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 칼럼] 숨비소리 가득한 선교잔치


‘월간 한국인 선교사’와 보라매교회가 주최하고 ‘코디엠(KODIAM)’의 후원으로 여름에 고국에 들어오는 선교사님들을 섬기기 위한 1박2일의 ‘선교잔치’가 열렸다.

1박2일의 선교잔치를 백여명의 선교사님들과 함께 참석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이 모임을 위해 기도를 많이 했구나 하는 것이다. 선교잔치 기간이 비교적 짧은 편이었으나 내용이 매우 충실하고 편안했기 때문이다.

선교잔치의 내용은 뭐랄까… 한마디로 대단히 실속있는 모습이었다. 내용이 알차게 꽉차면서도 매우 은혜로웠다. 선교잔치의 진행은 무리가 되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고 자연스러웠으며 여유로웠다.

그것은 “준비는 철저하게 하되 진행은 물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라”는 대원칙이 적용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뿐 아니라 선교잔치에 참석한 대다수의 선교사님들이 매우 흡족해 한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먼저 진행은 월요일이었던 7월8일 오전 10시에 효창공원역 근처에 있던 보라매교회에서 ‘여는예배’를 드림으로서 선교잔치의 막이 올랐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김포에서는 꽤 시간이 걸려서 자동차로 운전을 해서 갔다.

‘월간한국인선교사’ 발행인이며 이번 선교잔치 대회장인 성기호 목사님은 이번 선교잔치를 해녀들의 ‘숨비소리(해녀들이 물속에 들어가서 숨을 참고 전복 소라등을 따다가물밖으로 나와 내쉬는 깊은숨을 말함)에 비교 하였다.

선교사들이 마치 물질하는 해녀처럼 선교현장에서 물질(선교사역)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고국에서 쉼과 재충전을 갖게 하려고 이 선교잔치를 마련했다고 취지를 설명 하였다.

그는 “망망대해 같은 선교현장에서 힘겹게 물질하며 채워오신 ‘망태’속의 싱싱하고 풍성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으며 위로도 받고 안식도 취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예배후엔 보라매교회 4층 대식당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한국인 대다수가 즐겨먹는 비빔밥이었다. 수박을 후식으로 먹고 교회안에 있는 카페에서 차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보라매교회 작은 정원의 수국꽃이 무척 아름다웠다. 나는 절친한 여선교사 두분과 꽃밭에서 커피를 마시며 함께 사진도 찍었다. 오후 두시부터 찬양콘서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송호운씨의 트럼펫연주’어메이징그레이스’를 시작으로 관악만돌린오케스트라의 ‘내주를 가까이’외 3곡이 연주되었다. 윤명화권사님이 오카리나로 ’외로운양치기’외 한곡을 연주했다.

CCM가수 김상훈씨의 공연이 이어졌는데 ‘천하의 불효자(탕자이야기)’에서 율동을 함께 하며 선교사님들이 가장 많이 웃었던것 같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CCM 옹기장이선교단이’영원히 찬양 드리세’외 6곡을 불렀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우리는 결단의 찬송으로 ‘부름받아 나선 이몸’을 다함께 불렀다. 선교사님들은 선교잔치 시작서부터 수준 높은 찬양과 연주를 들으며 마음에 위로가 부어 졌을 것이다. 음악회가 끝나고 우리는 관광버스 3대에 나누어 타고서 두물머리로 향하였다.

‘두물머리’는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북한강과 남한강의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곳이다. 실로 경관이 무척 아름다웠다. 곳곳에 포토존을 설치해 두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풍경 감상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게 해 둔것이 센스있어 보였다.

두물머리에서 찍은 사진을 ‘사진컨테스트’해서 작품상을 준다고 하니 선교사님들과 MK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아마 사진을 많이 찍어 두게 하려는 지혜로운 제안이 아니었을까?)나도 아름다운 두물머리의 경관 몇 컷을 찍었다.

그런데 이곳에 오면 핫도그를 꼭 먹고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목사님이 있어서 우리는 순종하기로 했다. 줄을서서 기다렸다가 핫도그를 하나씩 들고 차로 돌아가서 먹었다. 돈은 제일 연장자인 전권재 선교사님이 냈다. 핫도그 맛은 과연 일품이었다.

그다음에 간곳은 이름도 재미있는 ‘국수교회’였다. 양평에 이런 멋진 교회가 있었나 할만큼 문화적 수준이 아주 높은 교회였다. 담임목사님 부부가 음대출신인 까닭도 있겠지만 ‘담임 목사님이 주민들에게 교육, 복지, 문화를 균형있게 제공하자는 목회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국수교회는 농촌 사람들도 예술에 대한 욕구 있다’는 취지아래 매년 30-40회씩 수준높은 예술공연을 열어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준다고 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지역주민들과 교회가 소통을 하게되니 전도가 절로 될것 같았다.

국수교회에서 관람한 ‘행복음악회’는 모든 출연진은 국수교회 성도들이었다. 드림오카리나 7중주, 현악2중주, 드림플룻앙상불, 오카리나독주, 성악독창, 바이얼린독주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몸찬양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예배당은 곧 원형의 공연장이었다. 16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독특한 파이프오르간은 한점 예술품이었다. 나도 많은 파이프 오르간을 봐 왔지만 미술과 음악을 합쳐 놓은 이런 파이프 오르간은 처음 보았다.

