시면서 넘어 지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찔해 졌다. 왜냐하면 노인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바로 넘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면 뼈가 약해져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뼈가 부러진다.

수년전에도 어머니는 집의 화장실에서 넘어지셔서 고관절이 부러졌었다. 그래서 수술을 하셨고 한달간이나 입원 하셨으며, 회복되기 까지 6개월 이상이 걸린적이 있었기에 나는 순간적으로 그 때 일이 떠오르면서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다행이었다. 부축해서 일으켜 드렸는데 어머니는 괜찮으신 것 같았다. 남편 K선교사가 준비하고 있던 휠체어를 얼른 들이 대어 어머니를 앉혀 드렸다. 나는 마침 매점이 보이기에 섬초 아이스크림을 사 가지고 와서 드렸다. 어머니는 휠체어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드시면서 쉬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인생은 유비무환 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공원 관람을 시작하면서 휠체어를 빌려서 가지고 다닌 것이 큰도움이 되었다. 사실 나는 어머니가 잘 걷는 편이셔서 휠체어를 빌리지 말자고 했었다. 그런데 준비성이 많은 남편 K선교사는 굳이 휠체어를 빌려왔다.

하지만 10만평 가까운 한림 공원을 한바퀴 도는 동안 어머니는 너무도 잘 걸으셔서 빌려간 휠체어가 무색 했었다. 남편은 빈 휠체어를 끌고 다니느라고 많은 수고를 하였다. 계단으로 내려가서 들어가는 두개의 동굴을 지날때는 휠체어를 접어서 내렸다가 다시 펴서 끌고 다녀야 했으니 얼마나 귀찮았겠는가.

그런 남편을 보면서 나는 은근히 딱하다고 생각했다. 괜히 휠체어를 빌려 와서 사서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원 관람 막바지에 도달해서 예상하지 못하게 어머니가 넘어지신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자신이 수고로이 가지고 다니던 휠체어가 드디어 쓸모 있어진 것에 대단히 만족한 모습이었다.

사실 우리의 인생 여정에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 어머니가 준비해 간 휠체어 때문에 큰 도움을 받아 마지막 여행을 잘 마치신 것처럼, 우리의 인생의 여행을 잘 마치기 위해서는 유비무환의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인생의 내일을 위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예비해야 할 것인가?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대하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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