무엇보다 선교사님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성도들이 급작스럽게 준비하고 공연해준것이 고마웠다. 연습이 없이도 이처럼 훌륭한 연주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은 성도들의 평소 실력을 여과없이 보여준 것이다.

또 국수 교회 권사님 한분은 캘리그래피의 선구자로 미리 선교사님들에게 받아둔 가훈이라든가 좌우명을 캘리그래피(산돌단아체)로 아름답게 만들어서 기념으로 주었다. 나는 ‘선교문학으로 복음을!’이라는 캘리그래피를 받았다.

멋진 연주를 들음으로 심신의 피로가 풀리는듯했다. 한껏 정서적 채움을 받고 우리는 숙소인 창신교회 수양관으로 출발했다. 가던 길에 유명한 왕갈비탕을 저녁으로 먹었다. 큰식당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갈비탕 맛은 다시한번 가족과 한번 또와야겠는데…라고 할만큼 좋았다.

비교적 밤늦게 도착한 창신교회 수양관은 숲속에 있었다. 그런데 그 늦은밤에 (아마 밤10시가 넘었을 것이다.)창신교회 성도들이 나와서 자몽주스를 만들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 양쪽에 도열해서 환영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 정성에 우리는 모두 감동해 버렸다.

배정된 숙소에서 쉬고 이튿날 식당으로 갔더니 아침부터 화려한 한식부페가 차려져 있었다. 우리가 다른 일정이 있어서 출발해야 하니 아침을 거나하게 차린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더덕구이 때문에 아침밥이 더욱 맛깔스러웠다.

다른 테이블엔 따끈따끈한 찰떡과 냉커피도 준비되어 있었다. 여러 선물이 든 선물가방도 받았다. 수양관에서 하룻밤 자고 떠나는 선교사님들을 섬기기 위해서 창신교회가 여러모로 주밀하게 준비했구나 하는 것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다음에 우리가 간 곳은 3.1운동이후 일어난 만세운동 가운데 가장 일제의 탄압을 받은 화성에 있는제암리교회및 기념관이다. 기념관에서 설명을 듣고 기록영상을 보면서 이미 역사의 저편으로 흘러간 과거이지만 나라 잃은 설움이 어떤것인지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제나라를 지키지 못하면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엄중한 교훈이 제암리 교회 성도들 학살사건이었다. 제 나라를 잃어 버리면 다른 나라로부터 야만한 짓을 당해도 저항할 수도 없는 것이다.

제암리 사건 같은 아픈 과거를 가진 것이 바로 우리나라이다. 그래서 지금의 발전한 대한민국은 더욱 기적의 현장이다. 다음 코스는 월문온천이었다. 일박이일의 여행의 피로를 온천을 하며 풀어주기 위해 계획된 코스인것 같았다.

아주 오랫만에 나도 온천을 즐겼다. 정말 피로가 확 풀렸다. 이제 보라매교회로 돌아가 ‘닫는예배’를 드릴 것이다. 이 선교잔치를 준비한 목사님들의 선교사 사랑이 진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선교잔치가 매년 있어지기를 기도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보라매교회 4층 식당엔 푸짐한 부페가 준비되어 있었다. 선교잔치를 마치고 돌아가는 선교사님들에게 마지막 만찬을 잘 먹이려고 정성껏준비한 저녁이라는 것이 마음에 느껴졌다. 보라매 교회에선 또 건강식품이며 홍초며 양말이며 책을 선물로 주었다.

이제 교회 차고앞에서 바자회가 열렸다. 아마도 선교사님들을 위해서만 열은 바자회 같았다. 선교사님들 외에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의류, 가방, 신발, 장신구 등등 품목도 많았고 새물건도 많았다.

내가 외손녀가 있다는 것을 아는 여선교사님들이 “이거 로아꺼” “이거 로아 스키복”하면서 물건들을 막 골라서 내 앞으로 던져 주었다. 나는 바자회 참석은 안하고 가려고 하다가 결국 우리 로아의 예쁜 원피스며 겨울왕국공주 그림의 가방이며 여러가지를 선물로 받은셈이 되었다.

내가 선교잔치를 참석하러 올때는 심플한 작은 배낭 한 개를 달랑 매고 왔는데 돌아갈때는 받은 선물들과 바자회에서 고른 물건들과 짐이 많았다. 아… 이래서 내가 올때 대중교통으로 오려고 했는데 자동차로 올 감동을 받았었나보다.

덕분에 나는 집에 돌아올때는 짐들을 자동차에 다 싣고 편안하게 그리고 빠르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운전을 하고 돌아오면서 왜 이번 모임을 ‘선교잔치’라고 했는지 알것만 같았다.

잔치는 즐겁고 먹을것이 많고 흥겨운 것이다. 각나라에서 온 선교사님들에게 힐링을 경험하게 하고 참으로 행복하게 해준 잊지 못할 선교잔치였다. 무엇보다 선교사님들이 선교지에서의 긴장을 풀고 ‘숨비소리’ 깊게 내쉬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려 오는 희락의 잔치였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시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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